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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실 찾기㊱] 당시 작전 참가 전투기 조종사 이성언 씨 증언
[단독] “5·18 뒷처리 나선 北 간첩선 격침시켰다”
1980년 6월21일 서산 앞바다서 교전… 3군 합동 격퇴
간첩 8명 사살… 생포 1명 “광주 선동 위해 침투” 실토
훈장 받을 때 “5·18 후속처리 간첩선 격침 공로” 들어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23 21:00:01
 
▲ 1980년 당시 이성언 소령이 몰고 출격했던 공군 팬텀 전투기.
 
북한이 1980년 6월 광주사태의 뒷처리를 위해 간첩선을 남파했다가 육·해·공군 및 해경 합동작전에 의해 격침됐다는 당시 출격 전투기 조종사의 직접적인 증언이 나왔다. 
 
23일 당시 대(對)간첩대책본부(본부장 신현수 육군 중장) 발표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 해군함에 쫓기는 간첩선을 엄호하기 위해 미그기 12대를 출격하고 북한 군함 5척을 급파했으며 이 중 일부는 북방한계선(NLL)을 뚫고 우리 영공과 영해로 남하했다. 
 
이에 맞서 출격한 우리 공군 팬텀기가 선제 ‘락온(Lock on)’에 성공하자 이 사실을 알아차린 북한 전투기와 군함이 북으로 기수를 돌려 퇴각하면서 작전 상황이 종료됐다. 락온은 항공기 자체 레이더로 항체를 잡아 물고 있다는 뜻으로 공대공 미사일의 레이더에 같이 잡아 물리게 되는 상태다. 당시만 해도 레이더를 활용하는 우리 미사일의 속도가 열추적 방식의 북한 전투기 속도를 훨씬 앞질렀다. 
 
우리 군 당국은 5·18 한 달 뒤인 1980년 6월21일 오전 5시40분쯤 충남 서산 서쪽 40마일(64.3km) 해상에서 6·7t급 북괴 무장간첩선 1척을 12시간 가까이 추격한 끝에 격침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해군함은 전복된 간첩선에 매달려 수류탄을 던지며 완강하게 저항하던 무장공비 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신현수 대간첩대책본부장은 작전 종료 직후 “이 간첩선은 국내 고정간첩들과 연락을 맺고 최근 광주사태 등과 관련해 광주 일원에 아직도 소요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 가세·선동함으로써 학원 소요의 재발을 기도할 목적으로 남파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곧이어 방첩 당국은 생포한 공비 1명에 대한 대공심문 과정에서 5·18 관련 목적성을 확인했으며 최규하 대통령은 각 군과 경찰 소속 공훈자들에게 훈장을 서훈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인헌(仁憲)무공훈장’을 받은 이성언(77·공사 20기) 당시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153전투비행대대 정보편대장(공군 소령)은 무공훈장을 받던 7월12일 공군본부에 갔던 이들과 함께 이 같은 첩보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과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스카이데일리와 만나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겪었던 일촉즉발의 남북 공중대치 위기 상황을 회고하면서 5·18의 후속처리를 위한 간첩선의 침투 시도와 군 당국의 심문 결과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특히 무공훈장을 받게 된 공적에 대해서는 공군 수뇌부로부터 전해 들은 말을 4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훈장을 받으러 공군본부에 갔을 때 공군 사령부에서 말하기를 ‘북한에서 광주사태 후속 처리를 하러 온 간첩선을 격침한 공로’라고 공훈을 밝혔습니다. 그 사이 대공 수사본부가 생포한 공비에게서 남파 목적을 심문하다 얻은 첩보였습니다.” 
 
이 전 편대장이 받은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전투에 참여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 
 
당시 간첩선 격침 사건은 여느 작전과 달랐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간첩선 침투 기도가 폭로된 것을 탐지한 북한은 우리 해군함에 쫓기며 사격을 받는 간첩선을 엄호할 목적으로 정전협정까지 위반하면서 미그기와 군함 5척을 서해에 급파했고 남북은 전쟁 발발 위기까지 상황이 악화됐다. 
 
