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㉔이주성 씨 “민주화운동 재뿌리기 아닌 진실을 밝히는 것”
[단독: 5·18 진실 찾기] <24> 탈북작가 “北 광주 개입은 명백한 사실”
교란작전 참여자, 김일성에 ‘공화국 영웅’ 칭호 받아
5·18 남파특수군 실화담은 ‘보랏빛 호수’ 펴냈다 집유
3년 법적 리스크 벗자마자 본지에 통한의 울분 털어놔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2 00:05:00
▲ 5·18에 남파된 북한 특수군의 실화를 담은 논픽션 ‘보랏빛 호수’의 저자인 탈북작가 이주성 씨가 20일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북한군 1010부대장 문제심의 호위병으로 당시 19세 전투원이었던 정순성(62) 씨는 1980년 5월 광주폭동 때 남조선 광주에 침투해 먼저 파견됐던 북한 특수부대 전투원들의 교란작전을 지도했습니다. 이 공로로 북한으로 돌아간 뒤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영웅증서에는 1980년 6월15일 김일성 이름까지 쓰여 있습니다.” 
 
5·18에 남파된 북한 특수군의 실화를 담은 논픽션 ‘보랏빛 호수(비봉출판사·2017년)’를 썼다가 국론분열의 주역으로 내몰린 탈북작가 이주성(사진·58) 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그 자리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겁니다. 있는 사실을 사실이라 말한 게 남한에선 이렇게 죄가 된답니까.” 
 
인터뷰 도중 긴 한숨을 자주 내쉰 그는 때때로 밀려오는 울분을 참지 못해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동토의 땅’ 북한을 등지고 남한에 정착한 탈북인으로서 첫 수업비용이라 치기엔 너무 비싸고 고통스러웠다. 
 
“사기 치는 사람 조심하란 말은 하나원에서 들었어도 말할 자유를 억압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터뷰엔 짙은 회환이 배어 있었다. 
 
마치 영겁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모진 수난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충북 강연에선 60cm 장도(長刀)를 휘두르는 괴한과 마주했지만 살아남았고 광주에서는 겹겹이 에워싼 이들로부터 갖은 쌍소리를 듣고 폭행까지 당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일간지에 보도됐다. 
 
김대중이 김일성과 5·18을 배후 조종했다고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이씨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2020년 6월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진재경 판사는 “보편적인 자료를 외면한 채 발언해 고인인 피해자(김대중)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미국 대북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여사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 등 국제탈북인권단체들이 공소를 기각해달라며 잇달아 탄원을 제기하면서 교도소까지 가는 수모를 당하진 않았지만 그에겐 악몽과도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자유가 그리워 남한행을 택했다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뜻하지 않게 한국 사회의 미숙함을 고스란히 책임으로 떠안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 됐다. 
 
최근 집행유예 형기를 마치며 법적 리스크 부담을 모두 털어낸 이씨는 20일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가짜에 속는 남한 국민이 안타깝다”며 이같이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3년 동안 말할 권리를 빼앗겼던 그의 입에서 꽁꽁 묶였던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보랏빛 호수는 5·18에 남파됐던 정순성(가명) 씨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정씨는 김명국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두 이름 모두 가명이다. 다시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정씨의 5·18 체험담은 내용이 너무나도 구체적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논픽션은 상상으로 꾸민 허구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 쓴 작품을 의미한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실화로 분류돼 있다. 
 
이씨는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이 책은 논픽션이어서 사람 이름만 빼고 다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당시 JTBC 방송국에서 증언자인 정씨를 찾아가는 등 일이 복잡하게 되자 정씨가 나를 찾아와서 ‘없던 일로 하자’ ‘미안하다’며 나한테 사죄한 내용도 녹음 파일로 다 갖고 있다”고 본지에 밝혔다. 
 
이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정씨는 이씨에게 “5·18 때 안 내려온 것으로 하겠다. 나 때문에 (함께 탈북한) 가족들이 힘들다. 내가 끝까지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씨에게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한 양해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는 2021년 3월2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씨와 통화했다. 
 
이씨가 조사 결과를 묻자 정씨는 “주성이는 잘못이 없다. 내가 말한 걸 책으로 옮긴 것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들(조사위)은 사실에 기초한 논픽션이라는 게 문제라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한테는 미안한데 이것 때문에 내가 집안에서 몰린다. 우리 딸도 OO 사업 중지해야 하고 아내도 아들도 말린다”고 정씨는 안팎으로 압박이 만만치 않다고 호소했다. 
 
