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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체성 바꿀 중대 변수… 의도적 조사 회피 의혹
[단독: 5·18 진실 찾기⑯] 5·18조사위 ‘北개입설’ 은폐 급급
文정부 내내 전남대 운동권 출신들이 조사방향 좌지우지
4년간 혈세 쓰면서도 불공정한 잣대… 법적 책임론 ‘빗발’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27 23:05:01
 
▲ 지난해 5월12일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가운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위원장 송선태)가 4년간 막대한 정부예산을 쓰고도 북한군 개입설 조사를 고의로 축소·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5·18 직전 ‘사전 무장봉기’를 계획한 것으로 밝혀진 송선태 위원장(장관급)을 비롯해 조사 방향의 열쇠를 쥔 키맨들의 상당수가 전남대 운동권 출신인 조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2021년 1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1장 3조의 9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을 진상규명 조사 범위에 포함했다. 
 
법 규정에 ‘침투 의혹’ 대신 ‘침투 조작’이라는 표현이 사용돼 결론을 미리 정하고 예단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우선 지적된다. 
 
그러나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막대한 국민 혈세를 쓰는 조사위가 법이 규정한 북한군 개입 문제를 성실하게 조사하고 국민적 의혹을 풀어야 할 법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조사위 해단 이후 공직자로서 재직 시절의 책임 소재가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2월 활동 종료를 앞둔 조사위가 4년간 거액의 정부예산을 쓰고도 북한군 개입 여부를 명백히 가려내기는커녕 고의로 외면 또는 축소·방치해 온 단서들이 포착돼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군 개입설은 확인 여부에 따라 5·18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한다. 우리 군복을 입고 계엄군 행세를 한 북한 무장공비와 고정간첩이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쏜 뒤 계엄군의 잘못으로 덮어씌운 모략전술이 드러나면 정부 폭력에 항거한다는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서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기존 5·18유공자는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반면 여전히 진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도청 앞 집단사격’(포 사격이 아니므로 ‘집단발포’라는 용어는 잘못) 의혹 등 그동안 사태 유발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혀 온 계엄군의 만행이 북한군 소행으로 책임이 전환되면 43년간 거듭돼 온 남남갈등과 반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실추된 군의 위상이 회복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당시 계엄군과 시민이 진심으로 손을 맞잡고 화해할 해빙무드가 비로소 조성될 수 있어서다. 
 
또한 호남과 선량한 광주시민에 대해 그간 사회에 만연해 온 차별적 풍토가 일순간 개선될 가능성도 크다. 계엄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광주시민에서, 북한의 계략과 교묘한 선전선동에 휘말려 차별 피해를 당해 온 호남 도민 전체로 피해 회복의 객체가 확대되는 관점에선 국가적 실익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인지, 북한군 또는 북한 인민군 소속이 아닌 민간 공작조가 개입한 폭동·반란인지 성격을 재정립할 중요한 책무를 조사위가 고의로 외면한 것은 간과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18이 특정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정파·정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전락한 결과, 역설적으로 다수의 호남 도민을 현실 피해자로 양산한다는 근거에서다. 
 
광주 출신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 차원에서 5·18을 연구해 온 김덕수 전 20사단 계엄군 중대장(대위)은 최근 본지와 만나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는 순간 가짜 유공자가 대거 탄로나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본인이 가짜인 걸 알고도 오랜 시간 달콤한 혜택을 누리며 위선적인 삶을 지내 온 것인 만큼 그 죗값을 돌려받는 건 당연하다”며 “그보다는 호남 사람 전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염두에 두고 5·18 북한 개입설에 접근하는 게 바람직한 자세”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광주의 문화예술은 계엄군을 악마화하는 데 특화됐다고 할 정도로 그간 사회 분위기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우리 군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데 혈안이 됐던 게 사실”이라며 “그래서 북한군 개입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조사가 중요했지만 조사위 활동 마감을 앞둔 이제 와서 보면 부질없이 헛된 기대였다는 걸 다시 느끼곤 한다”고 지적했다. 
 
