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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쌀에 대한 ‘자동시장격리’ 제도를 도입하려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문제되고 있다. 쌀의 시장격리란 쌀의 풍작 시에 쌀값 폭락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물량을 사들여 시장에서 아예 유통되지 않게 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2005년부터 총 8회 실시되었고 투입된 비용이 3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시장격리가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불확실한 면도 있고 결정부터 실행까지 시간도 많이 걸려 한 번에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데도 가격 안정 효과가 별로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2020년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시장격리를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그런데 2022년에 쌀값이 또 다시 역대 최대인 20%까지 폭락하다 보니 시장격리를 아예 의무화하는 방안, 즉 ‘자동시장격리’를 도입하는 개정안을 민주당이 발의했고 상임위원회에서도 신속하게 통과되었다.
민주당의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넘게 하락하면 초과 물량 전부를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날 소지가 크다. 쌀 자급율이 거의 100%에 이른 마당에 정부 매입을 오히려 최소화함으로써 농민들이 쌀 농사를 줄이게 유도해서 수익이 더 좋은 다른 작물 재배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시장원리에 맞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에서도 자동시장격리 제도를 도입하면 쌀 재배 농가의 소득 안정성은 강화되겠지만 쌀 재배 면적이 줄지 않아서 과잉 공급이 더 증대될 것으로 지적했다. 격리 비용도 2026년부터 1조 원이 넘기 시작해 2030년에는 1조4000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의무 매입이 올바른 정책일 수 없음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반대하고 있다. 특히 쌀에만 특혜를 주는 것이 헌법상 시장경제 원리와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런데 입법 자료를 찾아 보니 2020년 시장격리를 법제화할 당시에는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도 의무 격리 법안을 발의했던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의 반대 입장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지가 바뀐 데 따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여당은 재정 부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소수당인 시대전환의 조정훈 의원도 헌법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시장격리 조치를 하려면 자급률이 한 자릿수인 옥수수나 밀부터 해야지 쌀을 시장격리하면 기계화로 쉽게 농사짓는 쌀 재배자들만 득을 보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작물 재배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과도 충돌된다는 등의 지적이다. 또한 도시근로자의 임금은 시장에 맡겨져 있는데 쌀 재배 농민만 적정 소득을 보장받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 의원은 2000만 도시근로자를 위해서라도 특정 상품을 시장에서 배제하는 첫 번째 사례를 21대 국회에서 만들 수 없다는 등의 강한 주장을 했다. 거대 정당에 속하지 않아 정략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는 조정훈 의원의 지적처럼 이 개정안에 대해서는 헌법적 문제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경제에 있어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제2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면서 국가의 개입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헌법이 천명한 경제 질서를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헌법이 특별히 경제에 관한 규제·조정권을 국가에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행정부나 입법부에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선고한 경제 관련 법규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주류판매업자에게 자기 도에서 생산된 소주를 50% 이상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자도 소주 구입제’ 정도가 위헌 판정을 받았고, 국산영화의 의무 상영을 강제하는 ‘스크린 쿼터제’도 합헌 결정이 났을 정도다.
그런데 이 사례들은 이미 90년대의 유물들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제의 자유화·개방화가 심화되면서 법을 앞세워 특정 상품의 구매를 강제하거나 직접 가격에 개입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 되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직접 개입한 사례는 최저 임금법·이자 제한법·신용카드 수수료율 제한·분양가 상한제 정도가 아닌가 싶다. 노동과 국토는 원래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거나 규제하는 대상이고 이자율과 카드 수수료율은 전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만큼 직접적인 가격 규제가 용인된 것이다.
그러나 소비량이 갈수록 줄고 있는 쌀은 이제 달리 봐야 한다. 90년대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대표적 논리가 식량의 무기화 우려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주장이 되어 버렸다. 식량의 무기화가 그렇게 두려우면 밀 농사 확대가 시급하지만 여전히 1%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나라가 밀을 무기화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헌법상 경제질서는 어디까지나 자유시장경제이므로 규제·조정은 가능한 한 자제되어야 한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이 충분히 협의해서 헌법 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대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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