이씨가 “형님은 5·18 때 광주에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저들(조사위)이 하기로 한 것인가. 내가 이 문제로 징역까지 받지 않았나. 정확히 말해달라”고 되묻자 정씨는 “2~3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평양 OO OO 교양실에도 자료들이 있으니 내가 구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자기네(조사위)는 진상위원회니까 3년 후 보고해야 한다고 하더라”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정순성도 김명국도 나다. 이런 문제 가지고 내가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 주성이가 (5·18에 남파된 탈북자) 이런 사람이 (남한에) 들어온 것을 알고 찾아와 내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자료를 제공한 것은 사실인데 머리가 아프니까 나는 안 왔다고 했다”며 “조사위가 내려왔던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없다’고 했고 앞으론 찾지 말라고 끝났다. (내가 내려온 게 아니고) 우리 조장 이상국이가 말한 소리를 이주성이에게 들려준 것으로 나는 말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얘네가 (형님이) 안 내려왔다고 했으니까 떠들면서 우리를 사기꾼으로 몰겠네”라고 했고, 정씨는 “나도 그렇게 되겠지”라고 외부 반응을 염려했다. 이씨가 다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나”라고 말하자 정씨는 “니하고 내하고만 (5·18 북한군 개입) 말해서 되겠니. 내가 끝까지 가지 못해서 미안한데 이 문제로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고 재판을 받은 이씨의 증언을 뒷받침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다. 
 
이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정씨의 아내와 아들·딸이 적극적으로 말렸다”며 “사실을 말한다고 돈이 들어오는 일도 아닌데 괜히 나서서 피해받지 말고 가만히 있을 것을 종용했다”고 말했다.
 
“사실 말한 게 죄냐… 가짜에 속는 남한 안타깝다”
 
논픽션이라지만 등장 인물 이름 빼고 실제 일어난 일 
증언자는 남파 총책 김중린 측근 문제심 호위군관 출신 
자신의 입장 난처해지자 내게 “없던 일로 하자” 통사정 
  
▲ ‘보랏빛 호수’ 표지
보랏빛 호수 93쪽은 문제심의 등장을 묘사한다. 문제심은 북한 1010군부대 부대장이자 중앙당연락소 소장이다.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의 심복이다. 김중린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남한 내 무장 폭동을 직접 기획하고 김일성에게 보고해 승인받은 당사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지낸 마이클 이(90) 박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5·18은 북한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이었고 김중린이 총책임자였음을 미 정보당국이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본지 10월11일자 “5·18은 北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 보도 참조> 
 
책에 따르면 김중린의 최측근 문제심을 가까이서 보좌한 호위병이 정순성 씨다. 정씨 증언을 기초로 제작된 책에는 문제심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80년 1월 중순. 중형 검은 벤츠 승용차 한 대가 평양시 중구역 대동강 옥류교 다리를 벗어나 서포구역 대양리 방향의 도로를 따라 달렸다. (중략) 벤츠 승용차에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장(한국군의 소장)복 차림의 군인이 타고 있었다. (중략) 그는 1010군부대 부대장(중앙당연락소 소장) 문제심이었다. 북한 정권 대남전략의 일선에서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문제심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상회의에 참가하고 오는 길이었다.’ 
 
‘요즘 문제심은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3개월 전부터였다. 교도지도총국(저격·경보병·항공육전대)과 조선인민군 정찰국에 김일성의 명령이 하달됐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준비가 된 우수한 전투원들을 선발하라는 지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김일성은 쾌재를 불렀다. 남조선을 먹을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죽 가마처럼 끓고 있는 혼란한 남조선의 정세를 이용해서 몇 달 전부터 광주에서 군사작전을 벌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씨가 처음 정씨의 5·18 남파 이야기를 접한 것은 200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당시 태국에 있었다. 그곳엔 150명 정도의 탈북인이 있었다고 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픽업하는 일을 도맡았다. 우연히 차에 태운 정씨의 탈북한 여동생이 자기 오빠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글감이 되겠다 싶어 2007년 3·4월쯤 직접 정씨를 찾아갔고 이틀 밤을 그 집에 머무르며 책의 초고를 작성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책의 파장은 컸다. 5·18 때 광주에 내려온 북한군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살다가 개인적인 잘못으로 북한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남한에 정착한 과정이 마치 소설로 들릴법했다. 이씨는 그가 북한에 있을 때 조사한 내용에다 정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조합해 ‘보랏빛 호수’를 썼다. 책이 출간된 게 2017년 5월15일이다. 10쇄를 넘겨 찍으며 꽤 잘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절판됐다. 
 
