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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칭송받고 있는 당 태종 이세민의 눈알을 뺀 안시성은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속하는 신강현 서북 40리에 있는 마수산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사서에 기록된 아래 여러 안시성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에는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은 관병 및 말갈병 15만 명을 이끌고 전진해 안시와 연결되는 험준한 산에 진지를 쌓고 병력을 종횡으로 풀어 적의 군마를 약탈하니, 당나라 군사들은 감히 접근도 못했다”는 문구가 있다.
‘자치통감’에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도 날카로우며 (중략) 막리지가 이를 쳤으나 떨어뜨릴 수가 없어 그에게 주었다”와 “안시성과 연결되는 보루를 쌓고, 높은 산의 험한 지세에 의지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안시성을 넘기 위해 이도종이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60일 동안 토산을 쌓았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안시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또 ‘자치통감’에는 “고구리와 말갈병사로 구성된 15만 구원군이 안시성 안에 있는 식량을 먹어가며”라는 기록과 “안시성을 포위한지 오래되어 성 안에서는 밥 짓는 연기와 불이 날로 줄어가고 있는데”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약 15만 명이 장기간 포위된 상태에서 전투력을 유지하며 지구전을 하려면 안시성은 반드시 물이 자급자족되어야 하고 자체농사까지 가능한 넓은 곳이어야 할 것이다.
신강현 마수산은 위 두 조건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현지에 가서 보니 안시성이 있는 화염산맥의 남단은 가히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요새 중에 요새였다. 밑 부분은 완만하다가 위로 갈수록 60도 이상의 급경사로 돼있다. 산 밑에서 꼭대기로 공격해 올라간다는 것은 100% 불가능한 구조로 절벽병풍 자체가 바로 성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험한 경사의 산 정상에는 넓은 구릉지가 이어져 있었다.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축구장보다도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식수는 물론 여기저기 경작지가 널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밭농사는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기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충분한 곳이었다.
또한 고구려 군사들은 높은 산 위에서 적의 움직임을 내려다보며 대처할 수 있어 적은 병력으로도 수·당나라 대군을 장기간 막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절대로 함락시킬 수 없는 구조로 된 요새 중에 요새이다 보니 여기서부터 수양제와 당태종의 작전이 막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군사들이 안시성에서 나와 당나라 군사를 공격할 때마다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는 문구가 있다. 그 이유는 안시성은 성벽을 쌓고 성루와 성문을 만든 그런 일반적인 성의 구조가 아니라 급경사인 돌산의 기초 밑 부분을 깎아내 아예 90도 절벽을 성벽처럼 만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성벽과 성문이 따로 있을 수 없는 돌산 그 자체가 바로 성이었던 것이다.
이도종이 당 태종에게 “고구려가 사력을 다해 우리 군대를 방어하고 있으니, 틀림없이 평양의 수비가 비어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정예군 5천 명을 주시어 그들의 본거지를 뒤엎게 하십시오”라고 건의했다. 이 건의를 고려한다면 안시성은 평양성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신강현 서북 40리에 있는 마수산을 안시성으로, 화염산맥의 안쪽에 있는 마미(馬尾)산의 넓은 곳을 환도산성으로 보고 있다. 평양성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임분이 확실하다.
안시성 앞에는 반드시 토산이 있어야 하며 동남쪽에 맞닿아있던 토산이 무너지자 성도 같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 직접 가서 보니 당나라 장수 이도종이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60일 동안 쌓았다는 토산과 성의 동남쪽에 있던 토산이 무너지자 같이 무너진 안시성의 흔적까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시성은 설인귀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무대이다. 그 이유는 당시 설인귀가 살던 집이 안시성에서 그리 멀지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인귀는 한족이 아니라 고구려 출신이다. 신강현에는 설인귀의 유적이 여럿 남아있다. 그 중 분하변에 강주대당(降州大堂)이 지붕까지 있는 근사한 건물로 지어져 있다. 이로 미루어봤을 때 이곳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언급한 ‘성경통지 해성고적고’에 기록되어 있는 ‘당태종함마처’로 보인다.
연개소문의 총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당나라 군대는 크게 어지러워져 사람과 말이 서로를 짓밟으며 안시성에서 도망쳤다. 당 태종은 헌우란에 이르러 말이 수렁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양만춘장군의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아 거의 사로잡히게 됐다. 설인귀가 나타나 당 태종을 구해 말을 갈아 태우고 선봉장 유홍기가 혈전을 벌여 추격을 따돌려 당 태종이 가까스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 때 당 태종의 말이 수렁에 빠진 곳을 ‘당태종함마처’라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사서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경극에 그 흔적이 보인다. 연개소문과 설인귀와 당 태종이 등장하는 경극에는 몇 종류가 있다. ‘독목관(獨木關)’, ‘분하만(汾河灣)’, ‘살사문(殺四門)’, ‘어니하(淤泥河)’ 등이다. 특히 ‘분하만’은 제목에서 보듯이 당 태종이 늪에 빠진 곳이 안시성 앞을 흐르는 현 분하로 그곳이 어니하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경극에는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게 쫓기다가 수렁에 빠져 곤경에 처해 울부짓는 장면이 있는데 얼마나 절박했는지 다음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인이 쓴 대사로 상황이 축소되었으면 되었지 확대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조상님이시여 나 이세민을 가엾게 봐주소서. 말을 아무리 때려도 진흙수렁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내가 황제인 것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너무나 상심하여 두 눈에 눈물이 흐르니 누가 나를 구해준다면 당나라 땅의 절반을 주겠노라. 만약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내가 너의 신하가 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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