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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만행 폭로 이경남 목사 파격 제안… ‘열린 5·18’ 촉구
[단독: 5·18 진실 찾기⑬] 계엄군 만행 폭로 이경남 목사 “北 개입 사실이라면 인정하자”
민주화 평가 아닌 팩트 추구의 문제… 실체 찾기에 나서야
종교가 된 5·18… 증거 드러나도 부정하는 광신 벗어날 때
껄끄러운 진실 밝혀져도 항쟁의 가치·의미는 손상되지 않아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06 00:05:01
▲ 계엄군의 잔혹성을 처음 고발한 이경남 목사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5·18 북한 개입설은 충분히 조사해야 하고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남충수 기자
 
계엄군 관점에서 계엄군의 잔혹성을 처음 고발한 5·18 회고록의 주인공 이경남(67) 목사가 “그들에게 5·18은 종교였다”는 파격 발언을 했다. 
 
이 목사는 최근 담임목사로 있는 평택의 한 교회에서 가진 스카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의 5·18 개입설은 평가가 아닌 기초적인 팩트 추구의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처음 회고록을 출간한 뒤부터 속칭 좌 성향 신문방송의 단골손님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해마다 5월이면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앞다퉈 인터뷰 요청을 해 왔고 이 목사는 광주를 찾아 방송 촬영에 임했다. 이렇게 인터뷰한 TV와 신문의 수만 지금까지 50곳이 넘는다. 
 
2000년에는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고 MBC·KBS 토론과 국회 토론에 패널로 출연했다. 영국 BBC와 일본 NHK·독일 ARD 등 외신도 이 목사의 증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군분교 습격사건… 우리 중에 불순세력 있다 느껴” 심경 변화 
 
계엄군의 시선으로 계엄군이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한 데다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계엄군 병사가 시민군 장갑차가 아닌 군 장병이 운전하던 장갑차에 깔렸다고 증언하면서 그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간주해 온 이들에겐 일종의 ‘셀럽(유명인)’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이 목사가 이젠 “북한 개입설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며 그간 그가 보여 왔던 행보로 미뤄 여간해선 쉽지 않은 파격적인 발언을 꺼낸 것이다. 
 
왜일까. 그에게 최근 4~5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인터뷰 초입부터 심경의 변화를 화두 삼진 않았다. 자연스레 근황부터 물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근황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앞서 늦은 밤 2시간 가까이 통화한 사이였기에 가능했다. 
 
이 목사는 올해 6월 ‘증언’이라는 책을 펴냈다. 푸른색 톤의 깔끔한 북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이경남 목사의 박하사탕’이라는 작고 하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빚어진 사건부터 43년 전 5·18 당시로 흘러가는 시간의 역순으로 서술됐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그 책을 신문사로 보내 왔다. 이경남이라는 이름은 이미 익숙했다.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장갑차에 깔려 숨진 계엄군 병사에 관한 증언이 본지 취재와 달랐던 터였다. 본지는 “시민군 장갑차에 의해 숨졌다”는 도청 보건과 직원 정의한 씨의 증언을 보도했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책을 읽다가 기자의 선입견을 깨는 내용들이 연거푸 눈에 들어왔다. 이내 전화를 걸었고 밤늦게 걸려 온 회신으로 비로소 첫 통화가 이뤄졌다. 내친김에 사진기자와 함께 평택에 있는 교회까지 찾아가 만남이 성사됐다. 
 
이 목사는 “소위 말하는 진보·좌파·민주당 쪽 사람들은 왜 거짓말에 능한지 의아하다”고 운을 뗐다. 서두에는 약간 에둘러 말했지만 그는 곧이어 정제된, 그러나 속내를 애써 감추지 않는 말들로 격정을 토로했다. 
 
“아니 세상에 맨날 평화·인권·통일·생태·민주 이런 것을, 이 세상 좋은 것은 다 하겠다는 이들이 5·18 왜곡 처벌법을 만들어 다른 말 하는 사람들을 이제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 아닌가.” 차분하던 목소리가 약간 격앙됐다. 
 
이 목사는 “왜곡 처벌법의 전제는 서구 독일 사회에서 나치 추종 운동하는 극우주의자들로 (북한군 개입을 입증하려는 이들을) 보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5·18 북한 개입설(說)은 평가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 정황상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를 놓고 팩트를 찾아 가는 문제”라며 “우리가 군사·안보·전술적 측면에서 충분히 조사해야 하고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는 게 분명한 나의 입장”이라고 했다. 
 
