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20] 왜놈 대장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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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사람도 의병을 할 것이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02 09:02:32

명준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전하, 중전마마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명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너,... 지금 무어라고 했느냐?”

“전하, 소녀를 죽여주시옵소서. 결국 소녀가,... 이 말씀을... 안 상궁이 제게 입단속을 하였는데 전하께서 마마를 기다리심이 안타까워서,...”

명준이 고종 앞에 납작 엎드렸다. 고종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다. 나의 중전은,...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 분이 아니야. 어딘가에 몸을 피,... 해서,... 나와 종묘사직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명준아, 네가 너무 놀라서,... 헛것을,... 본거야. 그렇지, 맞지? 그렇다고 말하렴!”

고종의 음성이 중간 중간에 끊겼다.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고종은 품 안에서 은비녀를 꺼냈다.

“명준아, 이 비녀 아느냐?”

“예, 전하.”

명준이 흐느꼈다.

“이 비녀는 내가 잠행 때 중전을 주려고 산 것이다. 중전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중전은 어떤 장신구보다 이걸 가장 좋아하더구나. 여염집 여인들이 가질 법한 물건인데 말이다.”

“소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주셨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중전은 어디가고 이제 이 은비녀 하나 남았구나.”

모든 희망을 포기한 고종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국왕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김홍집 내각은 예정대로 왕비의 폐서인을 발표했다. 왕비의 폐위조칙이 외국공사에게도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 공사는 국왕이 직접 도장을 찍지 않은 이 조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왕세자까지 이 조서에 강력하게 반발하자 정부는 다음날인 10월11일에 왕비를 ‘서인’에서 후궁인 ‘빈’으로 승격시켰다. 대부분의 대신들이 이 가짜 조서에 서명했으나 탁지부 대신 심상훈은 서명을 거부하여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충주로 내려갔다. 심상훈은 통곡하며, “나라의 원수를 갚지 않으면 벼슬하지 않겠다”고 했다.

왕비폐위 소식이 알려지자 백성들은 들끓었다. 일본과 왜당정부가 왕비가 궁에서 도망쳤고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다툼으로 대궐에서 총질이 있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으므로, 왕비시해에 대해서는 항간에 여러 가지 소문만 있었다. 하지만 폐위문제는 달랐다. 백성들은 10월10일 내려진 폐위 조칙이 수상하다고 생각했고 왕비가 시해되었다는 걸 비로소 눈치 채게 되었다. 소식은 서울을 넘어 전국에 퍼져 나갔다.

강원도 춘천 고흥 류씨가 사는 마을에선 이런 격문이 나붙었다.

“ … 우리나라 사람 이용하여 우리나라 임금님을 괴롭히며 우리나라를 너희 놈들이 무슨 일로 통치를 한단 말이냐. … 절대로 우리 임금님을 괴롭히지 말라. 만약 너희 놈들이 우리 임금님, 우리 안사람네들을 괴롭히면 우리 조선의 안사람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아느냐. 우리 안사람도 의병을 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국모를 살해하고도 너희 놈들이 살아서 가기를 바랄쏘냐. 이 마적떼 오랑캐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가거라. 이 오랑캐야 … 대장놈들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조선 선비의 아내 윤희순.”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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