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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의혹 안 풀려… 광주 미스터리 중 하나
[단독: 5·18 진실 찾기⑭] ‘연고대생 500명 가세’ 진원지는 北방송
北지령 수행한 숫자냐, 서울서 온 대학생 지칭하나
시위 참여한 광주시민들도 잘 몰라… 실체 ‘아리송’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13 09:00:29
 
5·18 당시 ‘서울에서 온 연고대생 500명’의 최초 진원지는 북한방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5월 일련의 사건 전개 과정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표현 중 하나가 ‘연고대생 500명’이다. 계엄령으로 학생시위 주동자들이 군경을 피해 숨어든 상황에서 수백 명의 대학생이 외지, 그것도 서울에서 광주까지 원정을 갈 수 있었겠냐는 의구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령과 수배령으로 학생시위 주동자들이 종적을 감춘 상황인 데다 서울~광주에 이르는 나주 길목이 차단돼 교통이 사실상 마비된 시점에 대학생 수백 명의 이동을 계엄당국이 낌새조차 차리지 못했겠냐는 의문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 또는 인민군 소속이 아닌 북한 특수작전대원(특작대원)·고정간첩 등이 5·18에 남파됐다고 주장해 온 측에서는 이 숫자를 북한의 지령을 수행한 이들이라고 주장한다. 민주화운동의 틈바구니에 낀 모종의 불순세력이 북한의 개입을 우회적으로 자화자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면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보는 쪽에선 실제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을 연대생과 고대생이라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지칭한 것에 불과한데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북한 개입설을 뒷받침하는 확증편향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1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1980년 5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대공요원들은 북한방송을 시청하다 ‘연고대생 600명’이라는 북한 진행자의 멘트가 자막과 함께 공개된 사실을 접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 북한 방송에선 ‘600명’으로 방송됐으나 이후 한국사회에서 ‘대학생 500명’과 ‘대학생 600명’을 혼용하고 있다. 
 
당시 서울의 안기부 가옥에서 대공요원으로 근무한 김영택 (사)자유수호국민운동 상임고문은 “5월18일 오전 9시부터 이북방송이 연고대생 600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증언했다. 
 
최근 서울의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김 상임고문은 “연고대생 600명은 우리(남한)가 만든 이야기도 아니고 남한에서 가능성이 있었던 이야기도 아니다”라며 “시위(시민군)에 참여했다는 광주시민들도 연고대생 600명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엄령 전국확대와 맞물려)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시작할 때 북한 방송이 연고대생 600명이 광주에서 전두환 파쇼정권에 대한 궐기를 시작했다고 대대적으로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상임고문은 “전두환 타도 운운하며 북한방송이 연고대생을 언급하는데 남한 사람들도 방송국도, 심지어 정보부도 어떤 맥락인지 몰랐다”며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시 북한방송이 연고대생 600명을 처음 언급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연고대생 500명’ 언급… 北 ‘광주 개입’ 근거될 수도 
 
북한세력 개입 드러나면 5·18 성격 달라져 
기념재단은 홈피서 ‘연고대생 500명’ 들어내 
 
▲ 김영택 (사)자유수호국민운동 상임고문과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앞 잔디광장 벽판.
  
당시 정보당국은 실제 학생 시위대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5월17일 최규하 정권이 부분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김대중을 체포하면서 시위 주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에 나서자 (주동자들이) 일제히 잠적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그때 북한방송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안기부 간부들은 늘 방송을 틀어뒀으니 방송을 듣고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군 개입설’은 지금까지 5·18과 북한을 연관 짓는 갖가지 의혹들의 정점에 있다. 북한군 또는 군 소속이 아닌 특작부대의 개입이 확인되면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 부분 사실성을 뒷받침할 만한 주장들도 얽히고설키며 혼재돼 있지만 실제 북한을 최초 진원지로 꼽을 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뒷받침되는 실질적 증언은 그동안 많지 않았다. 이번 복수 대공요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중 하나로 연고대생 500명을 꼽을 수 있다. 
 
김 상임고문은 지만원 박사가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김 고문의 옆 사무실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이 무렵 안기부 대공요원들이 ‘연고대생 600명’을 자막과 함께 내보낸 방송을 시청한 것이다. 
 
▲ 5·18기념재단 홈페이지는 2013년 6월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이라는 문구를, 두 달이 흐른 8월에 ‘시민·학생 등 800여명 석방’으로 수정했다. 
 
5·18기념재단, ‘연고대생 500명’ 문구 삭제하기도  
 
연고대생 500명이라는 표현이 수상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5·18측이 게시 문구를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앞 잔디광장 벽판의 상황일지에는 ‘연고대생 500명’ 문구가 있었다. 이곳은 5·18 기념공원에 있고 5·18기념문화센터와 가깝다. 
 
2013년 6월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5월 22일 15:08 목요일, 맑음.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이라고 게시됐지만, 같은 해 8월엔 ‘5월22일 15:08 목요일, 맑음 시위도중 연행된 시민·학생 등 800여명 석방되어 도청 도착’이라고 바뀐 채로 게시됐다. 
 
김 상임고문은 “연고대생 500명이 북한군이 아니냐는 개념으로 설명이 되니까 겁이 났는지 그 표현을 지운 것으로 안다”며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기념하는 측에서도 '연고대생 500명'의 출처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5·18 연구가는 “남한 사람들도 몰랐던 무기고 습격 소식을 북한방송이 시시각각 보도한 것부터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최초의 방송 멘트에 이르기까지 5·18 당시 북한의 행적을 보면 수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진상조사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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