“진실 추구가 독일 나치 극우주의자들 대하듯 할 일인가” 
 
유의미한 해석도 곁들였다. 5·18 북한군 개입이 규명되면 광주의 위신에 적잖게 손상이 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는 “5·18에 북한이 개입해 어떤 작업을 했다고 하면 5·18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데미지(손상)가 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당시 1980년 상황에서 군부의 재집권 의지와 그에 따라 행동했던 군인들의 난폭한 폭력, 그것에 맞섰던 시민들의 저항의 의미와 가치가 손상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처럼 5·18을 신군부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따른 계획된 정부 주도형 사태로 보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본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이 목사는 지혜로운 해법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인정하고 우리가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을 때 그들(북한) 또는 제3의 외부 세력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가 대등하게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아니라는 데 초점을 둔 발언이다. 이 목사는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 같지 않고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고 김정은의 북한이라는 가장 호전적인 집단을 가까이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제시했다. 
 
5·18 북한 개입설을 바라보는 이 목사의 관점은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을 때 제3자가 어떤 식으로 개입하는지 그걸 알고 향후 유사한 상황에 대비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이나 정부조사위원회,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보는 이들에겐 5·18이 종교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신화가 돼 버린 5·18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영역이 됐기 때문에 다른 어떤 평가도 허락하지 않고 다른 접근법에 대해서도 물리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취지로 변질됐다고 이 목사는 지적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이게 일종의 광신이 됐고 객관적인 증거가 나와도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이 목사는 광주 시민의 입장을 거듭 대변하기도 했다. 그는 “5·18 당시 계엄군의 폭력에 저항하며 피해를 당한 이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1988년 5공 청문회를 거쳐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받고 피해자들이 보상받는 변화가 일어나며 5·18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게 이 목사의 주장이다. 
 
먼저 5·18 유공자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많은 국민이 5·18 유공자 문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유공자 명단을 밝히라는 요구를 꾸준히 해 왔지만 번번이 광주광역시와 민주당에 의해 거부되면서 국민적 의구심만 더 키운 꼴이 됐다고 했다. 
 
▲ 이경남 목사는 “가짜 유공자 공개 요구가 번번이 묵살되면서 국민적 의구심만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군분교 습격사건 불순세력 ‘직감’… 심경에 변화 
 
가짜 유공자 의혹 번번이 묵살… 국민적 의구심만 더 키워 
우리 사회 또 다른 혼란 때 제2의 北 개입 차단 교훈 돼야 
암매장 추모 김군’ 이제 나타나… 그동안 대국민 쇼한 것 
 
“북한 개입 확인된다고 항쟁의 가치 저하되는 것은 아냐” 
 
이번 스카이데일리 보도를 통해 5·18과 상관이 없는 많은 정치인과 문화·에술계·학계 인사들이 유공자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 그래서 정치인들이 그렇게 명단 밝히기를 꺼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직접 피해자가 아닌데도 훗날 5·18이 재평가받도록 기여했다고 해서 자기들을 유공자 명단에 넣고 돈과 명예를 챙긴 것은 치졸한 일이라며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5·18을 바로잡으며 그 억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봉급을 받는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자기 일을 한 것뿐인데 내가 이런 일을 했으니 나도 유공자라면서 보상금을 챙기고 그것을 훈장 삼아 명예와 권세를 누리며 감추고 있었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행태라고 느꼈습니다. 가짜 유공자들을 골라내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다시 북한 개입설로 화제가 이어졌다. 취재진이 우리 사회 분위기가 북한 개입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된 과정을 추가 질문하면서부터다.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이 목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인이 늘면서 5·18 북한 개입에 대한 말들이 돌기 시작했다”며 시스템클럽 지만원 박사가 수백 장의 사진을 통해 북한 게릴라 침투설을 주장할 무렵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서 많은 국민이 동조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황한 5·18재단이 2017년 미국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을 공개해 북한 개입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국민을 속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당시 재단은 1980년 5월9일 문서를 번역·발표했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문건의 시점이 5·18 이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무엇보다 “북한은 현재 악화하고 있는 남한의 정세에 대응해 어떤 군사적 행동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장을 재단이 침소봉대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오류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목사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장 뒤에는 ‘현 상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979년 12월20일과 1980년 2월8일에 우리가 지적했듯, 한국에 널리 퍼진 혼란한 위기 상황이 북한의 한반도 무력 통일을 촉발할 수도 있다. 워싱턴이 남아시아와 미국 내 문제에 정신이 팔린다면,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해결하거나 한국을 방위할 능력이 심각하게 약해졌다는 생각으로 북한은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말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이 문서는 아직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만약 미국이 남한의 불안한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북한이 언제든지 군사적 야욕을 드러낼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서였다”며 “어떻게 이렇게 (맥락이 다르게) 사용하는지 참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北 전면 남침설과 北 개입설은 구분 필요… “침투 게릴라 찾아야” 
 
이어 북한 남침설과 북한 개입설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게릴라전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지 전면 남침 의혹은 아니었다는 게 요지다. 
 