조사위 “북 개입 없다” 결론 점쳐져 
 
조사위는 2020년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해 12월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올해 6월까지 6차례 중간 보고서를 냈다. 12월26일 활동을 종료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최종 보고서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6차 보고서는 북한 개입설에 대한 조사위의 조사 정도를 가늠하고 최종 보고서를 예측케 하는 일종의 ‘풍향계’다. 이의제기 기간 90일을 고려하면 조사위의 본격 활동은 9월에 대부분 일단락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사위가 △최초 사격명령 △도청 앞 집단사격 △헬기 기총사격 등 스스로 밝히겠다며 직권으로 상정한 21개 안건 중 조사위 전원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을 통과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광주MBC 보도에 따르면 유족이 조사를 요청한 132건 중 20여 건은 활동 종료가 임박한 최근에야 조사가 시작돼 기한 안에 결론을 낼지 불투명하다. 조사위는 132건 모두 기한 내 매듭짓겠다는 입장을 방송에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는 북한군 개입설 진위 가리기는 더 어려운 처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위는 최근 6월 보고서에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결론냈고 일부 조사하고 있다며 여지를 뒀다.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 최종 보고서에서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릴 공산이 크고 국민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5·18연구가들은 지적한다. 
 
올해 6월30일 발표한 5·18진상조사위 보고서 244쪽은 ‘간첩 사건, 북한특수군 투입설, 조작과 왜곡’ 문제를 다뤘다. 조사위는 “1980년 5월24일 간첩 이창용을 광주 시위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던 사건은 5·18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간첩 손성모 사건은 추가 행적 조사를 보완해 5·18과의 관련성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계획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일단 5·18과 무관하다고 결론짓진 않은 뉘앙스다. 
 
보고서 245쪽은 “지만원 (박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시스템클럽’에서 5·18 당시 주요 인물들을 광수로 지목해 북한과 연계시키는 등의 왜곡과 조작을 일삼아 온 ‘노숙자 담요’라는 필명을 사용해 지만원 (박사) 본인이 3차례 글을 게시한 사실을 인정한 검찰 진술을 확보했다”고 공표했다. 이에 대해 5·18연구가들은 조사위가 본질을 흐리고 실체적 진실을 왜곡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고서 246쪽은 “북한특수군 침투 및 개입설 등의 왜곡과 조작이 1980년 5·18 등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발언에서 시작해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지속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적시했다. “확인해 가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1995년 검찰 보고서 “계엄령 발령 근거는 北 징후”
 
6월 보고서에 대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고 폭동과 무장반란의 성격이 있었다고 주장해 온 쪽에선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선행되지 않은 채로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최종 보고서에서 성급히 결론 내릴 공산이 크다고 관측하는 이유다.
 
5·18연구가들과 군·안보단체 관계자들은 5·18을 전후한 북한의 동태가 예사롭지 않았는데도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은 부실조사의 방증이라는 입장이다. 
 
1995년 7월18일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공동 발표한 5·18 관련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29쪽)는 “(1980년) 5월10일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은 5월 중순 북괴가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이른바 북괴남침설을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보고했고, 5월12일 임시국무회의가 긴급 소집돼 중앙정보부 담당국장이 출석, 북괴남침설 분석 결과를 보고했으며 군과 경찰에는 비상계엄체제 돌입령이 시달됐다”고 적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징후를 계엄령 발령의 근거로 삼았다. 
 
