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㉘ ‘5·18 대북정보수집팀’ 北 현지 정보 입수
[단독: 5·18 진실 찾기] <28> “北 특수공작조 항쟁 전부터 대둔산 은신”
5월6~9일 직파 공작조 거점확장 근거지 활용
광주항쟁 기점으로 무장 폭동 전국 확산 기도
광주=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20 00:05:00
 
북한이 사전 계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이 확인한 1980년 5·18 당시 북한 특수공작조가 항쟁 기간에 대둔산에 은거했다는 유력한 증언이 나왔다. 
 
▲ 전북~충남과 맞닿은 대둔산. 연합뉴스
19일 스카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5월18일 전에 미리 침투한 북한 공작조의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와 충청남도 논산에 맞물려 있는 대둔산에 은신했었다는 정보가 본지와 접촉한 ‘(가칭)5·18대북정보수집팀(이하 정보수집팀)’에 의해 입수됐다. 
 
정보수집팀을 이끄는 A씨는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취재진과 만나 “5·18 직전 6일부터 9일 사이에 직파된 북한 공작조가 광주에 이어 대전과 전주로 거점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동 경로상에 있는 대둔산에 몸을 숨긴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광주에서 점화기폭조로 활동한 이들(북한 남파 공작조)은 대전과 전주·마산·부산에 이어 서울로 활동 반경을 넓히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전과 전주를 제외한 마산·부산에 직파된 북한 공작조가 은신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며 “남으로 전주와 북으로 대전 사이에 있는 대둔산에 머무른 사실만 ‘우리 라인’ 사람들이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첩보-소명-정보-확증 단계로 정보의 단계를 임의로 구분한다. 단순히 알려졌으나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단계는 ‘첩보’, 낮은 단계의 입증은 ‘소명’으로 간주해 첩보와 정보의 중간 단계로 임시 분류한다. 북한 정부의 직접적인 확인 발표가 없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사실일 개연성이 농후하다면 ‘정보’로 표기한다. 복수의 정보로 교차 검증이 가능한 때 ‘확증’으로 표기한다. 
 
A씨의 진술은 소명과 정보의 중간단계로 본지는 파악하고 있다. 정보수집팀은 국내 정보기관이 수집한 대북 정보를 토대로 현장 조사를 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정보수집팀의 북한 현지 조사 방식에 관해 일부를 확인해 ‘소명’ 단계 이상으로 봤지만 자료 일체를 확보한 것이 아니어서 아직 ‘증명된 정보’ 단계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대신 국내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A씨가 획득한 정보의 사실성을 구두로 보장받았다. 구체적인 방식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산세가 험준한 해발 878m의 대둔산은 노령산맥을 따라 남서쪽으로 전북 김제의 만경평야로 이어지고 북동쪽으론 충남 대전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침투 공작조는 광주에서 5·18 촉발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무장 폭동을 확산시킬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A씨는 ‘북 공작조’의 침투 경로를 묻자 육로와 해로의 2개 루트라고 답했다. 그는 육로로 침투한 공작조와 관련해 구체적인 시·군·구 단위의 지명을 밝혔다.
 
또한 바닷길은 서해안 백바위 해안선 등이라고 언급했다. 백바위는 법성포로부터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20km 남쪽으로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에 자리한 곳이다. 간조 시 차량이 다닐 정도로 개펄이 견고한 이 지역과 해안선이 맞닿은 남쪽 신안군 앞바다를 통해 5·18 직전 북한 공작조가 침투했다는 첩보가 군에 전파된 사실이 본지 취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본지 8월30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⑫] “北 공작조 개입”… 軍 ‘사전 첩보’ 있었다 보도 참조> 
 
A씨는 인터뷰 내내 “우리 직원” 또는 “우리 라인”이라고 표현했다. 구체적인 신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 있는 이들이 있다”고 현지 취득 정보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북파공작원(HID)’으로 불리는 군 첩보부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가 관여했다고 밝혔다. 5·18 대북 정보의 최초 입수 경위를 묻자 “안기부/정보사 자료”라고 최초 정보 수집 주체에 대해 답했다. 그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 HID가 현지 취득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보유 자료를 기초로 북한 현지에서 팩트 체크를 거듭한 방식으로 풀이된다. 
 
북한에서 협력하는 이들이 정보기관이 확보한 휴민트(HUMINT·인간정보)인지, 별도의 금전적 대가가 오가는 용병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우리와 협력하는 라인이며 (북한 거주 남파 경력자) 방문 및 대면조사 방법도 동원했다”고 언급했다. 본지는 A씨가 이민트(IMINT·이미지 정보)를 제시한 만큼 현지 정보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봤다. 그러나 아직 5·18에 직파된 뒤 북으로 돌아가 ‘공화국 영웅’ 칭호를 얻었다는 인물들을 실제 대면 접촉했는지 현재로선 교차 검증할 방법이 없어 ‘첩보’ 단계로 분류하고 이에 관한 보도를 유예하고 있다. 
 
취재진은 A씨와 계속 접촉할 계획이다. 
 
▲ 5·18 기간에 산세가 험준한 지역에 거동 수상자들이 은신했다는 첩보가 잇따랐다.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분지처럼 평탄한 대지에 물이 고인 저수지인 향등제는 장기 은신이 가능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광주=남충수 기자
   
“대둔산 은거팀 육로 침투… 구체적 동선까지 확보” 
 
북파공작 담당했던 정보사 자료 2000년대초 확인 
北 활약 협력자들이 남파 경력자 방문·대면조사도 
 
무장 괴한들이 산세가 험준한 곳에서 은신했다는 첩보는 또 있다. 
 
본지는 5·18 진실 찾기 취재 과정에서 이 같은 첩보를 다수 입수했다. 
 
