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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형 국제팀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1-20 00:02:40

주인공 켄지는 어느 날 어릴 적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는데, 그의 편지를 보고 타살을 의심한다. 비슷한 의문사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자 켄지는 옛 친구들을 모아 사건을 추적한다. 이후 일련의 사건이 자신과 친구들이 어릴 때 함께 쓴 ‘예언의 서’의 내용과 일치함을 발견한다. 또 이를 주도하는 또 다른 ‘친구’와 그가 이끄는 신흥종교가 바이러스를 퍼뜨려 전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음을 간파한다. 켄지는 친구들과 함께 그 계획을 저지하기로 한다.

1999년부터 연재(2007년 완결)된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의 초반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20년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이후 새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무려 20년여 전에 쓰인 만화의 배경이 마치 예언서처럼 당시의 상황과 정교하게 맞아떨어진다는 후기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먼저 읽은 독자나 그제야 본 사람이나 ‘너무 똑같다’라는 소감을 남겼고 못 본 이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필자도 완독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2020년을 예언한 것 같다고 지목되는 내용은 △신종 바이러스(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전파 △신흥종교(신천지)의 부흥과 예배 장소의 대규모 감염 △강한 리더(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과 정치 폭력 △과학기술의 발전(로봇)과 감시체계의 가능성 등등이다. 예언보다는 당시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고 상상력을 더한 것뿐인데 묘하게 코로나19 시국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 종교단체의 바이러스 유포는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것이다.

‘20세기 소년’은 과학적 논리(이성)와 종교적 신념(감성)이 얼마만큼 인간을 지배하는지를 다룬다. 두 개념을 ‘과학적 신념’과 ‘종교적 논리’로 바꿔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서로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무엇에 관해서든 무분별한 믿음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 질투·따돌림 등이 한 사람의 세계관을 얼마나 뒤흔드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악(惡)의 정체를 쫓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면서도 흥미롭다. 혹시 안 본 사람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어지는 속편 ‘21세기 소년’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자 출발점이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엑스포)다. 일본은 만국박람회, 줄여서 ‘만박’이라 불렀고 오사카 만박에 열광한 당시의 십대를 ‘만박소년’이라 칭했다. 그해 켄지와 친구들은 30년 뒤인 2000년 지구가 ‘외계인’의 ‘바이러스 침략’을 받지만 이를 ‘거대 로봇’으로 물리친다는 시나리오를 쓴다. 만박소년의 과학적 상상력이 한껏 발휘된 내용이다.

오사카 만박은 1964년 도쿄올림픽과 함께 1955~1973년에 이르는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상징한다. 동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ion)이자 등록박람회(Registered Exhibition)로, 무려 6421만 명이 방문할 만큼 대대적인 행사였다. 1969년 미국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가져온 월석이 전시됐다고 하니, 우주와 미지의 생명체에 관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동안 많은 신기술과 신제품이 엑스포에서 공개됐다. 엘리베이터(1853년 뉴욕박람회)·재봉틀(1855년 파리박람회)·축음기(1878년 파리박람회) 등등. 특히 1876년 필라델피아 엑스포에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시연하는 모습은 세계 역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꿔 재생하는 원리는 지금의 무선전화기·스마트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밖에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초기 엑스포를 거치며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발돋움했고, 1889년 파리 엑스포 때 세운 에펠탑은 지금도 파리·프랑스를 상징한다.

엑스포의 위상은 ‘지상 최대의 쇼’로 불린 1939년 뉴욕박람회를 정점으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이후 사뭇 달라졌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거꾸로 인류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반성과 회의가 나타났다. ‘신기술·신개발 경쟁주의’ ‘지나친 상업주의·소비주의’ ‘과시적 건축물’ 등의 무용론이 이어졌다. 1958년 브뤼셀 엑스포와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부터는 과학기술(핵)의 평화적 이용·휴머니즘·미래주의가 강조됐고, 그 뒤로도 고민이 거듭됐다.

지금 세계박람회기구(BIE)의 핵심가치는 ‘교육(education)’ ‘혁신(innovation)’ ‘협력(cooperation)’이다.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역시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장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난해 11월 BIE 총회의 유치 경쟁 프리젠테이션(PT)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부산세계박람회의 주제로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Future)’를 제시했다. 다소 두루뭉술해 보이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는 꽤 적절한 주제로 평가하고 싶다. 국민적 열망도 어느 정도 달아오른 것 같으니, 이제 끝까지 막전 막후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