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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상황실장 지낸 홍순영 씨 ‘北 개입’ 증언
[단독: 5·18 진실 찾기⑰] “무장공비 신발에 찔레꽃 시신… 北서 온 증거”
1.21 사태 당시 김신조가 신은 통일화와 끈 형태·무늬 똑같아
소총 거꾸로 멘 장정 18~20명, 머리 땋아내린 사람 지휘 받아
당시 北 장성 이을설 女裝 남파설 파다… 무장세력 지휘 가능성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04 00:05:00
▲ 1980년 5·18 당시 광주 육군보병학교 상황실장을 지낸 홍순영 예비역 소령은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나 “보고가 묵살되면서 보안사와 정보사에 알리지 못해 북한의 개입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쉽다”고 말했다. 남충수 기자
  
1980년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소총을 거꾸로 멘 채로 지시를 받는 듯한 장정들을 목격했고, 보병학교 연병장 시신에선 무장공비 김신조의 ‘1.21 사태’에서 노획된 북한군 통일화와 같은 신발을 발견해 “국군이 아니다”고 직감하고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는 당시 계엄군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 광주 육군보병학교 상황실장을 지낸 홍순영(74) 예비역 소령은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본지 취재진과 만나 “그때 보고가 묵살되면서 보안사와 정보사에 알리지 못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쉽다”고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3사 2기생으로 1970년 5월 소위로 임관한 홍 전 상황실장은 1978년부터 광주 육군보병학교에서 전술 교관으로 근무했다. 5·18이 일어나면서 상황실장에 보임됐으며 주로 야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낮에 잠을 잤다. 그 무렵 그는 전역을 앞둔 동료들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광주 시내 충장로 화니백화점 옆 건물 2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했다. 그도 전역한 뒤 합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홍 전 실장은 5월21일 시위로 문을 닫은 업장을 살핀 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청까지 걸어가다 낯선 풍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충장로에서 거리가 얼마 안 되는 전남도청까지 걸어가는데 여자처럼 머리를 땋아 내린 사람이 지프차 위에서 말하고 있었고 소총을 거꾸로 멘 장정 18~20명이 그 사람을 둘러싼 채로 듣고 있었다”며 “지휘관이 지시하는 모습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5·18 당시 북한 공작조가 광주에 침투했다고 보는 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북한 인민군 이을설 원수가 광주를 다녀갔다는 것이다. 신원이 탄로 나는 걸 감추기 위해 이을설이 여자로 분장해 광주에 잠입했으며 도청 점령을 전후해 무장세력을 총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견해다. 
 
일반인에겐 터무니없는 소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실정이지만 육사 출신으로 정보당국에서 근무했던 지만원 박사가 사진 분석을 토대로 몇 가지 근거들을 제시하고 처음 주장한 뒤부터 5·18 연구가들 사이에선 ‘이을설 총지휘설’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홍 전 상황실장이 봤다는 총기를 거꾸로 멘 18~20명의 장정에게 지시하는 듯한 여성 차림의 신원미상자가 이을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5년 사망한 것으로 북한이 밝힌 이을설은 1980년 무렵에는 60세의 인민군 상장이었다. 상장 계급은 우리 군의 중장(3성 장군)에 해당한다. 
 
홍 전 실장은 “군 조직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자세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명령계통인지 통상 유추할 수 있다”며 “(시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었고 지휘관이거나 조직된 군인이 와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꼈다”고 강조했다. 
 
실제 광주에 다녀갔다는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는 가운데 ‘이을설 여장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계엄군 목격담이 실제 증언으로 나온 것이다. 홍 전 실장은 “그래서 다음 날인 22일 아침 7시30분 상황 회의에서 보병학교장과 교수부장·처장들 앞에서 내가 보고 느낀 바를 보고했지만 보병학교장으로부터 ‘북괴군이 어떻게 광주에 오나’라며 일언지하에 묵살당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교육을 받으러 온 장교들을 상대로 적전술을 가르치는 중대방어 교관이었다. 적전술(適戰術)은 전시 북한군의 전술 체계와 무기·복장·장비·장구·행동 패턴·훈련방식·공격 형태 등을 배우고 익히는 군사 수업이다. 적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들을 평소 숙지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군 식별이 주요 업무였던 홍 전 실장으로선 소총을 거꾸로 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군 개인에게 지급되는 자동화기 종류인 AK소총은 빗물이나 눈이 들어가면 작동이 잘 안되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총구를 아래 방향으로 향하고 어깨에 메도록 훈련받고, 공격하면서도 아래로 향한 총구를 앞으로 들어 쏘는 게 그들의 일상적인 총기 견착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M16 등을 사용하는 우리 군은 절대로 총구를 아래로 향하게 어깨에 메는 경우가 없다”며 “전방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본 적이 없고 주변 동료들도 그런 사례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약 20명의 장정이 총을 거꾸로 멘 모습은 대공 혐의점이 있다고 봤기에 확실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 올해 5월 광주에 자리한 한 5·18기념시설의 실내에 ‘바로잡은 역사’ 코너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학살자로 규정하고 비로소 역사를 바로잡았다는 취지의 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상당수 국민은 무기고를 탈취하고 도청에 다이너마이트(TNT)를 설치한 폭력 시위를 순수 민주화운동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해석에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남충수 기자
 
