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5] 푸른 눈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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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욕 앞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던 분이 아닙니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26 09:32:03

베베르와 알렌을 위시한 외국공사들은 왜성대를 빠져 나왔다. 그들은 함께 미국 공사관으로 향했다. 공사관에는 간밤의 변란을 듣고 모여든 선교사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관저의 중앙에 있는 널따란 접견실에 모여 앉았다.

“알렌 공사님, 국왕께서는 어찌하고 계십니까? 왕비께서 변을 당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육영공원의 헐버트 선생이 제일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일본공사는 무어라고 합니까? 이번 일은 일본에서 꾸민 게 분명하지요?”

언더우드 박사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알렌과 베베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모인 사람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부인들도 모두 와 한자리에 있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좀 전에 제가 국왕을 뵙고 왔습니다. 그분은 아직 왕비의 죽음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왕비께서 이제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무사히 넘긴 이야기를 하시며 어딘가에 피신하여 살아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언더우드 박사가 덧붙였다.

“우리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 아시지요? 그 청년이 마침 어젯밤 건청궁을 지키는 당직이었습니다. 그가 두 눈으로 똑똑히 이 괴변을 보았답니다.”

베베르공사의 말은 검은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폭우였다. 목격자가 있었다는 말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수근거림이 싹 사라졌다. 베베르공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본인의 짓입니다. 새벽에 일본군인들과 낭인들이 들이닥쳐 국왕과 세자를 욕보이고 궁인들을 죽이고 왕비마마를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총과 칼로 무장한 그들 앞에서 다이 장군이나 사바틴도 어쩌질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왕비를 지켜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접견실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놀라 털썩 주저앉은 사람, 두 손을 모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 서로 안고 울먹이는 부인들과 탄식소리가 폭우 속에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공사 미우라는 그들과 아무 관계없다고 잡아떼더군요. 더 말해보았자 소용없기에 허망하고 괘씸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알렌공사가 덧붙였다.

“그토록 지혜롭고 상냥한 왕비께서 참변을 당하신 것이 믿겨지질 않습니다. 학문도 높아 동양의 고서들을 다 읽으셨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두 파악하여 일본의 야욕 앞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던 분이 아닙니까!”

언더우드 부인이 절규했다.

“그게 바로 왕비께서 살해당한 이유입니다. 우리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가 나서서 일본이 청나라와 싸워 이겨서 받은 전리품인 요동반도를 되돌려주게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그 일에는 국왕과 왕비의 지모(智謀)가 관련되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키려는 그분들의 몸부림이지요. 그러고 나서 왕과 왕비는 이 땅에 남아 있는 일본군을 모두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국왕을 곁에서 돕는 현명한 여장부인 왕비의 존재가 일본 입장에서는 손톱의 가시였겠지요.”

베베르 공사가 설명했다.

“그렇지요. 일본은 작년에 동학당의 난을 핑계로 멋대로 조선에 들어와 서울로 난입해 바로 경복궁을 점령했고 두 분을 포로로 잡아 친일정부를 만들고는 개혁을 한다고 했지요. 바로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과 싸워 이기고는 요동반도를 빼앗지 않았습니까?”

힐리어 프랑스 공사도 거들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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