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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CIA 요원 활약… ‘북한통’ 마이클 이 본지에 밝혀
[단독: 5·18 진실 찾기⑱] “5·18은 北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
박정희 서거 틈타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이 진두지휘
잠복 간첩들에 1월 지령… 2·3인조 공작대 순차 침투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11 00:05:00
▲ 미 중앙정보국(CIA)의 한국계 요원으로 북한의 5·18 개입을 예측하고 조사한 마이클 이 박사가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스카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남충수 기자
 
1980년 5·18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기화로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이 이듬해 1월 지령을 내렸고 2·3인조로 나뉜 민간 공작대가 육·해상으로 광주에 침투한 뒤 대한민국 국가 전복을 목표로 고정간첩과 합세한 북한의 ‘대남공작’이었다는 한국계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직접적인 증언이 나왔다.
  
5·18 당시 북한의 정확한 지령 시점과 구체적인 침투 루트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 마이클 리 박사
한국을 방문 중인 마이클 이(90세) 조지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9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스카이데일리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이 민중봉기 형식으로 직접 계획하고 지휘한 대남공작에 광주시민의 명예와 순수를 도둑맞은 게 5·18 사태의 본질”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40년간 CIA 등 미 정보당국에서 한국 담당 요원으로 근무한 마이클 이 박사는 KAL기 폭파 사건과 김신조 1.21 사태, 미얀마 아웅산 테러 등 북한이 획책한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의 발단 경위와 배후를 파헤치는 데 깊이 관여했으며 5·18 역시 직접 조사한 뒤 워싱턴에 최초 보고한 미 정보당국의 핵심 ‘북한통’이었다. 
  
그는 서두에 “5·18에 관해선 나보다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담대하게 운을 떼며 본지와의 인터뷰에 임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김중린이 한국에 있는 잠복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린 것은 1980년 정월(1월)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시점을 못 박았다. 북한의 지령 시점은 처음 공개됐다. 당시 김중린은 조선노동당 대남공작 총책이었고 김일성 주석과 지근거리에서 숙의하며 공작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잠복 간첩의 성격을 되묻자 “이미 침투해서 와 있는 간첩들이며 북한은 고정간첩과 잠복 간첩을 합쳐 ‘혁명역량’으로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초 지령이 하달된 뒤 몇 개월 동안 계속 2인조·3인조로 침투한 뒤 (남한에) 잠복해 있었던 간첩들”이라고 부연했다. 
  
미 정보당국은 1979년 여름 북한의 특이동향을 포착한다. 이전부터 북한의 동태를 주시해 온 미국은 이 시기 북한이 남침에 대비한 특전대 훈련에 돌입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때만 해도 북한의 고질적인 남침 계획 정도로 파악한 당국은 김중린의 동태에 대한 첩보가 쌓이면서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정밀 경계했다고 한다. 
  
마이클 이 박사는 “북한이 대남작전을 구체화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소식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17공수여단과 특전대가 훈련해 온 데다 김중린이 지령을 내린 사실을 입수해 워싱턴에 곧장 보고했다”고 확인했다. 그의 보고로 미국 정부는 1980년에 남한에서 북한이 계획하고 지휘하는 소요가 있을 것을 이미 예상했다고 한다. “이 정보를 한국 정부도 공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는 언급했다. 
  
한국 정부 문건에 따르면 1980년 5월10일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은 5월 중순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이른바 '북괴남침설'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보고했다. 이틀 뒤 우리 정부는 임시국무회의를 긴급 소집했고 중앙정보부 담당국장이 출석, 북괴남침설 분석 결과를 보고한 뒤 군과 경찰에는 비상계엄체제 돌입령이 시달됐다. 정부는 북한의 징후를 계엄령 발령의 근거로 삼았다. <본지 9월28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⑯] 5·18조사위 ‘北개입설’ 은폐 급급 보도 참조> 
  