1980년 5·18 직전 광주 무등산의 증심사(證心寺)에서 눈빛에 살기가 도는 비무장 장발 남성 100여 명이 체력강화 훈련 중인 국군 장교 70명에게 목격된 사실도 비슷한 첩보로 분류된다. <본지 8월23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⑪] 무등산 절에 정체불명 100명은 누구? 보도 참조> 
 
이 밖에 올해 여름 본지 취재진이 답사한 광주의 저수지 ‘향등제’도 거동수상자들의 은신처로 꼽힌다. 정확한 지번은 광주시 남구 덕남동 370번지다. 
 
향등제는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분지처럼 평탄한 대지에 물이 고인 저수지다. 장기 은신이 가능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남쪽으로는 나주·남평 방향에서 들어오는 입구가 있고 북쪽으로는 덕남동과 효덕동을 통해 광주 시내로 가는 출구가 있다. 
 
대공 혐의점이 줄곧 거론돼 온 송암동 오인사격 현장 뒤쪽 야산 안에 있는 향등제는 특히 남동쪽 화순 방향으로 이어진 깎아지른 산들에 지금도 은거하기 용이한 곳으로 거론된다. 정작 광주시 남구청에서는 남쪽으로 불과 1.5km,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도심 접근도 용이하다. 
 
▲ 향등제 저수지 뒷산. 광주시 남구청에서 불과 1.5km 떨어져 도심 접근이 용이한 이곳에서 5·18 항쟁기간에 한마리가 통째로 해체된 소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광주=남충수 기자
  
산세 험준한 향등제서 소뼈 해체한 이들은 누구 
 
향등제 뒷산에선 소뼈가 통째로 발견됐다는 국회 청문회 증언이 나왔다. 
 
1989년 1월31일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주민 김복동 씨는 향등제에 관해 김영진 위원(국회의원)과 일문일답을 주고받았다. 
 
김 의원이 ‘(목격된 이들이) 공수부대인가요’라고 묻자 김씨는 “공수부대인가 어딘가 군인이 끌고 들어가고 (중략) 셋이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그 사람들이 틀림없이 산골짝에서 죽었다고 본다 (중략) 총소리가 났으니까 죽었다고 그랬죠. 우리 동네사람들도 아! 저 사람 죽어버렸다고 하는 거지요”라고 증언했다. 
 
김 의원이 시신을 확인했는지 묻자 김씨는 “거기는 간 일이 없는데 통장이 거기를 한번 내가 가봤냐고 그러니까 가서 그 근방을 조사해 보니까 누가 소를 잡아먹고 소 뼈다귀만 한 마리가 오글오글 모여 있다라고 그 말만 합디다. 그런데 하필 그 골짝에 누가 길게 밭을 쳐버렸어요. 내가 한번 가보니까”라고 답했다. 
 
본지가 입수한 작전 상황일지와 일자별 계엄군 부대배치 현황에 따르면 5·18 항쟁 기간(5월18~27일) 계엄군은 향등제 야산에 배치되지 않았으며 탈영병이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준전시 상황인 계엄시 주둔지를 이탈해 탈영하면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 5월21일 저녁 61연대 2대대가 가까운 송암동에 배치돼 일반도로에 철조망 장애물을 설치하다 오후 8시쯤 목포 방면에서 광주 시내로 진입하려는 폭도들로부터 선제사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외관상 군인으로 보이는 장정들이 신원미상의 사람들을 향등제로 끌고 가 총으로 쏴 죽였다는 증언이며 그 장소에서 소를 한 마리 해체했다는 말이 된다. 계엄군과 시민군이 총격을 주고받는 사실상 전란의 와중에 한가롭게 야산에서 소 한 마리를 뼈만 남기고 해체해 먹는 이들은 평범한 시민일 수 없다고 5·18연구가들은 보고 있다. 
 
▲ ➊5월16~31일 일자별 계엄군 작전배치 요도. 계엄군은 향등제에 배치되지 않았다. ➋ 소뼈를 무더기로 발견한 주민의 국회 청문회 증언 녹취록.
 
향등제는 5월24일 오후 2시 11공수여단과 보병학교 교도대 간의 오인사격 현장으로 알려진 송암동으로부터 멀지 않은 지근거리에 있다. 
 
버스로부터 사격을 당한 61연대2대대는 5월23일 오후 보병학교 교도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했으며 그 다음날 오인사격이 발생한 것이다. <본지 7월13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⑤] ‘송암동 오인 사격’은 게릴라 전술에 軍이 당한 것 보도 참조> 
 
애초 아군끼리 교전에 따른 사망사건으로 알려졌지만 봉쇄 지점을 통과하려는 아군이 착각하도록 지속해서 민가에서 군 차량을 향해 총격이 있었다. 결국 군은 대응 사격했고 매복하던 쪽에서도 90mm 무반동총으로 응사해 아군 트럭 4대가 불에 탔고 9명이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36명이 중상을 입었다. 총사망자는 11명이었다. 
 
추후 군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매복조로부터 장비들을 노획했지만 병력 수송 장갑차를 반파시킨 90mm 무반동총이 나오지 않아 계엄군 간의 교전이 맞는지 또 다른 의문에 빠지게 했다. 당시 마을 쪽에서 착각을 유인토록 지속해서 총을 쏜 이들이 누구인지, 향등제 쪽 무장한 거동수사자들은 아닐지 의문을 낳게 했다. 
 
호남이 고향인 김덕수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진사) 위원(예비역 계엄군 중대장)은 “향등제 뒤편 야산을 보면 군 생활을 오래 한 나조차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은신과 칩거가 용이하고 시선을 압도하는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 진실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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