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 파 먹는 ‘포퓰리즘’ 뿌리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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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 포퓰리즘의 폐해와 우리 국민의 대응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1-25 00:02:40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엔 ‘보릿고개’란 게 있었다. 9∼10월에 벼를 추수하면 빚이나 세금을 갚은 뒤, 남은 식량으로 다음 해 여름 보리 수확 때까지 버텨야 했다. 워낙 먹을 게 없다 보니 사람들은 ‘씨감자’에까지 손을 댔다. 해마다 감자를 생산하기 위해선 전년에 수확한 감자 일부를 저장해 둬야 한다. 이듬해 그 감자를 잘라 심어야 또다시 감자를 생산할 수 있다. 씨감자가 없으면 다음 해에는 감자 농사를 짓지 못한다. 하지만 당장 굶어 죽을 수는 없어 눈물을 머금고 씨감자까지 먹어야 했다.

속담에 ‘금년 새 다리가 명년 소 다리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큰 것보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것이 더 이롭다는 의미다. 보릿고개 시절 ‘씨감자’나 ‘금년의 새 다리’ 모두 절박함과 위급성을 전제로 한다. 차후에 있을 훨씬 더 큰 이득을 포기할 만큼 눈앞의 조그만 것이 더 소중해서다. 하지만 당장의 소소한 이익을 택할지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선 지금이 시급을 다툴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정치권에선 앞다퉈 각종 퍼주기식 대국민 지원대책을 쏟아 내고 있다. 이들은 지금은 미래를 챙길 때가 아니라 당장 씨감자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려운 국민을 구해야 한다며 온갖 선심성 정책도 남발한다. 이달 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해결하자며 9개 민생 프로젝트 추경을 제안했다. 지원책 대부분은 전·월세 보증금 이자 지원과 임대료 상환 감면 등 현금 지원을 통한 선심성 예산으로 채웠다. 앞서 문재인정부 때에는 올해 들어올 세수를 내년으로 이월하는 방식까지 동원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나눠 줬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렵긴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는 아니다. 절박한 위기가 아닌데도 위기라며 지원을 해 주는 것은 엄연한 ‘포퓰리즘’이다. 나라 곳간이야 거덜 나건 말건 이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포퓰리즘의 허점은 인심은 정치인이 베풀고, 그 돈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돈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이들의 포퓰리즘은 국민 돈으로 유세만 떨고 책임은 국민이 지라는 것이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병적인 포퓰리즘 발언과 공약은 더욱 활개를 친다. 우리는 선심성 정책과 포퓰리즘으로 온 나라가 곤경에 처한 외국의 경우를 여러 차례 봐 왔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가진 것은 1999년 취임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차베스정부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란 점을 믿고 석유 생산과 판매에서 얻은 ‘오일머니’ 대부분을 빈곤 퇴출과 복지에 쏟아부었다. 병원 치료와 학교 교육을 무료로 제공했고 집도 공짜로 나눠 줬다. 하지만 퍼주기 정책이 허상으로 끝나기까지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2008년 금융 위기와 저유가로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국가 전체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또한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복지 정책을 확대하면서 베네수엘라는 국가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

브라질 또한 지도자의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가진 곳 중 하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019년 취임 직후부터 복지 정책을 확대했다. 2022년 10월 대선을 앞두고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두 배 인상, 트럭 운전사 75만 명 보조금 지급 등 돈 뿌리기 정책을 마구 쏟아 냈다. 2022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100%에 육박했다. 2021년에만 6차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물가는 고공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원자재값 급등으로 수혜가 예상됐지만 정치권의 무분별한 현금 살포 여파로 여전히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이들 두 나라 경제의 추락은 인기영합주의 정책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 준다. 이 나라들의 선심성 정책을 보면 최근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과 많이 닮아 있다. 정책들만 겹치면 다행이겠지만 이 두 나라와 결론마저 같아질까 우려스럽다. 그나마 이런 국가들은 원자재가 풍부해 믿을 구석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못하다. 도박판에서 베팅하듯 수십조 원의 현금 지급을 약속하며 선심 정책 경쟁을 벌이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포퓰리즘 경쟁을 계속한다면 대한민국 경제도 언제든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같은 상황을 맞지 말란 법이 없다.

국민 또한 정치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 내는 ‘지원금’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그 돈은 결국 우리가 힘들게 모은 우리 돈이다. 지금 그 돈을 받으면 당장은 쓸 구석이 생기겠지만, 그것은 결국 세금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위선적인 정치인들을 경계하고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지나치게 달콤한 것은 늘 뒤탈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어렵다며 씨감자 나눠 먹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국민을 위한 지도자가 아니라 나라를 망칠 ‘암적인 존재’란 걸 잊지 말자.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