또한 5·18 직전인 5월15일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 공작조의 서해안 침투 첩보를 인지하고 군에 전파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첩보는 군의 보고체계를 거쳐 사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에게까지 올라가 공유됐다. <본지 8월30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⑫] “北 공작조 개입”… 軍 ‘사전 첩보’ 있었다 보도 참조> 당시 '북괴남침설'의 근거가 된 중앙정보부 정보가 미국 쪽에서 온 정보였는지는 이번 취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마이클 이 박사는 광주시민 사이에 섞여 시민과 계엄군을 교란하고 싸우게 만든 세력이 규합한 경위를 구체적으로 보충 설명했다. ‘혁명역량’에 관한 부연 설명 과정에서다. 그는 “(남파 간첩 외에도) 부마사태 때 북한이 배후 조종해 내려왔던 간첩들이 (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잔류하고 있다가 광주에 합류했다”며 “1980년 4월에 벌어진 사북사태에도 북한이 개입했고 잔류 인원이 한 달 뒤 5·18에 가세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이 박사는 “미국 국무부에서 기밀 해제된 외교전문엔 북한 특수군이 왔다는 얘기가 없다”며 “내가 보고하면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고 하지 않았고, 대남공작 특공대로 서술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외교부와 같다. 한국 쪽에서 입수된 첩보를 확인한 뒤 정보로 만들어 워싱턴에 전달하는 일종의 정보 통로다. 국무부에서 기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5·18은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Military(군대)'가 아니다. 'Agent'는 간첩이라는 뜻”이라고 보충했다. 
 
이어 “대남공작단을 구성하면서 군인(북한 인민군)이 차출되기도 했지만 조직 자체는 민간 조직으로 꾸려졌고 엄선된 이들은 특수부대원들보다 작전수행 능력이 뛰어나며 고도의 훈련을 견뎌 낸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외교문서를 아전인수식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고 반응했다. 그는 “북한이 5·18 시점에 남침하지 않고 대기했다는 문장만 보고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정보분석의 기본이 안 된 처사”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가장 정확한 것은 나다. 내가 이 문서의 최초 작성자이자 보고한 당사자”라며 “북한은 특수군 남침 계획을 먼저 수립한 상태에서 민간 공작대를 남파해 고정간첩들과 합세하도록 계획하고 행동에 옮겼고 이 사실이 기록된 CIA 보고서를 토대로 국무부가 외교전문을 만들어 워싱턴에 보고했다”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 올해 5월 5·18 구 묘역(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바닥에 놓인 채로 행인에게 짓밟히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 비석. 1982년 전라남도 담양군의 한 마을에 숙박한 것을 기념해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이었으나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 한 시민이 넘어뜨리고 깨뜨린 비석을 망월동 묘역 바닥에 옮겨놓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밟게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동아시아 수석 연구원을 지냈고 1980년 5·18 북한 개입의 막전막후를 모두 조사한 마이클 리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9일 스카이데일리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에 국가안보가 굉장히 위태로울 때에 북한 입장에서는 그때를 굉장히 큰 기회로 여기고 노렸지만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해 수습이 잘됐기 때문에 그를 끌어들이고 미워하는 것”이라며 “아무 관련이 없는 전두환에게 광주에 대한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만 봐도 북한은 광주시민에게 총을 쏘고 계엄군에게 충분히 뒤집어씌울 수 있는 집단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하고 국민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광주=남충수 기자
  
북한 5월27일 남침 기도… 전남도청 수복되자 포기 
 
부마사태 때 내려왔던 간첩들 잔류했다 광주에 즉각 합류 
군인도 일부 차출됐지만 대부분이 고도훈련 받은 민간인 
광주시민 폭도 매도해선 안 되지만 反민족세력 가려 내야 
 