 
“北세력 개입 직감한 날 광주교도소 피습… 상상도 못 해” 
 
민주화운동과 거리 먼 폭도… 광주시민 소행 아니라는 확신 
‘5·18’ 끝나고 한참 뒤에야 ‘총 거꾸로 멘 사람들’ 의심 커져 
北 AK소총 물 들어가면 작동 안 돼… 총구 아래로 메는 게 일상 
 
“우리 군인이 아니다”고 느낀 날 밤 광주 교도소가 피습된 소식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도 했다. 그는 “아무리 시민들이 과격하게 시위하더라도 교도소를 습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곤 “이제 생각해 보면 순수 민주화운동이라는 명분을 중시하는 광주시민들이었다면 먼 훗날에라도 그들 사이에 탈옥한 흉악범들이 끼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을 것”이라며 “미전향장기수들이 있는 교도소였다는 사실을 5·18이 끝나고 한참 뒤에 알고 나서 그때 불순한 동기를 가졌거나 가진 이들이 섞여 있었다고 본 내 관점이 맞았고 (도청 앞 소총을 거꾸로 멘 장정들이) 우리 쪽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고 강조했다. 
 
21일 이상한 낌새를 차린 그는 22일 보병학교 연병장에 놓인 시신들을 보면서 또 한 번 “불순분자들이 틈바구니에 섞여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홍 전 실장은 “시신이 약 150구 정도 놓여 있어 양쪽이 너무 과열됐다는 참담한 마음으로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는데 맨 앞줄 좌우에 한 구씩, 그리고 맨 뒤쪽 시신 한 구에 꽂혀 있는 하얀 찔레꽃이 눈에 들어왔고 당시만 해도 수상한 점과 연결하진 못했다”면서 “그보다는 이들 시신에 신겨진 통일화를 보고 북괴군이 왔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시신의 통일화는 김신조가 신었던 신발하고 똑같은 무늬였다”며 “우리(군의) 통일화는 좀 두껍고 우리가 신어 봤기 때문에 금방 아는데 북한군 통일화는 줄(끈)이 가는 형태였고 김신조 침투 때 봤기 때문에 구분한다”고 말했다. 김신조는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1968년 침투했다 생포된 무장공비다. 1월21일에 사태가 일어나 ‘1.21 사태’라고 부른다. 당시 남파된 북한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 중 김신조를 제외한 30명이 사살됐다. 당시 노획품 중에 북한군 통일화가 있었고 우리 군의 적전술 교관들은 이를 식별하는 교육을 받았다. 
 
홍 전 실장은 1985년 전역했다. 음식점과 자동차정비소 등을 경영하는 사이 세월이 흘렀다. 1988년 5공 청문회 때도, 1995년 검찰 재수사 때도 그는 증인으로 호출된 적이 없었다. 홍 전 실장은 “광주사태가 정치적 이유로 민주화운동으로 바뀌는 사이에 꾸준히 북한군 개입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마다 김신조 통일화를 본 기억과 거꾸로 멘 소총이 눈앞에서 맴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5·18에 관한 소식을 접하던 중에 찔레꽃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시신에 꽂힌 찔레꽃이 그것이었구나 생각하게 됐고 (북한군 개입에 대한) 확신은 더 강화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5·18에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추적하는 쪽에서는 만약 북한 인민군 또는 군 소속이 아닌 공작조가 침투했을 경우에 평범한 광주 시민과 그들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식별표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송암동 오인사격 등 5·18 당시에는 아군끼리 오인해 교전이 벌어졌다. 인민군복을 입지 않은 이들로서는 서로 뒤섞여 작전에 참여할 때 북한에서 온 사실을 구분하도록 할 비표가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북한 개입을 가정한다면 이렇게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 대표적인 인식 방식이 찔레꽃을 두르거나 흰 머리띠 또는 수건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49년생인 홍 전 실장의 기억은 살아 오는 동안 더해지고 빠졌을 수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들이 분명히 북한군이었고 상황실장을 하면서 나름의 정보를 입수해 지휘관한테 보고했는데 ‘거짓말하지 말라’며 묵살됐다”며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내 보고를 상부에서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예를 들면 (보병학교의) 대위급 피교육생들만 가지고도 제압하고 충분히 섬멸할 수 있었을 텐데도 사태가 (광주시민 희생이라는) 비극으로 확대됐다. 지휘관들이 지휘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을 없앨 수가 없다”고 답했다. 
 
광주 시위대를 보고 느낀 솔직한 감정도 전했다. 그는 “5월18일 (경영하던) 업장에 가 보니 데모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그때 당시엔 순수한 시위대로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맞아서 머리가 터져 피신해 온 이들은 군인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안타까워 그 사람들을 다독이고 그랬다”며 “공수단이 너무 과격하게 제압한 것 같아서 내 마음도 광주 사람들에게 동화되는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한편 홍 전 실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청주에서 발견된 유골에 대한 개인적 견해도 밝혔다. 
 
▲ 5·18 당시 광주 육군보병학교 상황실장을 지낸 홍순영 예비역 소령은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내 보고를 상부에서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대응했더라면 사태가 비극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휘관들의 지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남충수 기자
 
 
광주=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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