역사소설 ‘제국의 꽃’ [12] 백성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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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마음이나 우리 동학의 가르침이 사실은 다르지 않다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9 09:30:49

창수와 황해도 신임 접주들은 해월 선생의 도장이 찍힌 첩지를 고이 가슴에 품고 물러나왔다. 길을 떠나려는데 심부름하는 아이가 쫓아 나왔다. 이미 어두워졌으니 저녁을 먹고 편히 자고 가라는 대도주의 분부가 계셨다는 것이다. 창수 일행 말고도 집안에는 각 지역에서 온 도인들이 꽉 차 있었다. 지금은 대도주께서 각 지역 도인들에게 접주 첩지를 내리시는 기간이었다. 부엌에서는 젊은 처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나르고 있었다. 그들은 넓은 대청마루로 인도되어 저녁상을 받았다. 창수는 따뜻한 국밥을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옆에 앉은 도인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나? 젊은이도 접주 첩지를 받으러 온 거요?”

검은 피부의 땅땅한 체구의 사내였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네, 저는 황해도 해주에서 온 김창수라고 합니다. 오늘 대도주께 첩지를 받았습니다.”

“기특한 젊은일세. 나는 전라도 고부에서 온 이미생이오. 앞으로 큰일을 하시게나.”

“고부라면,... 우리 동학당이 처음으로 봉기한 곳 아닙니까?”

창수의 일행인 이기달이 물었다. 그는 동학에 입교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오. 전봉준 접주의 의기로 우리는 탐관오리들을 해치우고 임금님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오.”

“어르신, 그런데 우리가 아직껏 억울하게 수모를 받는 이유가 뭡니까? 아까 대도주님께 보고가 올라오는 걸 들었습니다.”

창수가 물었다.

“청년이 모르는 게 많구먼. 우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게 아니야. 그저 하늘님과 임금님을 모시고 모두가 평등한 좋은 세상을 살려고 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해산했지. 그런데 화약을 맺기 직전에 정부는 청나라에게 지원군을 요청했고 결국 청군이 들어오게 되었다네.”

“그렇습죠. 그 바람에 왜놈들이 청군보다 한발 먼저 이 땅에 쳐들어와 궁궐을 점령하고 임금님을 궐에 가두지 않았습니까.”

이기달이 대답했다.

“공교롭게 되었지. 하지만 임금님 마음이나 우리 동학의 가르침이 사실은 다르지 않다네, 오래 전 정조 임금님의 꿈은 노비 없는 세상이었어. 아드님이신 순조 임금께서 유훈을 받들어 왕위에 오르자마자 공노비 해방을 명하셨다네.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임금께서도 노비해방절목(1886)을 만드셔서 남아 있는 사노비 해방을 명하셨지. 그런데 문서를 내리셨는데 노비들이 글을 모르지 않소. 그러니 못된 양반 놈들이 계속 부려먹고 있었던 거요. 그런데 이번 고부 사건으로 우리 동학당이 임금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 거지.”

“정말입니까, 어르신?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럼 집집마다 다니시며 그곳 노비들을 풀어주셨나요?”

창수가 입이 쫙 벌어져 물었다.

“허허, 본보기로 양반 몇 놈을 혼내주고 나니 다음엔 그럴 필요도 없습디다. 우리가 저 멀리서 온다는 소문만 들어도 못된 양반들이 바로바로 종들을 놓아주었지.”

창수와 이기달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럴 법 했다. 그들이 오는 도중에도 동학당의 감독하에 짚신을 만드는 양반들을 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저기 부엌에서 일하는 저 고운 처자들은 다 어디서 온 겁니까?”

이기달이 빙긋거리며 슬며시 물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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