마이클 이 박사는 공작조가 주도한 무기고와 교도소 습격에 관해 설명하면서 구속된 지만원 박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지만원 박사가 너무 많은 것을 파헤쳤고 정확한 일을 훌륭하게 한 공로가 있어 구속된 것이 안타깝다”며 “군부대의 탱크를 탈취했다든지 아세아자동차와 교도소를 습격했다든지 하는 것은 많이 맞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시간 이내에 전라도에 있는 17개 시·군의 예비군 무기고 44곳을 탈취했다는 것은 결코 (시민군 주장처럼)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며 “전 세계 어느 군대도 이같이 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훈련받은 혁명역량이 동원된 것이고, 사전답사를 통해 위치정보를 다 확보한 지원 세력의 합작품”이라고 못 박았다. 
 
이 대목에서 “폭도들을 싣고 가는 트럭 운전수가 차를 세우고 광주시민들에게 도청 소재지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다”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북한 공작조도 낯선 환경에서 실수한 사례들이 입수됐다”고 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예비군 무기고 44곳을 부수고 5408정의 무기류를 획득했으며 트럭 3대분의 폭약과 뇌관·도화선을 탈취했다”며 “170여 명의 좌익사범을 포함해 2700여 명의 죄수가 수용된 광주교도소를 야간에 다섯 차례 습격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 특수공작대가 주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런 사건을 절대 민주화 투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광주사태를 언급할 때 광주시민을 모두 싸잡아 폭도들이었다고 단정해선 안 되지만 김대중 추종 세력과 유공자로 행세하는 인간들을 무고한 시민들로부터 분리해서 같은 하늘 밑에서 숨을 쉴 수 없는 민족 반역세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광주시민군이 광주시민을 총으로 쐈다고 봐서도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수가 정확하게 나와 있다”며 “그 당시에 한국 정부가 조사한 대로 총상 시신 116구 가운데 36구는 M16, 80구는 카빈총에 맞아 죽은 시신이었다”고 했다. 
  
당시 군 현대화 사업으로 진압군(계엄군)에게 M16이 지급됐다. 폭도들이 탈취한 예비군 무기고에는 카빈소총이 있었다. 
  
마이클 이 박사는 이번 인터뷰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시 CBS 등 방송국에서 경비병이 공격을 받아 M16 3~4정을 빼앗겼고 군분교 사건에서도 계엄군이 M16 4정과 탄창 14개를 탈취당한 점으로 미뤄 M16 총상 사망자 36명도 우리 군이 쏴 죽인 것으로 단정하기 힘들다고 5·18연구가들은 말하고 있다. 
 
5·18연구가들은 “(적의 모략전에 속아 넘어간) 시민들의 공격으로 돌에 맞고 총에 맞은 동료를 본 우리 군인들이 흥분해서 과격한 행동을 했을 수는 있다”면서도 “가정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공수대원들이 민간인을 조준 사격하는 것은 당시 군기와 일반 정서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 바 있다. 
  
미이클 이 박사는 시신 사망 지점이 진압군 주둔 지역이 아닌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의료인의 검시조서·검안서 재분석 결과를 인용한 본지 보도와도 일치한다. 
  
시민군 측의 5월21일 ‘집단발포(집단사격)’ 주장에 대해 진실규명의 관점에서 5·18을 연구하는 쪽에선 “사실무근”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는 계엄군이 마주 보고 대치하던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했다면 전일빌딩·YMCA 앞에서 대부분의 총상 사망자가 발생해야 했다. 하지만 검시조서·검안서 재분석 결과 도청 앞 분수대보다 다른 지역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본지 7월5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③] 7개 건물 옥상서 집단 발포… 軍 소행 아니었다 보도 참조> 
  
