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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남도청 앞 군인 순직… 당시 道보건과 직원 이태규 씨 증언
[단독: 5·18 진실 찾기②] “軍 아닌 시위대 장갑차에 權일병 깔려 숨져”
“100m 사정없이 돌진 그대로 밀어붙여… 4층 창가서 목격
조사위 ‘아군끼리 사고’ 초기 보고서는 잘못… 바로 잡아야”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28 00:10:00
 
 
 
 
▲ 광주시민 이태규 씨(74)가 계엄군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목격한 전남도청 4층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1980년 5월 당시 도청 보건과 직원으로 근무한 이씨는 최근 본지 취재진과 만나 도청 일대를 답사한 뒤 4층 복도에서 목격한 사실을 증언했다. 남충수 기자
 
“바퀴가 달린 시위대 탈취 장갑차에 권용운 일병이 깔려 죽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1980년 5월 전남도청 보건과에서 근무한 이태규(74·예명 정의한) 씨는 “군인이 몰던 장갑차가 후진하다 동료 군인을 죽였다는 증언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끔찍했던 순간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씨는 최근 광주에서 본지 취재진과 만나 “보건과 사무실이 있던 도청 건물 4층 복도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시위대가 탈취해 운전하던 장갑차가 100m 이상 그대로 직진해 군인을 깔아 죽이는 모든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사망자는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의 고(故) 권용운 일병이다. 이씨는 권씨 시신을 직접 수습했던 과정도 증언했다. 
 
시신은 동료 장병들이 도청 본관 1층 복도 제일 안쪽까지 이송했다. 간호사들과 함께 뒤덮인 천을 들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시신을 봤을 때의 충격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고무 바퀴에 짓눌린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캐터필러에 짓이겨진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권 일병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아군이 후진하다 과실로 죽였다”는 의견과 “시위대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당시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에서 탈취한 장갑차는 바퀴형이었고, 계엄군의 장갑차는 캐터필러형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이태규 씨는 “직접 시신을 수습한 보건 담당 공무원으로서 내 증언이 가장 정확하다”며 권 일병이 바퀴에 깔려 사망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구체적으로 “21일 오후 2시쯤 시위대가 도청을 향해 장갑차를 밀고 왔다”며 예사롭지 않은 군용차량의 움직임을 보고 일종의 ‘촉’이 발동했던 기억을 털어놨다. “군인들을 향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오는데 눈을 떼려야 뗄 수 없었습니다. 저대로 돌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그대로 주욱 밀고 왔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밀어 버린 겁니다.” 
 
당시 도청에선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창밖으로 시위대와 군인이 대치하는 곳을 내다보거나 창가에 있지 말라고 꾸준히 안내 방송했다. 그는 “공무원 생활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공무원 감각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데모대가 블록을 깨서 쌓아 두고 화염병을 던지며 금남로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는 상황에 관심이 있어서 줄곧 내다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지켜보던 동료가 안으로 들어간 후 나 혼자 창밖을 보다가 충격적인 모습을 보게 됐다”고 증언했다. 
 
시위대 장갑차 돌진하자 무너진 軍 저지선 
 
이씨는 목격담을 상세하게 보충했다. 그는 “엎드린 자세로 경계하던 군인 2명이 일어서서 뒷걸음질치다 한 명은 (오른발) 뒤꿈치를 치이며 (현재 롯데리아 건물 쪽 왼편 인도로) 튕겨 나갔고 미처 피하지 못한 군인 한 명이 그 자리에서 깔려 압사당했다”고 강조했다. 
 
숨진 군인이 권 일병이라는 사실은 복도로 옮겨진 시신을 수습하고 나서 알게 됐다고 한다. 취재진은 이씨와 함께 권 일병 사망 현장을 답사하며 좀 더 상세한 사망 경위와 당시 정황·위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가운데 분수대를 끼고 전일빌딩245와 옛 전남도청이 마주하고 있었다. 이씨는 지금은 롯데리아 매장이 입주한 건물의 앞을 사고지점으로 특정했다. 1980년에 수협 도지부 건물이 있던 자리다. 이곳에는 ‘5·18 민중항쟁 사적 5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씨 증언에 따르면 시민군이 운전한 장갑차는 전일빌딩 앞 금남로에서 현재 금남지하도상가 윗쪽으로 전력 질주한 뒤 롯데리아 앞에서 권 일병을 치어 숨지게 했다. 금남로~서석로에 이르는 거리는 직각의 굽은 아치형 도로이다. 그러나 전일빌딩 남쪽 모서리에서 롯데리아 앞 기념비까지의 직선거리는 100m 정도가 된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시위대가 있던 곳을 뚫고 금남로를 따라 동쪽 방면으로 서행 직진한 뒤 대치했던 장갑차는 전일빌딩 앞부터 전속력으로 계엄군이 있던 장소까지 직진했다고 한다. 
 
1995년 검찰 수사 기록은 이태규 씨의 증언과 같이 권 일병이 시민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적시했다. 당시 수사 기록 99쪽은 “오후 1시경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시위대가 화염병을 투척해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 쪽으로 돌진하자 공수부대의 저지선이 무너졌다”고 기록했다. 
 
이어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부근 전남도청·상무관·수협 도지부 건물 등으로 산개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사망했다”고 상술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김영택 씨도 5·18광주청문회 당시 시민군 쪽에서 장갑차가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자 계엄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계엄군이 장갑차에 깔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반면 ‘집단발포’의 계기와 맞물리면서 권 일병 사망 원인은 화염병에 놀라 후진하던 계엄군의 과실 때문이라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태규 씨는 이번 인터뷰 내내 5·18 최초의 사망자는 군인이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공간에서는 처음으로 발생한 사망 사건이었다는 일관된 진술이었다. 다만 그는 희생자를 권 일병으로 꼽았다. 그의 이 같은 증언은 지난해 5월 공개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의 중간 조사 발표 결과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배치된다. 
 