이 목사는 “5·18에 북한 게릴라들이 개입했다는 것은 남침이 아니라 소규모 게릴라들이 침투하고 그래서 광주의 소요 사태가 악화되도록 조작한 의혹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5·18을 연구해 온 측에서는 이를 두고 ‘모략전’이라고 한다. 즉 국군 복장을 한 북한 게릴라가 시민을 죽인 뒤 계엄군의 짓으로 덮어씌우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른바 ‘남-남 갈등’ 즉, 남한 국민끼리 싸우는 분열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기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건은 북한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북한은 서해 섬들을 통해 대남 무장 공비들을 대거 침투시킨 사실이 우리 정부 문건에서 확인된다. 전면전을 대비하는 사이 게릴라전은 이미 시행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는 방증이다. 
 
이 목사는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던 마이클 리 박사는 당시 북한이 남한의 사태에 개입해 서울과 광주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 시민혁명위원회의 이름으로 북한의 개입을 요청하고 그것을 남침의 명분으로 삼으려던 게 북한의 음모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1998년 황장엽 씨와 김덕홍 씨가 월간조선과 인터뷰하며 5·18 북한 개입에 대해 진술했는데 당시 정보기관의 제재로 제때 보도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1980년 5월21일 아침 광주 농성동에서 20사단 사령부 및 62연대 지휘 차량이 괴한 약 300명에게 피습된 ‘군분교 습격 사건’도 이 목사가 북한 개입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된 근거 중 하나였다. 
 
그는 1995년 7월 서울지검 국방부 감찰부의 조사 결과는 “군부를 반란죄로 처벌하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이해하려는 취지에 걸림돌이 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 같다”고 추정하며 당시 피탈된 무기 중 기관총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개인적 체험을 털어놨다. 
 
이 목사는 “M60 기관총 3문과 실탄 200발, M60 차량 장치대 2개가 피탈된 사실은 우리가 아는 5·18을 다시 보게 하는 중대한 계기였다”며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와 대치할 때 민간인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거나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름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치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기관총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면 단순한 평화시위대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만원 박사 北 개입설에 김군 동상까지 만들더라” 
 
김군 사건도 그의 생각의 변화를 끌어낸 한 요인이다. 
 
이 목사는 “광주 금남로에 있는 가톨릭센터가 현재 5·18 역사기록관이 돼 있다”며 “전시실 입구에 제일 크게 걸려 있는 것이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군인들을 몰아낸 시민군의 모습인데 이 영웅적인 사람이 누구냐는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기념재단 측과 교류하며 당시 정황을 잘 알던 이 목사에 따르면 “제일 먼저 당시 21살이던 시민 하나가 자기라며 나섰는데 나이도 그렇고 군대도 아직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중화기(기관총)를 다룰 수 있느냐며 인정받지 못했다”며 “그러자 두  번째로 나타난 사람이 김군이었다”고 했다. 
 
그러곤 “원지교 밑에 넝마들이 살았는데 늘 자기 식당에 와 밥을 먹던 이가 5·18 이후 사라졌다며 김군이라는 말이 나왔다”며 “그리고 다른 증인들이 나타나 그 사람이 5월24일 송암동에서 군인들에게 잡혀가 피살 암매장됐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까지 만들고 (시민들이) 광주 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는데 밑도 끝도 없이 이번에는 차복환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기라고 선언하고 홍보하는 일이 벌어져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며 “차씨가 맞으면 영화 김군은 전 국민을 속인 쇼를 한 것이니 대국민 사과한 뒤 동상을 없애야 할 일인데도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이런 일을 조사하고 밝히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이런 말을 하면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위협했다”며 “게다가 이번엔 헌법전문에 넣겠다며 양당이 합작하고 있다. 헌법이라는 건 한번 만들면 다시 고치기 어려우니 전문에 넣기 전에 미심쩍은 일을 먼저 정리하자는 게 내 주장”이라고 했다. 
 
▲ 이경남 목사는 “불의와 폭력에 항거하던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은 간 데 없고 “비열하고 사악함만 남았다”고 통탄했다.
  
이념적 와해… “숭고한 정신 사라지고 비열함만 남아” 통탄 
 
이 목사는 “우리가 5·18을 존중하는 것은 그 불의와 폭력에 항거하던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 때문인데 지금 되어 가는 상황은 참 비열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문제를 잘 분별해서 해야 한다고 고언을 드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와해된 상태라고 우려를 보탰다. 
 
이 목사는 “정율성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념적으로 얼마나 와해된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했다. 이 목사는 정율성이 작곡한 중국인민해방군가의 가사를 직접 찾아봤다고 했다. 
 
그는 “원수들을 모조리 쓸어 물리치고 모택동 기치 높이 날리자고 돼 있는데 가사에서 원수는 중일전쟁 시기에는 일본이었고 국공내전 때는 장개석 군대였으며 6·25전쟁 때는 미군과 연합군·한국군이었다. 대한민국을 없애자는 군가를 작곡한 공산주의자를 추모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따져 물었다. 
 
 
 
평택=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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