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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만두고 나왔다고 해도 김건희가 뭡니까? 뒤에 여사를 붙이든지 해야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법정 발언이다. 짧은 한마디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자신을 ‘법 위의 존재’로 여기는 전직 권력자의 오만이 배어 있다. 그 언어는 용산 시절의 권력을 품고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요즘 법정에 자주 선다. 한동안 불출석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그가 최근엔 직접 증인을 신문하며 ‘검사 윤석열’의 옛 포스를 되살리고 있다. 전략의 수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보이콧하고 중형을 받았던 전철을 떠올린 듯하다.
그런 점에서 윤 전 대통령의 전략 전환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법의 절차와 언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법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짜려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야말로 법 기술자다운 모습이다.
또 다른 법 기술자도 있다. 한때 그와 동고동락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특검의 네 차례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폐문부재. 집에 없어서 소환장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 이런 이유를 댔다면 과태료와 구인이 기다렸을 터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절차’라는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역시 법을 잘 아는 사람답다. 법을 피하는 기술 또한 그 누구보다 정교하다.
이들의 행태는 이제 일종의 ‘밈(meme)’이 되었다. ‘밈’이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전하는 것처럼 모방을 통해 문화적 정보나 행동, 스타일 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달되고 전파되는 현상을 뜻한다.
윤 전 대통령의 법정 발언은 순식간에 SNS에서 패러디되고 한 전 대표의 폐문부재는 “이런 법 기술이 있구나”하고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하지만 이들의 ‘법 기술’을 일반 시민이 따라 했다간 법은 순식간에 날 선 칼날로 날라온다. 우리의 법은 약자에게 엄정하기 때문이다.
법 기술은 법 기술자끼리만 통한다. 그들에게 법은 ‘거래 수단’이다. 서로의 약점을 덮고 절차로 시간을 끈다. 반면 시민에게 법은 커다란 벽이다. 재판 한 번, 수사 한 번이 인생을 뒤흔든다. 같은 법 아래서도 적용의 얼굴은 다르다. 권력자에게 절차는 면죄부가 되고 시민에게 절차는 형벌이 된다. 검사 출신 전직 대통령, 전직 장관에겐 절차의 미비가 면죄부가 되지만 사법 패거리와 무관한 시민이 불출석하거나 소환장을 거부하면 그 즉시 제재가 따른다.
시간도 법 기술의 일부다. 수사는 늘 ‘생물’이라며 지연되고 증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여론이 바뀌면 해석도 달라진다.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보고서 수준의 진실이다. 이런 부조리 속에서 남는 건 책임의 공백 그리고 정의의 무력감이다.
이 나라의 법이 점점 사람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다. 권력은 법을 이용해 자신을 지키고 언론은 그 과정을 오락처럼 소비한다. 국민의 삶이 무너져도 그들은 세금으로 태연히 법 놀음을 한다. 총체적 부실국가의 징후다. 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약자를 지키라는 명령이자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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