남북이 공중교전 위기에 맞닥뜨린 것은 흔치 않은 상황이다. 1983년 미그기가 남하해 적기의 도발로 판단한 공군이 출격했지만 귀순한 북한 이웅평 상위(한국군 중위·대위 중간 계급)를 쫓은 적기들로 판명됐다. 이 전 편대장의 출격은 이보다 3년 더 빨랐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6월20일 오후 5시55분쯤 충남 대천 서북쪽 7마일(11.2km) 해상에서 해안으로 접근 중인 간첩선을 해안경계부대 초소 근무자가 발견하고 멈추라는 정선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 응답이 없자 2발의 경고사격을 가했다. 
 
아군초소를 향해 대응 사격한 간첩선은 시속 50노트(시속 92.6 km)의 전속력으로 서쪽으로 달아났고, 무전 연락을 받은 해군함정이 전북 군산 어청도(於靑島) 근해에서 초계 작전 도중에 즉각 추격에 나섰다. 
 
해경 경비정 3척과 F5를 비롯한 공군 전폭기 3대도 합세했다. 이 전 편대장에 따르면 F5에는 조명탄이 있었다. 어둠을 틈타 도주하는 간첩선을 쫓기 위해 하늘에 쏴서 해역을 밝게 비추는 작전이다. 광주에서 출격한 F5가 조명탄을 전량 소비하자 이번엔 조명탄 50탄을 장착한 군용 수송기가 서울공항에서 발진했다. 수송기가 간첩선 인근 해역을 선회하며 조명탄을 잇달아 터뜨리자 대낮처럼 밝아졌다. 충남 태안군 앞바다의 동서로 나뉜 격렬비열도(東西 格列飛列島) 사이로 도주하는 간첩선을 발견한 해군함정은 일제히 격파 사격을 개시했다. 
 
북한도 여느 때와 달랐다. 전쟁 발발 상황으로 악화할 것을 감수하고도 신형 미그21기 12대와 군함 5척을 보낸 것이 방증이다. 
 
우리 해군에 쫓기는 간첩선이 무전을 타전한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파악했다. 머지않아 황해도 북한 전투비행단에서 미그기들이 출격해 빠르게 남하했고 북한 군함도 전속력으로 남진했다. 
 
▲ 이성언 전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153전투비행대대 정보편대장(공군소령)이 1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팬텀 전투기 앞에서 1980년 5·18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북한 이웅평 상위가 1983년 몰고 귀순한 미그기가 보인다. (왼쪽 위) 용산전쟁기념관 상징 조형물 (오른쪽) 간첩선 격침 작전에 참가한 공로로 받은 ‘인헌(仁憲)무공훈장’ (왼쪽 아래) 팬텀기에 탑승한 이 전 편대장.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왼쪽 가슴주머니에 소형 성경책을 넣고 다녔다. (아래 가운데) ©스카이데일리
 
교전 때 北 미그기 12대·군함 5척 남하… 일촉즉발 
 
당시 팬텀기 신형 레이더 추적 미사일 탑재 
“사정권 진입 땐 격추” 보고… 승인명령 떨어져 
北 미그기 피격 위기 몰리자 기수 돌려 퇴각 
 
남쪽으로 바로 내려오는 항체가 공군 레이더에 잡혔다. 곧이어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이성언 전 편대장은 팬텀기에 올라 즉각 출동했다. 새벽 2시 무렵이었다. 팬텀기는 대구비행장에 구형이, 청주비행장 최신형이 있었다. 공군 편대는 최신형 팬텀 2대로 대형을 갖춰 NLL 쪽으로 북진했다. 이 전 편대장은 청주비행장 소속이었지만 수원비행장에서 비상대기 임무 중 출격했다. 
 
최신형 전투기 발진은 신(神)의 한 수로 평가됐다. 당시 대간첩대책본부는 “공군의 적절한 조치로 북괴기와 군함이 퇴각함으로써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고 대국민 발표했다. 
 
‘공군의 적절한 조치’가 곧 이 전 소령이 이끄는 편대의 대응이었다. 
 
당시 팬텀기에는 두 종류의 미사일이 장착됐다. 적기의 후미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쫓아 요격하는 구형 열추적 미사일과 신형 레이더 추적 미사일이었다. 
 
충남 서산의 망일산과 대구 팔공산에는 공군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이곳에서 빠르게 남하하는 적기를 레이더가 포착했다. 
 
