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21] 새로 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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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일본에서 사온 비단이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03 10:21:01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새로 온 친구가 있어요.”

교정의 배나무 잎이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갈 무렵, 신록반 담임인 드루실라(이경숙)선생님이 키 큰 여자아이를 소개했다. 드루실라 선생님은 7세에서 11세까지의 여아들을 위한 신록반의 담임이다. 18세에 청상과부가 되어 외로이 살다가 이화학당 설립자인 스크랜턴 대부인을 만나게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새로 온 친구는 비단으로 만든 분홍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고 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안해린이고 북촌에 살고 있어요. 모두 다정하게 지내기 바래요.”

새 친구는 보민의 옆 자리에 앉았다. 한문공부 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새 친구 해린 옆에 모여 들었다.

“와! 너 옷 참 예쁘다. 북촌 산다구? 거기는 진짜 부자들만 사는 데 아니니?”

애덕이 해린의 옷고름을 쓰다듬었다.

“만지지 마.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지면 내 옷 망가져!”

해린이 쏘아 붙였다. 애덕이 멈칫했다. 해린의 앙칼진 음성에 아이들은 움찔했다.

“네 옷이 더 더러운데?”

보민이 받아쳤다. 애덕을 무안 주는 해린을 참을 수 없었다. 보민은 해린의 옷고름을 잡아 쥐었다.

“뭐라고? 너 내 옷이 얼마짜린 줄 알아? 일본에서 사온 비단이야. 이거 놓지 못해! 쪼그만 게!”

해린이 악을 썼다.

“그래? 내가 쪼그맣다고?”

보민이 해린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댔다. 하지만 해린의 키가 훨씬 커서 해린의 목 근처에 닿았다. 해린이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우리 아버지가 누군 줄이나 알아? 까불면 다 죽을 줄 알아.”

해린은 말하는 동시에 보민의 머리채를 쥐었다. 보민이 해린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해린이 보민의 머리채를 거세게 잡아당기자 보민은 해린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다. 순식간에 두 아이는 하나로 엉겨 붙었다. 다른 아이들은 둘을 말리느라 양쪽을 붙잡았다. 교실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복도를 지나가던 상급반 학생이 이 광경을 보았다. 에스더(김점동)였다. 에스더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자제시켰다. 하지만 이미 화가 날대로 난 아이들은 서로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영어시간을 담당한 로드와일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로드와일러선생은 독일인으로 높은 코를 가진 깡마른 젊은 처녀였다.

“그만! 교실에서 지금 무엇 하는 게야?”

로드와일러 선생의 커다란 음성이 들리고 아이들은 그제야 멈칫했다. 보민과 해린도 떨어졌다. 해린이 자랑하던 푸른 비단치마는 반쯤 뜯어졌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보민의 머리칼도 한 움큼 빠졌고 볼에는 멍든 자국이 있었다. 말리던 애덕 또한 옷고름이 뜯어지고 손에는 할퀸 자국이 남았다.

“신록반 반장, 최보민 이리 나와!”

선생님의 물음에 보민이 앞에 나왔다.

“반장이 되어서 꼴이 이게 뭐니?”

“에스더! 너는 왜 여기 있지?”

로드와일러 선생은 상급반인 ‘열매반’ 담임이었고 에스더는 그반 반장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말리려고 했는데,...”

에스더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보민과 에스더, 나를 따라오도록!”

로드와일러 선생님의 엄숙한 목소리에 두 아이는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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