“내가 전수조사 때 사망 105명… 지금은 터무니없이 늘어” 
 
도청 가운데 공터에 트럭 탄 청년들 ‘이상한 시신’ 마구 들여와 
비도 안 왔는데 진흙투성이에 뼈만 남은 시신들 수두룩 
가짜 유공자 판치는 현실에 통탄… 진실규명 불 지펴야  
 
▲ 5·18민주광장에서 바라 본 옛 전남도청 건물.(위)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 보건과 직원으로 근무한 이태규(74) 씨가 옛 도청 본관 서문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했던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이씨는 정체불명의 젊은사람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을 트럭으로 싣고 와 본관 옆 공터에 임시로 안치했으며 나중에 상무관으로 옮겼다고 증언했다. 남충수 기자
 
5·18조사위 최초 軍 사망자도 규명해야 
 
먼저 5·18조사위는 보도자료에서 “권 일병 사망 사건 현장 바로 근처에 있었던 11공수여단 병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계엄군 측 장갑차가 화염병에 놀라 갑자기 후진하는 과정”에서 아군이 아군을 죽였다는 진술이 있다고 기술했다. 
 
취재진이 조사위 발표 내용을 언급하자 이씨는 “내가 유일한 목격자였다”고 거듭 강조하며 아군에 의해 숨졌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조사위는 올해 말까지 조사 일정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공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작년 5월 발표는 중간 집계 성격일 뿐 최종 보고서는 아니다. 
 
조사위는 아직 권 일병 사망사건의 사실관계를 규명하진 못한 것으로 발표했다. 조사위는 자료에서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들의 상반된 주장”이 있었다고 짚었다. 송선태 위원장은 작년 5월12일 대국민 보고회에서 “계엄군들의 상반된 주장을 포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조사위도 권 일병 사망 원인을 단정 짓지 않으려는 신중한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 장갑차가 계엄군을 치어 죽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다음으로 이씨의 주장과 조사위 발표 자료는 최초 사망 군인이 누구인가에서 차이가 있다. 
 
조사위는 지난해 공개한 보도자료 6쪽에서 “신안사거리에서 차량에 치여 사망한 정모 사건”에 대해 짧게 기술했다. 조사위가 언급한 정씨는 고(故) 정관철 중사다. 계엄군 사망자다. 여태껏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군 사망자라는 증언들이 있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21일 도청에서 겪은 일이 있기 하루 전날 정 중사 사망사건에 관한 정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규 씨가 처한 상황에선 권 일병이 최초의 군 사망자라고 그가 믿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5·18조사위가 각종 사건의 발생 시점을 철저히 가려낼 필요성이 제기된다. 실제 사건과 수사문서·사적비에 기록된 시점들이 시간의 흐름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본지 6월21일자 [기획 시리즈 ‘5·18 진실 찾기’] ①나주 금성파출소 무기고 습격 보도 참조> 
 
뼈만 남고 형체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 
 
이씨는 조기 퇴직 후 15년 정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지냈다. 최근 5년간은 가족이 있는 미국과 한국에 자주 오갔고 대부분은 미국에서 지냈다. 그는 5·18 당시 도청이 수복된 27일부터 그후 6개월 동안 권 일병을 비롯한 모든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전수조사했으며 각 병원 원무과에 전화를 돌려 부상자를 집계한 보건의료 공무의 당사자였다. 부상자는 향후 5년간 관리했다고도 했다. 
 
이씨는 현재 5·18 사상자 집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엉터리”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을 더 늦기 전에 활자매체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고향인 구례에 가족과 피신해 있던 이씨는 27일 도청이 수복됐다는 방송을 청취하고 택시를 타고 도청으로 출근했다. 이때부터 시신과 부상자를 집계해 박인수 과장(작고)을 거쳐 도청 보건사회국장에게, 때로는 김종철 도지사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이씨는 “도청 가운데에 공터가 있었는데 어디선가 트럭을 탄 젊은 사람들이 뼈만 남은 시체, 전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 50구 정도를 갖다 놓고 떠나곤 했다”며 “트럭은 2~3차례 더 왔다 가며 누적 70~80구 정도까지 시신이 늘어났는데 대관절 어디에서 갖고 오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널빤지에 비닐로 싸여진 시신들은 전부 다 황토 범벅이어서 의아했다"며 “마치 어딘가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서 가져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은 5·18 기간에 대체로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고 증언한다. 이씨는 시신을 가져온 젊은 사람들이 누구라고 기억하는지 묻자 “알 수 없었다”고만 말했다. 
 
“5·18 진실 규명의 군불 때야 할 때” 
 
도청의 시신 안치소를 찾은 유족들이 많지 않은 점이 의아했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씨는 “몇천 명이 죽었다느니 소문이 났지만 전대병원과 통합병원·기독병원·조대병원 등 병원마다 전화해 사상자를 최종 집계하니 사망자 105명, 부상자는 483명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동생이나 가족이 5월18일부터 27일 사이에 행방불명됐는데 신고 안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라며 “사망자 600만 원, 부상자는 400만 원씩 정부에서 줬는데도 시신을 찾으려고 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없었다는 게 정말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5년 친척이 별세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처음 5·18 묘역에 갔는데 800여 명까지 사망자가 늘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공원 관계자 말로는 4000여 명이 더 (사후 묘지에 입관)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태규 씨는 “보건 공무원인 내가 5·18 이후 5년간 관리하는 동안 늘지 않은 숫자가 어떻게 30년 뒤에 몇 배로 증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저은 뒤 “지금이야말로 5·18 진실 규명의 군불을 때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광주=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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