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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주 금성파출소 무기고 습격… 목격자가 말하는 그날
[단독: 5·18 진실 찾기①] 軍레커 몰고 무기고 담장 돌진… 청년 20명 ‘우르르’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21 00:10:01
 
 
 
   당시 전남매일 기자 김동문 씨     동네 계란장수 민경수 씨  
   19일 낮 1시 무기고 ‘쏜살 접근’        20~30m 떨어진 곳서 탈취 목격  
   당시 총기 1700정·LMG30 보관        주동자가 “더 밀어… 더” 지시    
   사적지 돌판엔 21일 탈취 명시         무기고 구멍 뚫리자 총기 빼내 
 
▲ 전라남도 나주 금성파출소 무기고 탈취 현장에 들어선 사적비(왼쪽)와 5·18 당시 전남매일 기자로 근무한 김동문 씨가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이다. 남충수 기자
 
“쾅쾅쾅…, 군용 레커차(견인차)가 몇 번 후진하더니 무기고 문짝이 뜯겼습니다.” 
 
5·18 당시 전남매일 현직 차장급 기자였던 김동문(79) 씨는 1980년 5월19일 오후 1시쯤 전라남도 나주 금성파출소 무기고가 습격당한 현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무기고 피탈 현장으로부터 100m쯤 떨어진 신문 보급소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파출소 2m 옆에는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가 자리잡고 있다. 피탈 무기류의 양이 방대했던 것도 사실상 군부대 무기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나주에서 만난 김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날 오후 1시쯤 5t 규모로 보이는 군용 레커차가 쏜살같이 사무실 앞을 지나갔다”며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차의 주행 방향을 주시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군용차가) 파출소 앞에 서더니 방향을 바꿔 후진해서 담장을 밀어 버렸다”고 증언했다. 무기고 담장이 바깥은 블록, 안쪽은 적벽돌로 축조된 벽체였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 같은 증언은 당시 현장을 더 가까이에서 목격한 또 다른 시민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당시 검찰 수사 기록은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나주 시위대가 합세해” 나주경찰서에 진입했다고 적시했다. 또 군용 레커차로 무기고를 파괴하고 칼빈 500여 정‧M-1 소총 200여 정‧실탄 4만6000여 발을 탈취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록만 놓고 보면 나주 금성파출소 무기고는 복수의 시위대가 합류해 가장 많은 무기류를 다량 획득한 핵심 습격지로 볼 수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적어도 무기고 습격 1시간쯤 전에 나주경찰서가 경찰력을 철수토록 지시한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다. 
 
군용차가 무기고를 들이받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쪽을 주시했다는 김씨는 “쾅 소리가 여기(사무실)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 생생한 기억임을 강조했다. ‘쾅’하는 충격음은 적어도 세 차례였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3회 이상) 몇 번을 후진해서 밀더니 담벼락이 무너졌고 문짝이 뜯겼다”고 했다. 문짝은 완파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한 켠이 뜯겼고 그 틈 사이로 정체불명의 청·장년들이 들어가 무기류를 빼내 갔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문짝 파손)부터 청·장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기를 싣고 가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청·장년이 몇 명인지 구체적인 규모에 관해선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많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무기고 탈취 사건 직후 알고 지내던 예비군 대대장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그곳(무기고)에 무기가 어느 만큼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총기류 1700정과 LMG30 기관총이 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곤 사견임을 전제로 “나중에 총기류 1700여 정을 860여 정으로 낮춰 집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가 예비군 대대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LMG30 1정”은 금성파출소 탈취 무기류 목록에 없는 것으로 검찰은 기록하고 있다. 검찰 수사 기록엔 오후 3시35분쯤 시위대가 화순광업소와 동면지서를 습격해 실탄 1만4000여 발을 탈취했으며 이때 LMG 1정을 습득한 것으로 돼 있다. 김씨와 통화한 예비군 대대장의 금성파출소 LMG 보유 진술이 틀렸거나 당시 검찰 수사가 부실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피탈된 LMG30은 호남 각지에서 모두 22정으로 군은 파악했다.  
 
