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㉖본지, 경찰 ‘감청 교신’ 내용 기록한 軍일지 입수
[단독: 5·18 진실 찾기] <26> “광주서 北과 5000회 이상 교신”
5월29일 영광 불갑산 중계소서 특이 교신 포착
호출부호 ‘청천강’ 北어투로 “천 61번지 어데냐”
5·18 연구가 “사실상 고첩·남파간첩 암약 증거”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06 00:05:00
 
▲ 1980년 5·18 기간에 광주에서 북으로 넘어간 교신이 5000회가 넘는다는 증언이 나온 가운데 경찰이 5월29일 ‘청천강’이라는 북한 지명을 사용하는 호출부호를 포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청천강은 북한의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강이다. 남쪽에는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이 흐르고 북쪽엔 압록강이 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일어난 장소다.
 
북한이 사전 계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이 확인한 1980년 5·18 당시 경찰이 북한 호출부호로 추정되는 다량의 교신을 감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이 5·18 항쟁기간(5월18~27일)을 전후해 광주에서 북으로 넘어간 교신이 5000회가 넘는다는 복수의 증언도 새롭게 공개됐다. 
 
5·18 연구가들은 이것이 사실상 고정간첩 또는 남파간첩이 암약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5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20사단 60·61연대 진압 상황일지에 따르면 경찰은 5월29일 전남 영광의 불갑산 중계소에서 특이한 교신 내용을 감청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43분 ‘청천강’이라는 호출부호를 포착했다. 청천강은 북한의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강이다. 남쪽에는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압록강이 있다. 
 
무전 청취 기록에 따르면 청천강으로 호출한 괴한은 “천 61번지가 정확히 어데쯤되는가?”라고 묻는다. “어데”라는 표현은 북한식 말투이다. 감청 청취자가 간첩 간 교신으로 판단해 의도적으로 이 말투를 기록한 것인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어 오후 4시01분 무전 청취에선 “감도가 나쁘다. 서울 재식이에게 안부 전해라”고 말한다. 13분이 흐른 4시14분에는 “편지 가져와라. 막바로 이렇게 하면 알아들을 거요”라고 교신했고 다시 “3개 안부 전해라”고 대답한 것으로 무전 청취됐다고 상황일지는 기록했다. 
 
일지는 전남 영광 불갑산 중계소와 해안 경찰 병력의 상호교신을 육군 60연대 하모 중위가 입수해 기록한 것이다. 군은 이날 오전 9시30분 경찰관 39명에 대한 배속을 해제했다. 일부 경찰력이 계엄 기간 군의 지휘를 받다가 비로소 자율적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 서부경찰서는 통신감청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60연대 하 중위가 경찰이 감청한 마지막 교신 기록을 기재한 시각은 오후 5시20분이다. 마지막 무전 청취로부터 33분 흐른 시점이다. 
 
다시 일지 기록시간으로부터 50분 뒤인 오후 6시10분 서부경찰서 경비과장은 무장 폭도 은신 첩보를 입수한다. 금동 남도극장 부근에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난동자 15명이 은신해 있다는 내용이다. 경찰 17명과 장교 2명·사병 30명으로 구성된 1개 소대가 출동했고 오후 7시40분 현장 수색에서 용의자 6명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이들의 대공 혐의점 등 추가 정보에 관한 정부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보다 50분 앞선 오후 6시50분에는 전일빌딩 뒤편에서 카빈 4정·실탄 81발·경찰요대 1개와 탄창 6개·경찰봉 2개 등을 61연대 2대대가 노획한 것으로 일지에 기록됐다. 비슷한 시각인 오후 7시10분 보안대의 심모 중사는 충정작전 관계 첩보를 20사단 연대와 경찰·전투병과교육사령부(CAC)에 통보한다. 주요 내용은 △폭도가 대인동 사창가에 총 소지하고 은신 △광주시 프린스호텔과 대흥여관은 5월27일까지 폭도 아지트로 사용 등이다. 
 
▲ 군·경은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수복한 날(27일)로부터 이틀이 지나 무장폭도들이 서로 위치를 확인하는 신호정보를 감청해 현장을 급습했다.
 