도청 앞 계엄군이 집단사격했는데 길게는 1km 떨어진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쓰러진다는 것은 의·과학적 상식에 위배된다. 구석구석 골목과 주택가에서 흩어져 발견된 총상 사망자도 과학 수사기법으로 설명이 안 된다. 총알은 좌우로 휘어서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계엄군은 1만 명 안팎(시민군 추산)의 시위대에 포위돼 도청 앞 분수대에 고립돼 있었고 시민군 측이 주장하는 집단 발포 추정 시점인 오후 2시쯤에는 개별 병사에게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중앙일보 광주 주재 이창성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도청 주변 옥상에 배치된 계엄군이 돌진 차량을 향해 처음 총격을 가하기 시작한 시각은 오후 3시48분이었다. 이와 관련해 리 박사는 “시신들이 진압군 주둔 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총구를 아래로 향하게 거꾸로 멘 것도 북한의 개입이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고 리 박사는 말했다. 그는 “남한에는 심지어 꿩을 잡는 포수도 총구가 하늘로, 개머리판(총구 반대 방향의 넓은 견착대)이 땅으로 가게 멘다”며 “개머리판을 거꾸로 멘 것은 북한 공작조가 북에서 하던 습관대로 착각해 실수한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광주 유공자를 인정하되 북한 정부의 유공자로서 인정해야 하고 남한의 유공자가 아니다”며 “남한 정부는 그 사람들을 민족 반역 범죄 집단으로서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아야지 유공자로 대우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탈북 전 북한 외무성 산하 체코주재조선무역 대표를 지낸 김태산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김 상임대표는 7월19일 스카이데일리 주최로 개최된 ‘5·18 가짜 유공자 규명 및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식’ 세미나에서 ‘대한민국에 5·18 유공자는 없다’는 주제로 “엄밀하게 따지면 한국에는 북한군을 따라서 자기 국민과 군대를 죽이는 데 동조한 난동 분자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희생자들만 있을 뿐”이라며 “5·18 당시 무기고를 습격해 칼빈총을 들고 난동을 부린 진짜 유공자들은 북한에 있고 5·18 당시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 대남연락소의 전투원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마이클 이 박사는 “가장 정확하게 공개 발언한 사람”이라며 김 대표 발언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탈북인이기 때문에 나하고 말이 맞는다. 나는 40년간 북한 정보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헬리콥터 기총사격에 대해서도 정보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육군 헬기에 장착된 기관총은 14.5mm 발칸포였다”며 “광주 시내 어디를 가도 14.5mm 포탄의 탄착점이 하나도 없다. 거짓말이고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쏘아붙였다. 
 
마이클 이 박사는 북한군은 전혀 개입이 없었는지 묻자 “북한 특수군이 5월27일 남침할 계획이 수립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1980년 여름 이전에 남조선 해방을 위한 대사변을 획책했고 서울과 마산·광주에서 동시다발적인 민중 봉기를 일으키고 남조선 지하에 구축해 놓은 혁명역량이 주도하되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민주화 투쟁으로 표방하는 게 1차 전략이었다”며 “이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인민해방시민군이 북조선에 무력 지원을 요청하는 형식을 취하고 그때 북한에서 17공수여단과 특전부대를 남파해 6·25 전쟁 때 실패한 조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겠다는 정보를 내가 해외 근무 중에 처음 입수해 워싱턴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5월27일 남침을 위해 무력을 휴전선 인근에 배치하고 대기했지만 남한 봉기가 확산되지 않은 데다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수복함에 따라 북한이 특수군 투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사살 명령 주장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그 당시 계엄사의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 발표된 것이 17일”이라며 “그때 계엄사령관은 이희성이었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아니었다. 당시 전두환은 그럴 자격도 없었고 근거 없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전두환 사령관을 끌어들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에 국가안보가 굉장히 위태로울 때에 북한 입장에서는 그때를 굉장히 큰 기회로 여기고 노렸지만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해 수습이 잘 됐기 때문에 그를 끌어들이고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관련이 없는 전두환에게 광주에 대한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만 봐도 북한은 광주시민에게 총을 쏘고 계엄군에게 충분히 뒤집어 씌울 수 있는 집단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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