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명보험사의 ‘일탈회계’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 계약자 보험료로 사들인 삼성전자 지분을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일탈회계’를 위법한 회계처리로 보는 지적이 있었다.
오정근 자유경제연구원장은 2일 본지에 “일탈회계라고 하니 마치 법을 어긴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보험업법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회계였다”며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선 기존 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보험업법 개정이 특정 회사만을 겨냥한 ‘삼성생명법’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배구조·계약자 보호·시장 신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은 1일 ‘K-IFRS 질의회신 결과’를 통해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춰 유배당 계약자의 권리와 보험사의 의무를 다시 정의하는 동시에 이번 조치가 “회계오류 수정이 아닌 회계정책 변경”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그간 삼성생명을 둘러싼 회계 논란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쟁점의 중심에는 삼성생명이 1980~1990년대 유배당보험 가입자의 납입보험료로 취득한 삼성전자 지분 8.51%가 있다. IFRS17과 이를 국내에 도입한 K-IFRS 제1117호(보험계약)는 유배당 계약자에게 돌아갈 몫을 원칙적으로 보험계약부채에 포함하거나 매각 계획이 없다면 자본으로 반영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당장 매각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지분에서 발생한 미실현 평가이익 상당 부분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으로 처리해 왔고, 금융당국도 2023년 IFRS17 도입 초기에는 이를 예외적인 회계처리로 한시 허용했었다.
이번에 금감원과 회계기준원이 확정한 K-IFRS 질의회신은 더 이상 이 예외를 인정하지 않되 그간의 회계 처리는 “재무제표를 잘못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당시 여건에 따라 허용된 회계정책이었다”는 점을 명시했다. 금융당국은 유배당 계약자 몫을 특별히 분리해 부채로 둔 방식이 당시에는 재무제표 이용자의 이해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고, 감독당국이 일정기간 허용한 회계정책이었던 만큼 이를 회계기준 위반이나 분식회계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목은 삼성생명 입장에서 의미가 크다. 일탈회계를 중단하라는 결정 자체는 부담이지만 적어도 과거 몇 년간의 회계처리가 ‘기준 위반’으로 규정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이번 회계정책 변경이 과거 오류에 대한 수정이 아니므로 감리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고, 일탈회계 적용 당시에는 관련 전제조건을 충족하는 범위에서 타당한 회계처리였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으로서는 “감독당국이 허용한 회계정책을 썼을 뿐”이라는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받은 셈이다.
반면 앞으로의 숫자 변화는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주가 상승의 영향으로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규모는 올해 6월 말 기준 약 8조9000억 원에서 9월 말 약 12조8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일탈회계가 중단되면 이 거대한 금액은 더 이상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남을 수 없고 보험부채와 자본 사이에서 재분류돼야 한다.
시장에서는 유배당계약의 확정보증부채는 ‘보험부채’로, 삼성전자 지분 평가이익의 상당부분은 ‘자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경우 자기자본과 지급여력비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금융당국이 일탈회계를 접는 이유는 국제기준 정합성과 신뢰도에 있다. 2023년부터 보험부채의 시가평가를 골자로 하는 K-IFRS 제1117호가 도입된 뒤, 계도기간을 거치며 정착되는 상황에서 특정회사 구조를 위해 예외를 장시간 유지하는 것은 한국이 IFRS 전면 도입국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추가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당국은 이제 보험계약 회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만큼 극히 드문 경우에 한해 허용하도록 한 ‘일탈회계’ 조항을 더 이상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 시점 이후 일탈회계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올해 말 결산부터는 K-IFRS 제1117호에 따른 정상 회계처리로 전환하되 소급 적용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정보 이용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비교표시되는 전기 재무제표는 새 정책에 맞춰 재작성하도록 하고 유배당 계약을 다른 보험계약과 구분해 표시하며 주석으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했다.
당국과 삼성생명은 “회계상 표시가 바뀌더라도 배당은 보험업법과 기초서류에 따라 실현이익 발생 시 지급되는 만큼 계약자 보호에 직접적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장부상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이 사라지고 삼성전자 평가이익 상당 부분이 자본으로 이동하면 “계약자 몫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과 “재무건전성이 강화돼 회사와 계약자 모두에게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맞설 가능성이 있다. 유배당 계약자에게 돌아갈 이익 배분과 실제 배당 정책을 어떻게 설계·공시할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