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㉑40년 CIA 활약… 마이클 리가 규정한 ‘왜곡의 역사’
[단독: 5·18 진실 찾기] <21> “5·18이 민주화운동 된 건 정치권력 야합 탓”
김영삼, 노태우에 받은 정치자금 덮으려 5·18 특별법 선물
권력기관에 좌파 세력 대대적 기용… 김대중 집권 길 터 줘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01 00:05:00
▲ 박계동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노태우가 김영삼·김대중에게 건넨 비자금을 폭로하고 있다.
 
북한이 사전 계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이 확인한 1980년 5·18 광주폭동은 6공화국의 비자금이 탄로 나면서 정치적 야합의 서사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민주화운동으로 점차 탈바꿈돼 갔다. 
 
이 과정에서 보수의 탈을 쓴 좌파 세력에 지속해서 가스라이팅당한 결과 선량한 광주 시민 99.9%가 0.1%의 가짜 유공자를 위해 희생당하는 기형적 구도가 완성돼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 중인 마이클 리(90) 박사(미 조지 워싱턴대·정치학)는 지난달 30일 스카이데일리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YS)-김대중(DJ)으로 이어지는 정권 인계 과정에서 5·18 광주사태가 어떻게 민주화운동으로 외양을 갖추게 됐는지 담담하게 풀어냈다. 
 
40년간 미국 정보요원으로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조사하며 실체적 진실에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했던 그는 북한과 북한 추종 세력의 주도로 무기고를 털고 좌익사범 170여 명이 갇혀 있던 교도소를 습격한 국가 반란 전복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뒤바뀐 과정을 ‘화려한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운의 사건으로 꼽았다. 
 
마이클 박사는 “정계에서는 한때 김영삼과 김대중이 민주화 세력과 민주화운동의 쌍두마차로 인정받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면서도 “애석하게도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평생을 살았던 것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12월16일 치러진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26일 실시된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이 확보한 의석수가 국회 과반수에 못 미치는 125석에 그치자 정치 기반이 불안정함을 느낀 노태우는 3당 합당을 시도했다. 
 
1990년 1월22일 노태우의 민정당(이후 민주자유당으로 당명 개칭)과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이후 자민련 개칭),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합당했다. 겉모습은 거대 여당이 구축됐지만 3당은 이념적 동질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정통 애국 보수 세력은 병들기 시작했고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정권을 물려주면서 애국 보수의 몰락이 가속화됐다”고 마이클 박사는 진단했다. 
 
5·18이 역사의 변곡점이 된 건 이때부터였다. 노태우는 김영삼을 차기 대선후보로 정하고 정권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민정당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 연수원을 매각해 발생한 거액의 돈 중 일부였던 수백억 원을 노태우와 영부인 김옥숙 그리고 보좌관 박철언이 착복했다. 이 사실이 김윤환 민주자유당(민자당) 사무총장 귀에 들어갔고 곧이어 김영삼도 알게 됐다. 김영삼은 노태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영삼의 입을 막기 위해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정치자금 3000억 원을 줬고 대권의 바통을 물려주게 된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양측의 밀약이 외부에 드러나진 않았다. 민자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김영삼은 1992년 12월18일 14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김영삼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비로소 자기의 정치철학과 본색을 드러냈다. “민족은 이념에 우선한다” “민족의 통합을 위해서라면 적화통일도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애국 보수계 인사들은 대한민국의 정통 건국이념과 애국 보수 세력의 금자탑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을 이때부터로 꼽는다. 이승만이 시작했고 박정희가 굳건히 다졌으며 전두환으로 지속된 대한민국의 정통 애국 보수의 궤적이 종착역에 다다른 시점으로 본 것이다. 김영삼의 취임사를 접한 애국인사들이 국가의 미래를 심각하게 염려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김영삼은 대권을 장악하면서 이승만·박정희 인맥과 전두환·노태우 계열의 민정계, 더 나아가 김종필의 자민련계 인사들을 민자당에서 조직적으로 거세했다. 철두철미한 자기 추종 좌파 세력으로 당의 조직을 개편했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이후 자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쳐 국민의힘(국힘)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보수당의 명맥을 이어 온 간판 정당이었지만 실상은 좌파 이념에 사로잡힌 ‘라이노(RINO)’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이상한 구조였다. 라이노는 미국식 표현이다. ‘Republican In Name Only’의 약자다. ‘무늬만 보수 공화당’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좌파적 생각을 갖고 보수당에 속해 있는 이들을 일컫는다. 
 
▲ 김영삼정부가 1995년 11월30일 ‘12.12 및 5·18 사건특별수사본부’ 설치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환 서울지검장과 수사본부장을 맡은 이종찬 3차장검사, 수사팀장을 맡은 김상희 형사3부장검사가 앉아 있다. 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캡처
  
“5·18 진실 규명 못 하면 대한민국 정통성 무너져
 
이승만·박정희 정신 단절… 정권교체 아닌 정권교대 그쳐 
대한민국 이념·정치 혼란은 모두 전교조 좌편향 교육 때문 
5·18 국가 전복 폭동’으로 재정의 하고 역사 바로 세워야 
 
마이클 리 박사는 “오늘날 국민의힘의 모태 격인 신한국당은 공교롭게도 김영삼의 정치 유전자를 이어받아 겉만 애국 보수정당으로 위장됐을 뿐 속은 친중·종북·반미세력이 내부에 대거 포진해 있는 형태로 태동하게 됐다”며 “이때부터 고도로 정밀하고 치밀한 공작에 뭔지도 모르는 채 놀아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통 애국 보수 세력 몰락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김영삼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을 증오하고 반미사상을 외치면 애국이요, 민주화운동으로 착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도 했다. 
 