이씨는 울분을 삼켰다. 필화사건으로 징역형 처벌을 내린 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했다. 1960년대에는 남정현이 소설 ‘분지’로 용공성 시비에 휘말렸고 1980년대에는 한수산이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로 인해 법정에 불려 갔다. 2020년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시절의 후진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길고 고통스러운 앓음을 통해 이씨가 깨달은 것은 “한국 사회 만만치 않다”는 류의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었다. 오히려 뭉클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의 값어치였다. 탈북인으로서 질곡을 헤친 극복의 시간이기도 했다. 
 
갖은 수난을 겪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북한도 아닌 남한, 적어도 그가 살고 있고 살아야 할 이 땅에선 진실을 말한 죗값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믿어서다. 작가로서 그가 녹여내는 삶의 모습은 적어도 진실한 내면에 기초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여느 사람들이었다면 충분히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감출 법한데도 그는 본지와의 직격 인터뷰에 응했고 가감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탈북작가 이주성’만의 낡지 않은 정신의 오롯함을 엿보게 했다. 
 
이씨는 “대국민 공개 토론회나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었다”며 스카이데일리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인터뷰가 끝난 후 모든 기록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남기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는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줄 귀인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심이 김일성에게 보고한 작전계획 
                  (출처: ‘보랏빛 호수’ 101~103쪽) 
 
첫째 : 
교도지도국[대남연락소·해상·육상저격부대와 경보병·항공육전대·군단정찰]에서 남조선 광주 현지에 파견할 군인들을 정치 사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된 25세 이하 모범 군인들로 인원을 선발하려고 합니다. 
  
둘째 : 
아시아 자동차 공장을 습격해 트럭과 장갑차를 노획하려고 합니다. 트럭과 장갑차를 이용함으로써 폭동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이동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광주와 전라도 나아가 남조선 전역에 폭동을 확대시킬 수 있는 보다 쉽고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셋째 : 
전라도 전 지역에 있는 무기고를 습격 탈취해 폭동군을 무장시키려고 합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안과 남조선 광주지역 조사를 끝냈으며 현지에 파견돼 활동하고 있는 공작조들이 행동으로 옮길 만반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넷째 : 
광주 폭동에 파견하는 조선 인민 특수부대원들을 괴뢰군(북한에게 괴뢰군은 한국 계엄군)으로 가장시켜 침투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이 시위에 참가한 광주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유언비어를 비롯한 각종 심리전을 벌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광주와 전라도 나아가 남조선 인민들을 극도로 자극시켜 시위 진압군과 괴뢰 군부세력에 대한 분노를 유발케 해 폭동에 합류시킬 계획입니다.
 
다섯째 :   
우리 군인들을 대학생 또는 시민으로 위장 침투시켜 폭동진압 괴뢰군들에게 사격을 하려는 계획입니다. 남조선 군부와 군인들 쪽에서 사상자가 나오면 그들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무차별 사격과 진압을 유도해 양측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만큼 폭동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여섯째 : 
남조선, 특히 전라도 말과 억양에 능숙해야 하는 관계로 언어 교육을 남조선에 침투하는 그날까지 집중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일곱째 : 
남조선 대학생들이나 사회 청년들을 비롯한 현지인들과 복장 및 모습이 같아야 하는 관계로 머리를 장발로 길러 활동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여덟째 : 
폭동 성공 가능성입니다. 박정희가 사살된 지금의 정세는 우리가 남조선 괴뢰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입니다. 특히 김대중을 미친 듯이 섬기고 있는 전라도민들, 특히 광주의 민심은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라는 소식들이 현지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작은 사건이라도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기폭제 같은 사건을 만들어 낸다면 그들은 불나방이 되는 줄 알면서도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지역감정들을 폭동에 이용한다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홉째 :
폭동이 일어나면 그곳 현지 상황에 대한 중계를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보도할 종군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됩니다. 국내외 폭동 현장을 현지 중계함으로써 남조선 인민들로 하여금 괴뢰군에 대한 분노를 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전국적인 폭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열째 : 
광주폭동에 참가한 전 조선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군인들이 마스크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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