또한 “비상계엄의 확대 선포와 정치활동의 금지 조치는 북한 군사 동향과 국내 치안 상황을 보고받은 최규하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국가 기강과 사회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계엄사령관·국방부 장관·중앙정보부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통치권(統治權) 차원에서 단행한 비상조치라고 (중략) 밝히고 있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군 관계자 269명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일일 최대 14시간씩 며칠간 조사받은 전체 분량은 10만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북한의 동태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 상황에서 북한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순수 민주화운동이라고 단정짓는 것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같은 시각 광주·전남 쪽 상황은 남달랐다. 보고서는 “격렬한 시위를 마친 서울대 등 서울시내 23개 대학과 24개 지방대학 총학생회장들은 5월15일 일단 가두 시위를 중지하고 정상 수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해 (중략) 수업이 이뤄졌으나 전남대·조선대 등 광주시내 9개 대학 대학생 2만여 명은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 성토대회를 가진 다음 야간에는 횃불 시가 행진을 벌였다”고 했다. 횃불은 이른바 ‘5.16 화형식’을 일컫는다. 밤 9시30분부터 전라남도 도청 앞에서 박정희·최규하 대통령을 화형하는 행사가 열렸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 무렵 실제 기록된대로 현실화한 사전 무장봉기 계획이 담긴 자유노트 기록자 송선태 위원장과 전남대 상황은 긴급하게 돌아갔다. “횃불시위를 기획한 곳은 기획실”이라고 책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와 박관현(도서출판 선인)’ 103쪽은 기록하고 있다. 
  
최정기·김형주·양라윤·유경남 씨가 (재)관현장학재단 협조로 펴낸 이 책 102쪽에는 “총학생회의 양강섭·박용성, 서클연합회의 문석환, 학자추(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의 한상석·송선태, 복적생 노준현·박몽구·문승훈 등이 총학생회장실에서 만나 비밀리에 총학생회의 그림자 조직인 기획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림자 조직 기획실의 생성 배경은 노준현추모문집발간위원회 ‘남녘의 노둣돌 노준현(미디어민 ·2006년)’ 190~191쪽에도 나와 있다. 
 
민주화 운동이냐, 北개입 폭동이냐… 진실 가려야 
 
계엄군 만행으로 오도됐던 사건들 책임소재 명확하게 규명돼야 
北 소행 드러나면 43년 南南갈등 해소 실마리… 軍 위상도 회복
내년 최종보고서 ‘北개입 없다’  결론 가능성… 진실 묻혀선 안 돼 
 
전남대 운동권 출신 조사위 곳곳 포진, 균형 잃은 조사위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와 박관현’ 87쪽에는 “학술부는 최용주(사회학과 3년)에게 부장을 맡기는 방향으로 집행위원회를 개편했다”고 적시했다. 이어 “최용주는 또 박관현 회장과 함께 사회조사연구회 구성원”이라고 전했다. 
 
최용주는 현재 정부 5·18조사위에서 조사1과장을 맡고 있다. 2020년 5월15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전화 출연한 허연식 조사2과장은 조사1과 업무에 대해 “집단발포(집단 사격), 그 다음에 헬기 사격, 그 다음에 사망자들을 비롯한 중대 인권침해 이런 내용들을 세세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조사 범위를 밝힌 바 있다. 시민군 측의 집단발포 주장은 우파적 관점에서 5·18을 연구하는 쪽에선 “사실무근”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는 계엄군이 마주 보고 대치하던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했다면 전일빌딩·YMCA 앞에서 대부분의 총상 사망자가 발생해야 했지만, 검시조서·검안서 재분석 결과 도청 앞 분수대보다 다른 지역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청 앞 계엄군이 집단사격했는데 길게는 1km 가까운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쓰러진다는 것은 의·과학적 상식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당시 계엄군은 1만 명 안팎(시민군 추산)의 시위대에 포위돼 도청 앞 분수대에 고립돼 있었고 시민군 측이 주장하는 집단 발포 추정 시점(오후 2시)에는 개별 병사에게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본지는 5·18기념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 돌판에 새겨진 5·18유공자 명단 중에서 ‘최용주’라는 이름 두 명을 발견했다. 1941년생과 1958년생이다. 
  
허 과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조사3과는 북한군 개입 여부 조사를 맡았다. 그는 지만원 (박사) 등이 주장하는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조작설을 지금 계속해서 유포하고 있는데 이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업무라고 3과의 조사 방향을 설명했다. 발포 무기의 습득 과정도 전수조사한다.
 
