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예정에 없던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됐다. 탈북인 사회에서도 각 당의 후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각 후보의 대북·탈북인 정책이다. 많은 이가 고향의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통일의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에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국제사회가 한국의 한 다큐 영화를 주목했다. 탈북인들의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 ‘도토리’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이자은이 미국 뉴저지에서 뉴저지주(州) 상·하원이 합동 결의(Joint Legislative Resolution)한 인권상을 뉴저지주 37선거구 로버트 어스 하원의원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마영애 한인 아웃리치 위원장은 이자은에게 별도로 인권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도토리’의 주연인 이자은은 북한 감옥에서 강제북송 탈북인들을 탈출시키는 ‘자은’ 역을 맡았다. 그는 “탈북인들과 수개월 동안 함께하며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됐다”며 “가족과 친구를 잃고 살아남아 힘겨운 싸움을 하는 탈북인들과 함께 슬픔과 고통을 나누면서 촬영 기간 내내 가슴이 매우 아팠다”고 밝혔다. ‘도토리’는 출연자의 90% 이상이 실제 탈북인이다.
‘도토리’의 메가폰을 잡은 이는 영상제작업체 ‘원 코리아 미디컴’을 운영 중인 허영철(62) 감독이다. 그는 부족한 자금·인력 때문에 연출·촬영·기획을 도맡았다고 한다. 허 감독도 ‘도토리’ 제작 공로를 인정받아 올 3월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시상식에서 북한인권영화감독상을 수상했다.
허 감독과 ‘원 코리아 미디컴’은 ‘도토리’로 일약 세계적 인권운동가로 부상하기 전에도 이미 국내에서 북한 정권 규탄, 탈북인 인권 보호 등에 앞장서 왔다. 그 자신이 탈북인인 허 감독이 보는 각 당 대선후보의 대북·탈북인 공약은 어떠할까. 스카이데일리는 허 감독으로부터 그의 생각을 들어 봤다. 허 감독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다소 강도 높은 답변들은 본지가 순화했다.
“中의 수천 탈북인 강제북송 막으려 ‘도토리’ 제작”
정치적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우선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도토리’가 어떤 영화인지, 왜 제목을 ‘도토리’로 지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도토리’는 탈북인 인권 영화입니다. 2023년 9월 중국이 2600명의 탈북인을 강제북송했기에 그 북송을 저지하려고 만든 영화입니다.”
허 감독에 의하면 영화 제목을 ‘도토리’로 명명한 까닭은 도토리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일제(日帝) 강점기 말기에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인들은 산으로 들어가 도토리를 주워 먹으며 연명했다. 6·25 전쟁 때도 상당수 피난민들은 도토리로 버텼다.
이후 북한에서도 90년대 중·후반의 경제대란인 ‘고난의 행군’ 때 주민 대다수가 도토리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했다. 많은 이가 굶주림을 참다못해 북한·중국 국경선을 넘어 탈북인이 됐다. 그렇게 도토리는 탈북인의 상징이 됐다. 반면 남한에서 도토리는 ‘건강식품’이다. 탈북인에 대한 인권 유린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영화 제목을 ‘도토리’로 정함으로써 남·북의 상반된 현실 등을 표현했다는 게 허 감독의 설명이다.
‘도토리’는 현실감 추구를 위해 출연자의 90% 이상을 실제 탈북인으로 구성했다. 탈북 후 중국인 남성에게 인신매매됐다가 강제북송된 탈북 여성들은 강제 낙태를 당하고 있다. 탈북 남성의 경우 모진 고문에 노출된다. 때문에 촬영장에선 ‘진짜 북한’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일부 출연자는 촬영 도중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한 허 감독 자신도 국경선을 넘었다가 강제북송돼 1년 4개월간 북한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었다. 10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한 그는 혜산식품연합회사 자재지도원으로 근무했다. 식품회사 자재지도원은 남부러울 것 없는 직업이었다. 삶은 ‘고난의 행군’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당에 대한 불평을 했다가 보위부(비밀경찰)에 걸려 체포된 허 감독은 자신을 아껴 주던 양강도 인민위원회 상업부위원장이 처형되는 것을 보고 아내와 함께 탈북했다. 이후 강제북송·고문과 목숨을 건 재탈북을 반복하던 허 감독은 2002년 가족과 함께 몽골을 통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허 감독은 ‘도토리’를 통해 탈북이 단순한 고생이 아닌 생사를 건 행위임을 목격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생존 문제가 아닌 사선(死線)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탈북인 강제북송 실태가 현재는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2025년 최근에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돼 지금은 중국에서 잠시 중단돼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북·중 관계가 개선될 경우 강제북송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걸 뜻했다.
