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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골목축제가 끝났다.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부산 도시재생의 꽃이라 불리는 감천마을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올해로 아홉 번째 축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육성축제에 이름을 올렸다. 첫날 궂은 날씨 탓에 개막식 등이 어수선했지만 둘째, 셋째 날은 날씨가 뒷받침해서 무사히 잘 마쳤다.
축제를 보기 위해 2박 3일 부산에 머물면서 무엇을 맛볼까 고민했다. 타지에 오면 늘 하는 고민이다. 부산을 실로 오랜만에 왔다. 그래서 오기 전 서울에서 부산 출신 ‘미각의 달인’에게 각기 다른 여섯 끼 메뉴를 소개 받았다. 밀면, 돼지국밥, 언양불고기, 회(아나고), 따로국밥, 대구탕 등이다. 그는 끼니가 모자라면 수구레국밥과 선지국밥을 먹어보라며 알뜰하게 챙겨줬다.
물론 어느 집이 맛있다며 상호까지 특정해 줬다. 그에게 필자가 붙여 준 별명은 사실 미각의 달인이 아니라 ‘비교미각 대가’다. 그는 특정 메뉴가 나오면 전국 단위로 순위를 매겨 가며 맛을 평하는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식을 접해 봤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현재는 유망 모바일 게임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경영인이다.
부산 생 ‘비교미각 대가’에게 소개받고 찾은 맛집
첫 끼와 두 번 째 끼니는 그의 추천에 충실했다. 서울서 오전 8시 버스를 타고 점심 무렵 부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곧바로 밀면집으로 향했다. 부산지하철2호선 개금역서 조금 걸어가면 개금골목시장이 나온다. 시장어귀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간판이 손님을 맞는다. 50여년을 골목을 지킨 터줏대감이다.
1966년부터 시장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던 밀면 전문점이다. 밀면이라고 면에 밀가루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윤기가 나고 쫀득하니 오래 두어도 불지 않는걸 보니 고구마전분을 섞은 것이다. 그래서 밀가루 소면은 금새 배가 꺼지지만 밀면은 제법 오래도록 포만감이 유지된다.
밀면 육수는 돼지뼈를 고아 낸다. 평양냉면 육수보다 기름져 보이지만 육향은 거의 나지 않는다. 돼지 육향이 소를 따라가려면 서너 배를 삶아야 한다. 면은 냉면압출기로 뽑는다. 평양냉면 면과는 메밀과 밀, 꿩과 돼지 두 끗 차이다. 그러나 맛은 천양지차다. 밀면의 탄생 비화 뒤에는 평양냉면이 숨어 있다.
54년 전통 개금밀면...평양냉면과 두 끗 차이 맛은 천양지차
한국전쟁 중에 북으로부터 부산까지 내려 온 피난민들이 평양냉면 재료인 메밀을 구할 수 없자 구호물자로 넘쳐나던 밀가루로 면을 만들었다. 육수는 꿩고기 대신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뼈를 사용한 것이 밀면의 시초다. 지금은 부산에서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로 발전했다. 부산에서는 대부분 중국집도 밀면을 취급하고 있는 향토음식이다. 강한 지역색 때문에 부산을 벗어나면 찾기가 쉽지 않다.
개금밀면은 면 위에 고추장 양념을 얹고 수분을 뺀 꾸덕한 고기채와 오이채, 먹기 좋게 세 번 슬라이스 친 계란 반쪽을 웃기로 올려준다. 고기모둠을 추가하면 고기채와 오이채는 웃기만큼, 삶은 계란은 한 알을 더 준다.
고추장양념은 재료를 곱게 갈아 숙성시킨 것으로 육수에 풀면 건더기 입자가 매우 곱고 균일하다. 그래서 입안에 남지 않고 면과 육수와 함께 깨끗하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테이블에는 사과식초가 준비돼 있다. 육수에 사과식초를 적당히 치면 맛이 풍성해진다.