송 위원장 외에도 추모승화공간 돌판에 적힌 5·18유공자 명단 중에선 정부 진상조사위에서 활동 중인 이들과 같은 이름이 다수 확인된다. 
 
일치되는 이름은 송선태·최용주·안길정·김성훈·김영관·김태종·신치호·이덕재·이상민·이영미·이태규·정경자가 있다. 
 
이 가운데 송 위원장은 유공자 신분을 숨겨 온 것으로 드러나 중립 의무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제척 사유에 해당돼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본지 8월2일자 [5·18 진실찾기⑧] 5·18진상조사위원장은 ‘무장봉기’ 모의 주동자 보도 참조> 
 
北개입 확인 땐 명분 잃어… 유공자 조사위 한계 노정 
 
자유노트 기록자 송 위원장과 안길정은 함께 움직였다.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 박관현’ 102쪽은 “기획실 책임자는 송선태가 맡았으며 노준현·문승훈·박몽구·안길정 등이 구성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책은 이 기록을 최유정(2012년 간) 170-171쪽에서 발췌했다고 출처를 인용했다. 
 
안길정은 현재 조사4과장으로 일한다. 5·18유공자 명단이 기입된 돌판에 동일한 이름이 있다. 
 
조사위 보고서에 등재된 이름을 기준으로 6차례 보고서를 내는 동안 조사에 참여한 구성원은 박진언·신승우·허나온·조환준·한기용·이영민·정문영·양재은·김남진·이춘희·양재은·허연식·박윤모·정호문·황준연·이관형·이춘희·신동일·한은영·김상욱 등 20명이다. 조사과장과 조사관 등 해당 보고서를 낼 때 조사업무에 관여한 이들이다. 
 
유공자 돌판에 이름이 있고 3·4·5회 보고서에 참여한 김태종 조사관은 5·18 당시 궐기대회에서 사회를 봤다. 처음 보고서에 등재된 건 2021년 12월31일이다. 2차 보고서가 나온 같은 해 6월30일 이후 12월31일 이전에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개입설에 관한 조사위의 부당한 처신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무장괴한이 북한군이라고 직감하고 다양한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던 5·18 당시 광주 보병학교 교관 홍순영 예비역 소령은 전북 고창에서 조사위 관계자들을 만났다가 낭패를 본 경험담을 토로했다. 홍 예비역 소령은 최근 본지와 만나 “북한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갑자기 조사를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며 “북한군에 관한 내용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밝혔다. 
 
5·18 당시 남파됐던 한 탈북군인의 5·18체험담을 기록한 실화 소설 ‘보랏빛 호수’의 저자인 탈북작가 이주성 씨를 무례하게 대하며 폭언한 사실이 녹취가 공개되면서 확인된 바 있다. 
 
최근에는 스카이데일리가 주도하는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진사)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태산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가 조사에 출석했다. 체코주재조선무역 대표를 지낸 김 고문과 함께 사진을 식별하던 조사위 관계자는 “그때는 (계엄군이) 머리가 길었다”며 사진 속 인물을 계엄군이라고 강변하려 한 상황도 있었다. 
 
김 고문은 ‘대한민국에 5·18 유공자는 없다’는 주제의 세미나 토론에서 “5·18에 북한이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한국의 좌파들이 더 잘 알면서도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철저히 숨길 뿐”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신군부 시나리오설엔 적극적… 반쪽짜리 조사 논란 
 
정부 조사위가 북한 개입 조사는 미온적인 가운데 신군부 시나리오설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하면서 물꼬를 전환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체 불명의 무장괴한들이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선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5·18이 신군부에 의해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며 당시 신원미상의 무장괴한을 북한군이 아닌 우리 군으로 몰아가는 데는 가짜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 탓이 컸다. 김씨는 2019년 JTBC 보도와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사살 명령을 내렸고 5·18은 신군부가 짠 각본대로 움직였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허위로 드러났다. 
 