옛 금성파출소 자리에는 5·18 사적지를 알리는 돌판이 자리하고 있다. 취재진은 이곳을 방문했다. ‘(구)금성파출소 예비군 집중 무기고’라는 명칭의 사적비 소개말에 적힌 날짜는 김동문 씨 증언과 발생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적비에는 ‘이곳은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시민 학살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격분한 다수의 시민군들이 아시아자동차에서 탈취한 군용차량을 이용해 (중략) 획득하여 무장하고 무기의 상당수를 광주로 이송하여’라고 새겨져 있다. 
 
사적비가 시민학살이 알려진 시점을 ‘5월21일’로 기술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계엄군의 선제 총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시민들의 무기 획득 시점은 적어도 21일이었거나 그 이후가 된다. 하지만 무기고 습격에 동원된 군용 차량은 “미출고된 새 것으로 보였다”는 증언들이 있다. 무기고 습격보다 차량 탈취가 나중에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동문 씨는 자신이 아는 최초의 무기고 탈취 시점은 19일일 수밖에 없었다는 근거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나주시외버스터미널 일대가 19일 아침 아수라장으로 돌변한 사실을 꼽는다. 김씨는 “나는 나주에 살며 전남매일 본사가 자리한 광주의 전남도청 부근으로 1시간 걸려 출퇴근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날은 해상왕 장보고 기획특집을 만들기 위해 완도로 출장을 가려던 참이었다”며 “오전 8시30분쯤 다다른 터미널 부근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마치 난리가 난 것처럼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기자를 하며 알고 지내던 보안과장(경감)이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정리를 하길래 물었더니 간밤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교통편이 끊겼고 출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사에 알리려고 터미널에 갔지만 전화기에 긴 행렬이 줄지어 있어서 할 수 없이 전화기를 사용하려고 보급소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고 구체적으로 상술했다. 사무실은 전남매일의 나주보급소에 딸린 작은 사무 공간을 일컫는다. 
 
둘째 근거로 김씨는 19일 이후 자신이 나주에 없었던 점을 들었다. 그는 이후 전남의 한 예비군 대대로 피신했다가 그곳에 7일간 갇혀 지냈다고 한다. 김씨는 예비군 대대에서 겪은 일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김씨의 아내 클라라 김(77) 씨는 취재진에 “남편이 일주일간 행방불명돼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무기고 피습 1시간 전 경찰이 자진 무장해제 왜? 
 
김동문씨 “나주서 경무과장 낮 12시 철수 전화”… 경위 아리송 
칼빈 500여 정·M-1소총 200여 정·실탄 4만6000발 털어가 
검찰기록엔 “시위대 움직임 일사분란… 무기고 잇달아 습격” 
 
본지 취재진은 금성파출소 무기고 탈취 현장을 더 가까운 곳에서 목격했다는 증언자 민경수(65) 씨와 연락이 닿았다. 민씨는 현재 나주에 살고 있으며 발파 현장에서 포크레인 기술자로 일한다. 
 
수소문 끝에 찾은 그는 금성파출소에서 “20~30m 떨어진 곳”에서 무기류 탈취의 전 과정을 목격했다고 했다. 당시 상황을 더 상세하게 설명했고 무기류의 종류와 청장년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들이 했던 말도 일부 기억했다. 
 
당시 22세의 계란 장수였던 민씨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인적 규모는 “20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파출소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살았다고 했다. 밖이 소란스러워 나왔고 무기류 탈취 현장까지 걸어서 다가갔다는 설명이다. 
 
민씨는 인터뷰에서 “군용트럭이 뒤로 후진해서 몇 번 밀었다”고 운을 뗐다. 구체적으로 한두 번으로는 파괴가 안 되니 여러 번 (후진)했다며 “무기고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만 문이 무너졌다”고 묘사했다. 이어 “무기고의 문은 일반 가정집의 대문만 한 크기”라며 폭 1m, 높이 2m 정도라고 보충했다. 
 
그는 또 “무기고 앞에서 사람들이 내렸고 주동자가 ‘더 밀어, 더 밀어’라고 외치며 뒤를 봐주자 트럭이 후진해 무기고의 일부만 부쉈다”며 “사람들이 들어갈 정도가 되니까 트럭에서 내린 20명이 안으로 들어가 거기(무기고)를 털고 무기를 많이 빼갔다”고 증언했다. 
 