신흥강자 쌍둥이돼지국밥, 인심으로 노포 사이서 선전
두 번째 식사는 남구 대연동 대로변에 있는 쌍둥이돼지국밥 집을 찾았다. 같은 대로변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점포 하나를 더 냈다. 그만큼 손님이 많이 찾는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돼지국밥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금껏 돼지국밥 먹은 횟수를 따지면 세 번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외려 ‘오랜만’이라 거부감 없이 돼지국밥집에 성큼 들어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백’을 시켰다. 메뉴판에는 수육백반이라고 써 있지만 홀 서빙하시는 분들이 주방에다 ‘수백’이라고 외친다. 돼지국밥에 돼지수육이 나오는 식단으로 9000원이다. 돼지국밥이 7000원이니 수육이 2000원이란 소리다. 차려진 밥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2000원짜리 수육이 담겨 나온 정성이 대단했다.
수육을 시켜먹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간이 가열장치에 고체연료를 밑에서 태우고 그 위에 수육접시를 올렸다. 수육이 제법 바글바글 끓기까지 해서 식사가 마치는 시간까지 온기를 줬다. 엄밀히 따지면 돼지국밥에 들어갈 고기인데, 수육으로 별도로 분리해 멋진 메뉴를 만들었다. 2인이 1만8000원짜리 안주에 반주 한잔하기 적당하다. 그래선지 저녁시간에는 거의 모든 손님이 수백을 시킨다.
돼지국밥의 묘미는 역시 육수에 있지 싶다. 구수함으로 표현되는 뽀얀 육수는 돼지 잡내와 누린내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쌍둥이돼지국밥은 돼지뼈로만 육수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뼈로 초벌한 육수에 삼겹살을 삶아내서 농후함을 주는 전통 돼지국밥 집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사장의 쌍둥이 언니로부터 비법을 전수 받아 1996년에 대연동에 문을 열었다. 그래서 상호가 쌍둥이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 노포(老鋪)가 즐비한 부산에서 소위 명함도 못 내밀 업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은 맛도 맛이지만 인심이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이 집에서 밥, 육수, 고기 모두 리필이 가능하다. 노포를 이기는 방법을 제대로 찾은 셈이다.
수육 두어 점을 고춧가루간장양념에 찍어서 방금 무친 부추와 함께 한입 넣고 씹으면 입안에서 고소한 맛이 만들어진다. 물론 새우젓의 말간 새우 한두마리 집어 올리면 맛이 더 다양해진다. 고춧가루간장양념과 부추는 돼지국밥 맛을 한껏 끌어 올리는 촉매 같은 존재다. 이 집 비법은 아마도 이 둘의 양념 배합에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맛의 밸런스가 좋다.
선육후탕 할 수 있는 수육백반 인기 만점
수육과 함께 반주 한잔 하고 국밥 한 숟가락 듬뿍 퍼 올려 입안으로 욱이면 ‘선육후탕’이 완성되면서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글 맺힌다. 담백하고 구수한 돼지국밥 한 그릇이 주는 온기가 봄비로 내려간 체온을 적당히 데운다.
밀면, 돼지국밥 모두 피난민들이 만든 음식들이다. 그것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생계를 위해 값싼 재료를 이용해 식당을 하면서 발전한 것이다. 밀려 내려올수록 북쪽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커가는 그리움. 그것을 곱씹으면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실향민들의 소울푸드가 지금은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에는 개금밀면, 쌍둥이돼지국밥 외에도 역사와 전통의 강자들이 즐비하다. 필자는 다만 지인이 특정해 준 집을 찾았을 뿐이란 것을 밝힌다.
돼지국밥으로 배를 한껏 채운 뒤 대연동 뒷골목을 걷다가 ‘징기스’란 양고기집을 마주쳤다. 과식의 시작은 이런 우연한 맞닥뜨림이다. 상호가 주는 아련한 기억 때문에 발길이 저절로 옮겨졌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징기스와 부산 2일차 이야기는 다음호로 이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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