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든가 따르든가 비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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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 새로운 리더십

‘이끌든가 따르든가 비키든가’

장은영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1-31 00:02:30

최근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대행사라는 오피스드라마가 핫한 인기몰이 중이다. 어느 산업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한 광고업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일터가 녹록지 않은 전쟁터이기에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내 기득권과 비기득권 간의 갈등·숱한 내홍과 협업을 오가며 경험하게 되는 성공과 좌절, 정점에 오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우아하지만 처절한 몸부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프로들의 이야기는 12%라는 높은 시청률로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드라마를 빛내는 강렬한 캐릭터 간의 향연도 볼 만하지만 여자 주인공인 고아인 상무의 사무실에 걸린 액자의 문구가 특히 눈길을 끈다. ‘이끌든가 따르든가 비키든가’.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직장인이라면 나는 과연 이 3가지 층위 중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청자 댓글이나 후기를 살펴보면 누군가는 조직생활이란 무릇 수직적인 체계가 있어야 돌아간다며 공감하는 이도 있다. 또 누군가는 직장 내 갑질 문화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씁쓸하지만 임팩트있는 문장이라고 평가한다.

사실 이 문구의 원작자는 따로 있다. 그는 바로 CNN 창립자인 테드 터너다. 일개 지역 유선 방송국을 운영하던 터너가 1980년 CNN을 설립한 당시 방송계·언론계·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회사는 몇 년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지만 터너에겐 당시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원대한 꿈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내부 직원들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중 하나로 우뚝 섰지만, 그 당시 가뜩이나 어려운 회사 상황에서 유례없는 도전을 이어가야 했던 CNN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면서 모두가 한 마음 한 방향으로 역량을 다할 때 비로소 목표한 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터너는 판단했을 것이다. 고민 끝에 터너는 어느 날 모든 직원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미국의 경영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Do Something! Lead, Follow or Get out of Here!(뭔가를 하라! 이끌든지, 따르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물론 터너가 직원에게 정녕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이든 해보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2023년인 지금 만일 어느 기업에서 이러한 회사 방침을 발표했다면 어떠한 반응이 펼쳐질까? 직원 중 일부는 상명하복식 회사 문화가 그릇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당장 노조를 결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문구가 자칫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에 주목하기보다, 현 세대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해 성공한 기업의 사례에 주목해 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는 2012년부터 3년간 매출이 정체되고 영업이익이 급감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2015년 최고경영자(CEO)로 새로 임명된 마르코 비자리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몰되어 시대에 맞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는 관성과 조직 내 매너리즘을 구찌의 몰락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구찌는 기존의 업무진행 방식의 틀을 벗어던지고 리버스 멘토링(역멘토링)을 과감히 도입했다.

역멘토링이랑 젊은 직원이 멘토가 되어 멘티인 경영진을 코칭하고 조언하는 것을 뜻한다. 통상 회사에선 나이가 있는 중간관리자가 리더역할을 하며 업무 방향을 설정하면 젊은 직원은 이에 따르는 것이 관행이다. 구찌는 이를 과감히 뒤집어 30세 이하 직원들로만 구성된 그림자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임원들의 경영회의가 끝나면 CEO와 함께 주요 안건을 다시 토론하며 기존의 임원회의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역멘토링을 적극 활용한 구찌는 시행 3년 만에 영업이익을 3배 이상 창출하는 등 실적 반등을 이뤄 냈고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혁신했다. 구찌의 성공 비결이 알려지자 IBM·MS·GE 등 여러 기업에서 역멘토링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기업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지닌 인재들의 집합체다. 기업이 목표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계층과 이를 받쳐 줄 실무단이 효율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인 리더와 팔로워 계층 간의 경계를 허물고 유연하게 소통하는 조직만이 생존과 성장을 이어 가는 시대다. 이끌되 존중하고, 따르되 주체성을 가지며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경청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 개인이 성장함은 물론 조직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장은영 e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