마이클 리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은 “김용장의 말은 사실무근”이라고 본지에 밝힌 바 있다. 40년간 한국을 담당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 ‘CIA요원 마이클 리’의 저자인 리 박사는 “결론적으로 딱 잘라서 5·18은 틀림없이 북한이 계획하고 지휘한 작전이었다”고 단언했다. 
 
미국 공군 중령 출신으로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인 타라 오 박사도 최근 민진사 회의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해 김용장 씨 발언에 대해 “JTBC가 내보낸 방송 화면만 봐도 그와 관련된 서류에 통역자로 표기돼 있다”며 “그는 (핵심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1980년 정부가 북한군 개입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5·18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전속부관을 지낸 최종대 예비역 육군대령(육사31기)은 “신군부라는 표현 자체도 정확하지 않지만 군부의 시나리오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짚은 뒤 “80년대에는 과거 일을 들춰내 그쪽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며 북한군 개입의 진위를 떠나 개입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고 독려하는 분위기가 군 고위층에 있었다고 전했다. 
 
1995년 검찰 및 군검찰 공동조사 보고서 15쪽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은 최규하 대통령의 10.26사건 이후 사실상 와해 상태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기능 정상화를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적임자로 판단, 인사 발령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격명령권을 가진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명령·지휘계통이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군 출신 인사들이 예외없이 말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는 2021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임시안치됐으며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순자 여사는 지난해 12월호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남편은 ‘과거는 물에 흘려 보내고 국민이 다시 화합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균형 잃은 조사위의 편향성을 언급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가 송 위원장이다. 송 위원장은 5·18 발생 일주일 전 ‘예비군 무기고 접수’와 ‘도청 점령’을 사전 모의한 이른바 ‘자유노트’를 직접 기록한 주동자였던 사실이 본지 보도에서 밝혀진 바 있다. 
 
송 위원장 자신이 5·18유공자로 등록돼 그동안 혜택을 받아 온 사실도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의 활동 결과에 따라서는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보다 폭동과 반란으로서 사회적 공감대가 모아질 수 있기에 유공자가 위원장을 맡거나 조사 실무에 참여해선 안 된다. 
 
육사 출신의 계엄군 장교를 지냈고 5·18을 연구해 온 최종원 민진사 위원은 “방송국과 무기고·공공기관을 죽창을 동원해 접수하고 탈취한 무기로 도청을 점령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유노트’는 5·18이 ‘비폭력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위중한 문건으로 일각에서 받아들인다”며 “사실상 무장봉기를 사전 계획하고 획책하려 한 항쟁계획서를 기록한 당사자이자 유공자가 진상조사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라고 말했다. 
 
9명 중 전남대 출신 6명… 3명은 전대5·18연구소 전·현직 
 
조사위는 전원위원회 소속 9명 가운데 6명이 전남대 동문이다. 송 위원장(국문)과 김희송 위원(NGO학)·민병로 위원(법학)·서애련 위원(법학)·오승용 위원(정외)이며, 최근 조사위로부터 사직권고를 받은 안종철 부위원장(정치)이 포함된다. 이중 민병로·오승용·김희송 비상임위원은 전남대5·18연구소 현직 연구소장과 전직 연구교수라는 특수 관계다. 이들 비상임위원은 조사위가 발주하는 용역을 최소 2차례 수주했다. 
 
또한 조사위는 이달 1일 안종철 부위원장에 대해 사직 권고안을 냈으며 위원 7명 중 4명이 찬성해 채택했다고 광주MBC가 19일 보도했다. 안 부위원장의 돌연 사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북한 개입설에 대한 부실 조사 책임이라는 시각이 있고 최종 보고서에 참여하지 않아 면책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그는 ‘5·18 때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고?(아시아문화커뮤니티·2016년)’라는 책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적극 반박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조사위는 심의·의결 권한이 9인 전원위원회에 있는데 이들 중 6인이 전남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3인이 특정 연구소의 전직과 현직으로 특수 관계를 이뤄 담합의 여지가 있다면 애초 여야 합의로 위원을 추천해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한 취지에 위배된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공정한 판단이 아니라 광주 지역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뿐이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광주=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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