그러곤 “그후로 M-1인가 빼내 온 총을 쏴보려고 공중에다가 발사하니까 총알이 전선에 맞았다”고도 보충했다. “전깃줄에 맞아서 불이 반짝하며 합선되면서 전선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조준사격’이었는지 물었다. 민씨는 “조준사격은 아닌 것 같고 탈취한 총을 테스트하려고 공중에 공포를 쐈는데 우연히 전선에 맞아서 전깃줄이 끊어진 것 같다”고 했다. 
 
민씨는 날짜를 특정하진 못했다.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구체적으로 못 박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사월 초파일(부처님오신날) 당일은 아니었고 그 전(날)인가 전전날이었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오신날은 음력을 기준으로 매년 달라진다. 1980년에는 5월21일(수요일)이었다. 김동문 씨와 민경수 씨의 기억(19일)은 금성무기고 사적비 기록(21일)과 차이가 있다. 
 
▲ 무기 피탈 현황. 전교사
당시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시위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이른 시간 안에 무기고들을 연쇄 습격했다. 기록은 순차적으로 사건 목록을 기입했지만 시점으로는 피습 지역의 위치 등을 고려할 때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을 감행했다는 추정이 무리는 아니다. 지휘체계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유추가 가능한 대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오후 1시 광산 하남파출소에 시위대 80여 명이 차량 3대를 타고 와 칼빈 9정을 탈취했고, 10여 대의 차량에 탑승한 광주 시위대가 함평에 도착해 신광지서에서 총기 100여 정, 실탄 2상자를 확보했다고 검찰 문서는 기재하고 있다. 또 오후 1시35분 화순 소재 4곳의 파출소에서 총기 460정과 실탄 1만 발, 오후 2시 나주 남평지서 무기고에서 칼빈 20여 정과 실탄 7~8상자를 각각 탈취한 것으로 기록했다. 무기고 습격에 관여한 사람의 숫자 또는 연인원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복수의 시위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을 감행한 곳들은 김씨와 민씨가 증언한 금성파출소 습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여태껏 알려진 바에 따르면 피탈된 무기류의 종류와 양이 탈취 당일 기준으로 가장 많았던 사건이다. 
 
본지 취재에 응한 목격자들의 진과 검찰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대목도 있다. 당시 전남매일 기자였던 김씨가 예비군 대대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LMG30 1정”은 검찰이 기록한 금성파출소 탈취 무기류 목록에는 없다. 대신 검찰 기록은 오후 3시35분쯤 시위대가 화순광업소와 동면지서를 습격해 칼빈 1108정‧실탄 1만7760발‧M1 72정‧칼빈 296정‧AR 1정‧LMG 1정‧실탄 1만4000여 발을 탈취한 것으로 기록했다. LMG30은 이때 처음 등장한다. 
 
▲ 금성파출소무기 피탈 현황.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상황일지
 
반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상황일지는 
LMG 4정·실탄 6만 발이 금성파출소 무기고에서 탈취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칼빈 소총 510·실탄 3만600발, LMG 4정·실탄 6만 발, M-1소총 255정·실탄 1만6766발, AR소총 4정·실탄 1440발, 수류탄 182개를 금성파출소 피탈 현황으로 집계해 빼앗긴 무기의 종류와 수량이 가장 많았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민씨는 금성파출소 무기고 탈취 현장을 지켜본 이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3~5명의 주민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드문드문 모여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한 탈취자는 광주에서 대학생과 시민이 죽는데 당신들은 왜 동참하지 않냐고 고함쳤다”고도 했다. 말투는 광주 말씨였다고 민씨는 증언했다. 
 
김동문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 가지 미심쩍은 대목을 지적했다. 무기고 습격 사건 발생 시점 직전에 받은 전화를 거론했다. 그는 “나주경찰서 경무과장이 철수한다는 전화를 12시에 받았고, 한 시간 후인 오후 1시쯤 군용 레커차가 사무실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했다. 무기고가 습격받기 직전에 경찰이 스스로 무장해제한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그는 말했다. 
 
광주=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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