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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5·16이 쿠데타면 5·18은 폭동이고 4.16은 교통사고다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22 09:11:14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근대는 프랑스혁명으로 시작해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완성되었다. 프랑스혁명을 완성시킨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나폴레옹은 말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5·16혁명 62주년인 16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자리한 박정희 대통령 묘소 앞에서 70여 명이 추념을 드렸다. ‘국본의 민중홍 총장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이상고온 현상으로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충정의 의지만큼은 꺾지 못했다.
 
오후에는 시민단체 헌법수호단이 종로 보신각에서 5·16혁명 국민대축제를 열었다. 이종만 총단장의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된 축제는 종로 거리를 달궜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KBS·MBC·SBS 취재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여 개 유튜브 채널만 의욕적으로 방송할 뿐이었다. 한 달 전 세월호 9주기인 4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로 몰려간 추모객 2000명과 김기현·이재명 여야 당 대표들, 광주5·18에 모든 방송국이 생방송 중계를 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5·16혁명이 일어난 1961년 유네스코에서 정한 근대화기준 신문보급률100명당 10부였다. 그러나 한국신문연감 통계에 의하면 당시 서울의 일간지 보급률은 100명당 25부였다. 1945년 한국인의 문맹률은 78%에 달했으나 국가예산 10.5%를 교육비로 사용한 이승만정부 덕분에 1960년엔 문맹률이 4%로 낮아졌다. 1945년 대비 대학생 수가 12배나 증가해 영국보다 입학률이 높았다. 문맹 퇴치 5개년 사업을 통해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을 깨우친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은 한글을 깨우친 비판 세력에 의해 쫓겨나고 만다.
 
19604·19의거로 이승만정부가 물러난 두 달 후,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국회는 스스로 해산했다. 그리고 새 헌법에 따른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233석 중 175석을 싹쓸이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신파구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그리고 8월에 구파지도자 윤보선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는데, 이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은 실권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신파가 기획한 것이었다.
 
계획대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 국무총리에는 신파출신 장면이 임명된다. 그러나 장면내각은 10개월 동안 무려 세 차례나 개각을 단행한다. 이는 정책과는 상관없는 ·구파간 균형 맞추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밥그릇 싸움으로 장면정부 장관들의 평균 임기는 2개월에 불과했다. 얼굴도 익히기 전에 잘리고 새로운 장관이 얼굴을 내미니 행정부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결국 두 당파는 갈라섰고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당하고 만다.
 
1955년 이승만정부를 독재로 규정하며 창당한 민주당이 4·19로 정복한 권력을 놓고 벌인 자리다툼은 개판 5분 전이었다. 장면내각 10개월 동안 가두 데모는 2000건이 넘었다. 국회의원에게 뺨을 맞은 경찰이 시위를 하고, 초등학생들조차 교사의 전근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으며, 심지어 시위를 그만하라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군과 경찰을 숙청·척결의 대상으로 삼은 민주당은 군병력 10만 명을 감축하려 했으나 미군의 반대로 3만 명 감축에 그쳤다. 경찰은 일제식민지 하에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2만 명이 숙청됐다. 그 결과 민주당 집권 기간 중 범죄가 두 배로 늘었지만 범인 검거율은 이승만정부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치안이 엉망이 되자 깡패와 조폭이 활개를 쳤다. 당시 여론조사 응답자의 96%가 장면내각을 반대했다. 급기야 19613월 미국의 팔리 보고서장면정부는 4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며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공산혁명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3.15부정선거,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 하야, 개헌, 5대 총선, 장면내각  수립, 민주당 분당 등 불과 10개월 만에 벌어진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혼란은 자유 대한민국을 또다시 암흑 속으로 끌고 갔다. 그 중심엔 민주당의 섣부른 탐욕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암흑의 장막 끝에 분노한 박정희가 있었던 것이다.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은 공군참모총장으로 5·16혁명에 참여했다. 민주당에 의해 구속된 이정재·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은 감옥에서 5·16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으나 이들은 혁명 4일 후 나는 깡패다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서울 시내 곳곳으로 끌려다니다가 박정희에 의해 사형당한다. 513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졌지만 5·16이 발생하자 임명된 지 12시간 만에 국회가 해산되어 의원 자격이 박탈되고 만다. 그들 중엔 4번의 좌절 끝에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해 당선된 김대중 의원도 있었다. 박정희와 김대중 악연의 시작이었다.
 
어쨌든 4·19의거는 혁명으로 시작했음에도 무정부적 아수라장이 되었던 반면, 5·16은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박정희정부의 18년은 혁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절 프랑스혁명의 나폴레옹을 멘토로 삼았던 박정희, 일본군 장교이자 남로당 당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한국군 장교로 기사회생한 박정희, 3·15 부정선거에 분노해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을 계획했지만 4·19의거로 포기했던 박정희, 부패한 이승만정부가 무너졌음에도 밥그릇 싸움으로 정신없는 민주당을 겨냥한 박정희, 그래서 단 3일 만에 무혈혁명으로 세상을 바꾼 박정희, 그리고 한민족 5000년 가난을 벗고 불과 18년 재임기간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민등록증을 보급해 국가시스템을 통일하고 학원·과외를 금지시켜 교육 평등을 실현하고 의료보험제도로 서민 건강을 챙기고 4대강 홍수·가뭄을 줄일 다목적 댐을 건설하고 경부고속도로 완공으로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확대하고 세계1위 철강·조선·자동차산업을 육성하고 그린벨트 시행으로 세계 4대 조림국가로 부상하고 식량 자급자족으로 녹색혁명을 이루고 경공업·중화학공업을 육성해 반도체·전자공업의 기반을 다지고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서민의 발을 만들어 주고 서울 강남을 개발해 한류문화의 중심지로 도약시키고 독립국 140국 중 유일하게 과학진흥계획을 수립해 세계적인 과학국가 기반을 조성하고 의무교육 실시·야간학교 개설·고교 평준화로 세계 1등 교육국가로 등극하고 새마을운동으로 한민족 5000년 가난을 극복하고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 리더십으로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 줬다.
 
혁명을 꿈꾸며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전시킨 혁신주의자로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반공을 국시로 삼고, 독재자의 길을 가면서도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 그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인가.
 
21세기 ‘글로벌 코리아’의 위상은 이승만의 기독교혁명으로 시작해 박정희라는 인물의 인간 혁명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꾼 5·16은 철저히 무시하고, 종북 좌파의 빨대로 전락한 5·184·16 세월호 사건은 화려하게 챙기는 외눈박이들아! 5·16을 쿠데타라고 한다면 5·18은 폭동이고 4.16 세월호 사건은  교통사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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