전두환 회고록 “간첩 많았지만 軍 투입할 입장 안 돼” 
 
“무턱대고 병력 투입했다간 내전… 北이 침략했을 것” 
시민군과 섞여 있는 北파견 요원 색출 사실상 불가능 
교신 감청 통해 불순분자 빈번하게 수색·차단 작전
 
이날은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수복한 날(27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시점이다. ‘5·18 북한 개입설’에 따르면 도청 수복을 전후해 무장 폭도들의 조직망은 와해됐고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접선하기 위해 무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앞서 도청이 수복된 27일 밤 광주경찰서는 또 다른 이상 신호를 감청했다. 광주서 감청 내용에 따르면 폭도들은 경계병이 있는지 살피며 만날 장소를 물색했고 신원확인을 위한 표식으로 담배를 물고 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여기는 공설운동장. 본부 나와라” “사단 경계병 있나 없나” “도청 대인동 파출소 뒤로 오라” “신호는 라이타불 담배 물고 오라”고 교신하며 접선 장소와 방식을 조율했다. 이어 “공설운동장” “본부 패잔병 나와라”고 도착했음을 알리며 ‘패잔병’이란 표현을 사용했고 다시 “현재 위치는 (청취 불가) 대인동으로 오지 말고 월산동 국교 밑으로 오라” “신호는 전과 동(같다)” “약속 시간이 맞아야 그것이 맞는거 아니냐? 알았다”고 무전을 주고받았다. 
 
육군 60연대 병력 40여 명은 수색·차단작전에 투입됐다. 오후 11시35분 작전이 종료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성과에 대해선 기재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오후 7시30분엔 적십자병원에 권총을 휴대한 폭도 4~5명이 난입해 의사 가운을 훔쳐 입고 신고하면 죽인다고 협박했다고 광주경찰서 강 경사가 군에 알렸다. 61연대는 즉시 출동했지만 놓쳤다. 군 상황일지에는 오후 8시 현재 ‘행방 묘연’으로 기록됐다. 
 
6월16일 오후 10시50분에는 합동수사단으로부터 ‘무장 폭도가 회의중’이라는 첩보가 군경에 전달된다. 총기를 보유한 약 30명이 시외버스터미널(추정)에 있다는 것이다. 군은 20사단장에게 지휘 보고한 뒤 보안대장이 61연대 1대대 수색중대 등을 이끌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수사과장 등 합수단 요원과 합류한 군은 거북장 다방에서 주동자로 판단되는 한 명을 포함한 3명을 생포했다는 보고가 자정 무렵 전파됐고 10분 뒤 추가로 3명을 검거하며 이튿날 00시17분 상황이 종료됐다. 이후 추가 사항은 육군 상황일지엔 기재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대공 혐의점을 당국이 파악했는지, 이후 어느 곳으로 인계했는지, 신문 결과가 어떠했는지 등에 관한 정부 문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무렵 ‘제일극장 옆 거북장 싸롱(살롱)’은 화재로 폐허가 된 장소다. 6월5일 이곳에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발생해 2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오후 10시40분 최초 화재 신고가 접수된 지 한 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다. 16일 밤 체포된 폭도들은 이곳에서 회의 중이었다는 점에서 일반 광주시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 6월16일 오후 10시50분 합동수사단으로부터 ‘무장 폭도가 회의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현장을 덮친 결과 용의자 6명을 생포했다. 대공 혐의점 등 추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5·18 당시 통신감청은 오늘날 시긴트(SIGINT·신호정보)로 표현된다. 각종 첨단 장비를 활용해 통신·통화 등을 도·감청해 취득한 정보다. 2021년 CNN이 김정은 사망설을 보도했지만 한·미 정보당국이 느긋했던 이유는 시긴트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통신량이 폭증하지만 당시 양국 정보기관은 북한의 통신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해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있진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군·경이 5·18 당시 감청을 통해 간첩 활동을 파악했다는 유력한 증언도 있다. 전두환 회고록은 “무전 감청 결과 현장에는 무수한 간첩이 있었다“며 “하지만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군을 투입할 입장이 아니었다. 투입하면 내전이 되고 내전이 되면 북이 침략한다”고 공개했다. 
 
폭도와 혼재된 북한 스파이 색출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전두환 11·12대 대통령 스스로 분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5·18 당시에 광주 일원의 교신량이 급증했으며 이 가운데 광주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통신이 5000회 이상이었다는 복수의 증언도 확보됐다. 
 
민간5·18진상규명진상조사위원회(민진사·위원장 정성홍) 위원과 최근 만난 한 인사는 “5·18 전 기간 걸쳐 ‘광주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통신을 오대산 감청기지에서 5000회 이상 잡았다’는 말을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보원에게서 들었다”고 밝혔다. 
 
1시간 남짓 이 인사와 독대했던 민진사 위원은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예비역 군단장급 고위 인사가 측근으로 있어 고급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의 고위 관계자도 비슷하게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김대중(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이 선전포고한 5월16일 이후 북한과의 통신량이 급증해 5·18을 전후해 5000회 이상이 포착됐”고 설명했다. 
  
5·18 당시의 군·경의 감청부대 현황은 아직 상세하게 공개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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