이 같은 근거로 “선지자적 혜안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국부 이승만 대통령과 헐벗고 굶주리던 대한민국을 밑바닥에서 세계 10대 선진국 대열에 들게 한 부국강병의 아이콘 박정희 대통령을 장기 집권 독재자로 폄하한 것을 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김영삼과 김대중계의 두 세력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통해 이승만·박정희의 애국과 번영의 탑을 파괴하는 데는 동일한 노선을 유지하고 협력했으나 권력 쟁탈을 위한 입장에선 서로 앙숙이었다”며 “쉽게 말하면 그들은 필요에 따라 동지이기도, 때로는 적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5·18도 이런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변질되면서 점차 민주화운동의 양상을 띠게 됐다고 마이클 박사는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대중의 전라도 세력이 김영삼을 공격한 사건이었다”며 “1993년 이후 김영삼이 집권하면서 노태우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의 스캔들을 덮고 아우성치는 호남 세력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1995년 12월21일 김영삼은 광주 5·18 국가전복 무장 폭동을 민주화 민중봉기로 둔갑시키기 위해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을 제정했다”고 역설했다. 
 
마이클 리 박사는 “이 같은 망국 범죄를 지원하기 위해 386(현 586) 운동권 세력이 북을 쳤고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협력한 대표적인 인사는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와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였다”고 좌표를 찍었다.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은 법적으로도 불충분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재판관 9명 중 3분의 2, 즉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위헌 5명·합헌 4명으로 한 명이 부족해 위헌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어 1996년 1월23일 5·18 특별법 재심을 위한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대법원은 1997년 4월 광주 5·18 무장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5·18을 김대중의 내란으로 판단했던 1981년 대법원 판결은 폐기됐다. 한 번 판결로써 확정된 범죄를 다시 심사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대법원 스스로 어긴 것이어서 오늘날까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마이클 박사는 김영삼의 정치적 과오를 6개로 요약했다. △노태우 정권이 축출한 전교조를 다시 불러들였고 △1994년 4월 미국의 지미 카터와 합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작전 계획을 좌절시켰으며 △1995년 광주5·18민주화특별법을 제정했고 △대한민국의 건전한 경제를 훼손하고 IMF 신세를 지도록 한 데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 반공정신을 계승하고 수호하기 위해 결성한 군부조직 하나회를 혁파했으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이 우파 대선후보로 이회창을 선출했는데 이인제 후보를 내세워 우파의 분열을 야기한 점을 꼽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김대중을 당선시키는 데 김영삼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며 “김영삼은 정권 쟁탈을 위한 권모술수에는 능했으나 국가관과 국가 운영의 비전이나 철학은 분명히 수준 미달이었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그동안 겪어 온 온갖 모순과 정치적 혼란은 전교조에 의한 좌편향 교육 때문이었고 그때 미국이 영변 폭격을 계획대로 진행했더라면 남북통일이 성공했을 것”이라고 했다. CIA 한반도 전문가로서 그 당시 북한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산 일보 직전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이 영변을 폭격해도 대항 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마이클 박사의 정세 분석 기고글은 월간조선 2014년 9월호에 게재됐다. 
 
그는 “광주 5·18 사태를 원래대로 국가전복 무장 폭동으로 복원 판결하고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일갈했다. 
 
리 박사는 또 “김영삼이 ‘문민정부’를 외치면서 하나회를 혁파한 이후 군부는 점차 좌파 세력으로 오염됐고 민병대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봤다. 그러곤 “김영삼의 5년 통치 기간에 국가 도처에 좌익 세력이 침투해 대한민국 파괴를 위한 조직과 모략을 구축했고 그들이 독버섯처럼 성장하도록 숙주 역할을 충실히 했다”며 허탈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리 박사와의 인터뷰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 시기에 진정한 애국 보수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자유한국당은 좌파 세력의 숨은 시녀였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이 우파 인사라고 생각하는 이명박이나 홍준표도 김영삼 계열이며 박근혜 탄핵의 공범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명박은 대통령 집권 시기에도 자신과 동일한 계보이자 정신적 동일감을 공유하는 김영삼계 좌파 인사들을 하나도 손대지 않았고 오히려 탄핵정국에 가세했다고 봤다. 탄핵에 주도적 역할을 한 김무성도 김영삼 계열이며 친박 좌장 역할을 한 서청원도 김영삼 계열 출신이라고 리 박사는 개탄했다. 찬탄파(탄핵 찬성파) 주역이었던 김성태·권성동·장제원은 친이명박계이며 그들의 뿌리도 역시 김영삼이다. 리 박사는 조원진 전 의원이 친중 본색을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며 태극기부대 선봉장 역할로 멋있게 ‘스턴트(stunt)’ 하면서 자신의 친중 본색을 위장하고 있는 조원진도 김영삼의 오른팔이었던 주중 대사 황병태의 보좌관 출신이며 그의 뿌리 역시 김영삼”이라고 밝혔다. 
 
리 박사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모르는 국민은 아직도 심각한 착각 속을 헤매고 있다”며 “문재인의 칼잡이 윤석열을 우파 대통령으로 당선 시켜 정권이 회복된 것으로 생각하고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가 취임하고 일주일 후였던 작년 5월18일 국회의원과 정부요인들을 이끌고 광주에 내려가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비판을 이어 갔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지금 정권교체가 된 것이 아니며 겨우 정권 교대를 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 그리고 두 전직 대통령에 버금가는 철두철미한 국가관과 기발한 미래지향 한미동맹 강화를 구상하고 실천적 통일정책을 추진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며 “광주 5·18 사태의 진실규명과 불법탄핵 부정선거의 법치회복 없이는 대한민국은 빈사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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