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전주 
)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해법을 제시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과 일본 양국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통해 피고 측 일본 기업 대신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법이다. 이에 급랭하던 한일관계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안은 지난 몇 해간 주요 경색요인으로 주목받았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노동자 배상 문제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피해자 단체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도 우익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잡음 또한 만만찮다.
‘강제징용배상 문제’ 정부안 골자는 “재단 자금으로 먼저 변제”
26일 외교가에 따르면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의 해법을 공식화하고 피해자 측과 일본 등 당사자와 막판 조율을 벌이고 있다.
외교부는 12일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판결금 배상 방안과 관련해 ‘제3자의 대위변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검토했다”며 “핵심은 ‘법리 선택’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 우선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밝혔다.
일본을 담당하는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4차례 진행한 민관협의회를 통해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 채무 인수 등 다양한 해법안을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서 국장은 “검토 결과 핵심은 법리 선택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부안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일본 기업이 아닌 제3자, 즉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자금으로 판결 금액을 대신 변제받는 방식이 핵심이다.
2018년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민사 사건’인 것을 부각한 셈이다. 이에 한일관계 회복을 내세운 윤석열정부는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 충돌 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는 방안을 마련해왔다.
윤 대통령 또한 지난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판결을 집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지금 깊이 강구하고 있다”면서 해당 사건을 ‘민사사건’으로 언급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시 일본이 제공한 경제협력자금의 수혜자인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앞서 2018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4년 동안 문재인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일본 측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을 핑계로 배상 의무가 없다고 대응하면서 배상 문제는 난관에 봉착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태평양전쟁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 등 일본의 전범기업으로 끌려ㅑ가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를 본 이들로, 정부가 집계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수는 14만8961명이다. 현재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66건, 원고는 1102명이다.
국내 강제동원 소송 가운데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소송은 총 3건이다. 3자 변제 법리를 설명했던 외교부 측은 계류 중 소송 배상까지 가능하다고 이점을 내세운 셈이다. 다만, 이 해당 안에는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전범기업의 기금 조성 참여와 사과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서 국장은 13일 일본 외무성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만나 한일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 일본 정부는 협력적 모습을 보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안에 대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교도 통신은 일본 총리관저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안에 대해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여당과 정부 또한 해당 방식을 통한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외통위원으로 참석해 “여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 해결은 외교적 해법밖에 없다”며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절차를 밟는 건 문재인 전 대통령조차 ‘안 된다(불가능하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피해자 측 “ 피고 기업이 기금 조성 참여, 일본 정부와 기업이 사과해야”
그럼에도 피해자 측은 일본의 피고 기업이 기금 조성에 참여하고 일본 정부와 기업이 사과가 함께 되어야 한다고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으며, 이 같은 반응에 일본 측이 어느 정도 호응할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피해자 일부는 토론회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야당 의원 사이에선 ‘내부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피해자 단체는 ‘치욕적인 안(案), 대일 굴욕외교’라고 단정한 이후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같은 날 외통위 회의에서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기금을 내겠다고 협의됐나. 떡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만 들이마신다”고 주장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 또한 “일본 참여 하나 없이 한국 기업만 갈취해 배상하는 안”이라며 “일본에 전적으로 책임을 면제해 주면서 수십 년간 전범 기업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우리 피해자들을 능욕하는 행위”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피해자 측도 움직였다. 피해자측은 일본 책임을 면책해 주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실 인정과 반성·사과가 없고 인권이 침해된 사건을 ‘민사 문제와 채권 및 채무 관계’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18일 오후 외교부 청사 앞에 모인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철회하라’ ‘일본 위한 강제동원 해법 폐기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근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1579차 수요시위를 마친 뒤, 외교부 앞까지 행진했다. 외교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지만 청사 진입은 하지 못했다. 이들은 담장 너머로 서한이 담긴 봉투를 던진 뒤 해산했다.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12일 외교부 토론회에서 “(제3자 변제 방식은) 본질을 호도하는 왜곡된 프레임”이라고 일축하고, “피해자 측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사실 인정과 반성의 의사표시가 담겨 있는 일본의 사과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지원재단이 배상하려면 일본 가해 기업과 채무 인수 약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토론회 뒤 취재진에게 채무 인수 약정의 법적 효력을 다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3자 대위변제 경우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채무 변제를 막을 수 있다”며 “진의가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 안이 최종안은 아니라는 견해다. 서 국장은 12일 토론회에서 “핵심은 법리 선택보다는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는 것”이라며 “피해자 및 유가족 분들께 직접 수령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나 기업의 사과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절한 사과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일본과의 협의는 현재 진행 중으로 일본의 호응이 없다면 대위변제안 협의는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다음 달 하순 전에 최종 해법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2019년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규제 해제를 하며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 편입해 한일관계가 본격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 또한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일본의 호응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면 협의할 필요가 없다”며 “반대 여론과 의견들도 유념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모두 현안 해결과 한일관계 개선에 뜻을 같이하고 집중하고 있다”며 “피해자와 관련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집중적으로 협의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한일정상회담 개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시다 총리가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외교가에서 나왔는데, 이는 징용 문제 해결의 긍정적 신호로 해석됐다.
미국 측에서 먼저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징용 문제 해결을 촉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일본 외교 지침인 한·미·일 군사협력을 통한 대중 견제에도 적극 협력을 위해 윤 정부의 한일관계 회복 흐름에 호응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시다 총리는 23일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며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대응에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우호 협력 관계를 토대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지난해 10월3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에 이어 두 째로 기시다 내각의 한일관계 회복 의지가 일본 정가를 중심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