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48] 보물찾기 게임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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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향 나는 지우개와 24색 크레파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7 06:30:10

“소풍 가서 보물을 찾아본 적 있어요?”

하운이 물었다. 나는 와인을 한 모금 삼키고 하운을 멀뚱 쳐다보았다. 보물이라니. 애초에 행운 같은 게 내게 찾아올 리 없었다.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토끼풀밭을 뒤져 본 적 없는 것처럼 나는 보물을 찾겠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숲을 뒤지고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 적 없었다. 노력했는데도 발견하지 못할까 두려워서였다. 그까짓 거 받아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학용품들이라고 생각하며 보물찾기 하는 아이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있었어요. 꼭 한 번. 근데 그 애가 뺏어갔어요.”

하운이 나에게서 와인병을 빼앗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셨다.

“그거 내 거야, 했더니 근데? 그래서 뭐? 걔가 그랬어요.”

하운이 말하고는 쿡쿡 웃었다.

“보물찾기 게임의 목적은 보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한 거예요. 이다음에 커서 생각해 보면 찾아봐야 별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는 거죠. 공책이나 색종이나 연필·크레파스 같은 거잖아요. 그날 내가 뺏긴 건 딸기 향기가 나는 지우개였어요. 고작 지우개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었지요.”

하운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멀리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어느 해 가을 소풍에서 달봉이가 찾아낸 24색 크레파스를 본 나는 미치도록 샘이 났었다. 꼭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크레파스로 멋진 그림을 그릴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질래?” 묻는 달봉이는 더 미웠다.

“다음 날 그 녀석은 다른 친구들하고 지우개 따먹기를 했고 내 보물을 잃었어요. 그다음엔 어디로 갔는지 알 게 뭐예요. 지금 그 녀석이 뭐 하고 사는지는 몰라도 그때 내 보물을 빼앗았다는 건 기억도 못 할 걸요.”

하운이 빈 병을 빙글빙글 돌렸다.

“우리,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은 친구였을 거 같아요.”

하운의 어린 시절과 나의 과거를 겹쳐 놓으며 내가 말했다.

“지금까지 하지 못한 건 아쉬워하지 말아요. 벌써 친구잖아요.”

하운이 말했다. 내일이면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한 남자에 대한 동정일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상처를 목격하게 되면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인연은 그 때문에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대요.”

하운이 또 빙긋 웃었다. 내가 정말 오래오래 살게 될 거라고 조금도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나는 또 질투했다.

“사귀는 사람?”

내가 물었다. 하운이 잠깐 생각하고는 고개를 갸웃 저었다.

“누구하고도 시작하지 않았어요, 난.”

하운이 말했다. 나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