허 감독에 의하면 상당수 탈북인은 탈북 과정에서부터 생사기로에 놓인다. 가장 많은 사망자는 북·중 국경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국경을 지키는 북한군은 탈북인이 보이는 즉시 실탄 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내에서도 인권은 찾아볼 수 없다. 강제북송된 탈북 여성을 차량에 묶어 아스팔트에 끌고 다니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아사하든, 강제북송 후 고문사하든 시신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전원 탈의시켜 산처럼 쌓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실제처럼 상영한다면 ‘도토리’는 허 감독 표현을 빌리자면 ‘19금’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도토리’는 실제 현장의 30% 정도만 그대로 연출해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평화는 퍼주기가 아닌 힘의 우위로 가능”
본격적으로 현재 최대 이슈인 대선 관련 질문을 꺼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2일 공개한 10대 공약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한미동맹 기반하의 전시작전권(전작권) 환수 추진 등을 언급했다. 그는 8일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터야 할 때다. 중단된 북미 회담도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북한에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 후보의 공약은 북한에 유리한 것이지 대한민국에는 절대로 이롭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은 지난 민주당계 정부들에서 이미 추진한 정책들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이를 위해 대북지원 사업을 펼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9·19군사합의를 채택하고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북한의 도발이었다. 김대중정부 때는 1·2차 연평해전이 발발했다. 노무현정부 때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감행됐다. 문재인정부 때인 2019년에는 북한 정찰총국 소속 직파 간첩이 국가정보원 등에 의해 검거됐다.
모든 탈북인이 이 후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사단법인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 등 20여 개 탈북인 단체는 16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이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이 후보의 북한이탈주민 관련 정책과 통일 비전에 공감하며 국내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 정착과 미래를 위해 협조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송재봉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북한이탈주민위원장은 “민주당과 이 후보는 향후 정권 창출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실질적 지원과 통일 정책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허 감독은 이 후보를 지지하는 탈북인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와 사실상 양강 구도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허 감독의 평가는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김 후보는 12일 공개한 10대 공약에서 △전술핵 재배치 △핵추진 잠수함 개발 추진 등을 언급했다. 또 탈북인 출신인 박충권 의원을 만나 “가짜 진보를 확 찢고 북한 동포를 우리가 구원해야 한다. 공산 통일이 아닌 자유 통일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 후보의 공약은 (개인적으로) 신뢰가 갑니다. 평화는 퍼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강할 때 유지된다고 봅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차기 정부의 대북·안보 정책, 특히 탈북인 정책에 관해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탈북인은 먼저 온 통일입니다. 북한에는 이미 망한 정부가 존재하고 있죠. 그러니 갑자기 통일의 순간이 올 그때에 대비해 북한을 잘 아는 탈북인들을 (일꾼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이 되고 경제적·문화적 충돌로 ‘혼탕’이 안 되려면 탈북인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 인재를 미리 준비시켜야 합니다.”
프로필
△ 1963년 양강도 혜산 출생
△ 1980~1990 2군단 3사단 공병대 복무
△ 1990~1992 백두산청년들쭉사업소 사로청위원장
△ 1992~1996 혜산식품연합회사 자재지도원
△ 2002년 탈북
△ 2005년 부산시네마영화제 창작상 수상
△ 2005~2006 부산KBS ‘아침마당’ PD 겸 리포터
△ 2006~2008 울산KBS ‘생생투데이’ PD
△ 2008~2011 문화체육관광부 PD
△ 2013~ 원 코리아 미디컴 대표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