레이더가 잡은 이상 우리 공군의 공대공 신형 미사일에 북한 전투기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전 편대장은 “우리가 딱 물으면, ‘락온’에 딱 물리면 이제 미사일을 쏘면 적기는 요격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적기는 아무리 빨라야 음속이지만 미사일은 초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미그기가 어떤 기동을 하든, 훨씬 더 빠른 레이더 추적 미사일이 따라붙으면 결국 적기가 공중분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열추적에 의존했을 뿐 레이더 추격 무기 체계가 없어 제공권에서 우리보다 열세였다. 
 
“락온에 딱 잡혔어요. 보통은 오산의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전체 레이더에서 받은 한국 영공 내 모든 움직임을 감시·추적하고 적성기로 식별되면 사격명령을 내리는데, 그때는 레이다로 적기를 가뒀으니 ‘인 레인지(In-Range·유효사거리)’에 들어오면 격추하겠다고 이쪽에서, 제가 먼저 ‘암핫(Arm Hot)’을 선포했고 작전 승인을 받았습니다.” 
 
암핫은 적기가 사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레이더 추적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허가를 받고 공격 자세로 접근 비행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미그기가 갑자기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면서 우리 공군은 비로소 안도했다. 전장 우세권을 선점한 순간이었다. 우리 영공에서 적의 전투기를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다. 
 
이 전 편대장은 “북한도 우리의 성능을 잘 안다”며 “통신감청으로 레이더 락온에 걸린 걸 안 그들이 항로를 되돌려 퇴각하면서 격추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우리 해군이 간첩선을 포획하게 도와 큰 보람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해역에서는 전장 우세권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이 동이 틀 무렵까지 이어졌다. 
 
미그기가 되돌아가고 연이어 터지는 조명탄에 숨을 곳을 찾지 못한 간첩선은 아군의 격파 사격으로 날이 새기 전인 21일 오전 3시14분 서산 서쪽 40마일 격렬비열도 근해에서 전복됐다. 
 
북한군의 저항은 격렬했다. 무장공비 9명이 뒤집힌 선체에 매달려 접근 중인 해군함정에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했다. 아군은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교전을 벌였으나 공비의 완강한 저항으로 8명을 사살하고 새벽 5시40분 1명을 생포하며 작전이 끝났다. 우리 측은 가벼운 총상자가 2명 있었다. 
 
신 본부장은 작전이 끝난 뒤 대국민 발표에서 “앞으로도 무력 적화 야욕에 혈안이 된 북괴는 더욱 교활한 수법으로 대남 침투활동을 격화할 것이 예상된다”며 “국민은 대공 경각심을 새롭게 하고 대간첩 작전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본지는 당시 생포자의 대공심문조서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기밀로 분류된 정부 보안문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면 문재인정부가 만들고 작년 12월까지 조사 활동을 벌인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의 보고서에는 이 내용이 누락됐다. 정부5·18조사위는 이달 26일까지 모든 활동을 끝내고 최종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5·18특별법상 정부 기밀에 대한 막강한 강제 조사·열람 권한을 갖고 있지만 북한 개입을 확증할 간첩선 침투 사건 자체가 조사 대상에서 빠진 것을 두고 부실 조사인지, 고의로 회피한 것인지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5·18조사위에는 4년간 국민 혈세 500억 원이 투입됐다. 
 
이 전 소령은 당시 공군전투비행단 전투비행대대 정보편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상관으로부터 쪽지 형태로 주 1회씩 정보를 건네받았다고 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광주여 영원하라’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광주사태가 발생했으니 북한에서 ‘계속하라’ ‘잘하라’고 하는 뜻”이라며 “정보부에서 우리 비행부대에서 정보 담당하는 편대장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건네는 쪽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보 편대장으로 있던 내게) 북한에서는 이런 것을 하고 있다고 분석된 자료가 주간동향으로 한 번씩 전달된다”며 “조금씩 들어오는 대북 정보에 ‘광주여 영원하라’가 있었다는 뜻이고 우리 대원들에게 이런 것이 왔다고 하달했다”고 보충 설명했다. 
 
그는 광주 무장 폭격설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과 다른,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시 국가의 명령에 충성한 계엄군을 악마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주사태 당시에도 공군 전투기들은 무장사가 무장을 장착하면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는 무장 훈련을 했다”며 “광주 쪽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조종사들이 아닌 일반 행정 보는 이들이 전투기가 광주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들이 있었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적극 부인했다. 
 
이 전 편대장은 대한항공 여객기 기장으로 근무하다 2004년 1월 은퇴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평생의 신념을 ‘정확과 정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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