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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사대주의에 심취한 조선왕조가 추구했던 역사개념은 단군조선 이후 천년의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중국인 지배의 역사였다. 그러다가 한사군 땅에서 우리 민족국가인 고구려가 싹이 터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의도로 조선왕조에 의해「삼국사기」가 각색·편집되었는지 그 첫머리에 나오는 고구려 건국설화를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해부루왕이 다스린 동부여의 이동과정과 금와왕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산천에 기도했는데, 어느 날 타고 있던 말이 큰 돌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기에 그 돌을 굴리게 해보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데리고 와서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그 후 어느 날 하늘에서 재상 아란불에게 ‘장차 내 자손이 여기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너희들은 동쪽 가섭원 땅으로 가라. 그곳은 토양이 기름져 오곡이 잘 자라니 도읍으로 정할만하다’라고 말하니, 아란불이 임금에게 권해 도읍을 옮기고 동부여(東扶餘)라고 했다. 옛 도읍지에는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도읍을 정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금와가 언제 출생했는지, 또 동부여를 이전시킨 하늘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그러한 미비점은 「북부여기」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북부여 4세 해우루 단군 13년인 계유년(B.C 108년)에 한 무제가 우거를 멸망시키고 사군을 설치하려고 사방으로 병력을 보내 북부여가 쇠약해졌다. 이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라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백성들의 호응을 얻어 계속 승리하여 세력이 막강해졌다.
갑오년(B.C 87년) 10월 동명왕이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인데 여기에 도읍을 정하려하니, 왕은 이곳에서 옮겨가시오”라고 압박하니 연로한 해우루 단군이 병을 얻어 죽었다. 이어 동생 해부루가 즉위했는데도 동명왕이 군대를 앞세워 계속 위협하자, 국상 아란불이 왕께 권해 항복하고는 그의 제후가 되고 도성을 옮겼다. 이를 가섭원부여 또는 동부여라고 한다. 동명왕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수만 군중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북부여(北扶餘)를 칭했다.
고두막한이 동명국왕 자격으로 북부여왕 해부루에게 항복받으면 될 일을 가지고 굳이 자신이 창업한 동명이라는 나라이름까지 버리면서까지 이미 즉위한 해부루를 끌어내리고 대신 자신이 북부여의 5세 단군을 칭하려고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북부여는 대제국 조선(朝鮮)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한 천제(天帝)의 나라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시시한 동명국 따위하고는 그 차원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그러한 북부여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삼국사기」의 내용을 축약·편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부여의 존재가 드러나면 날수록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허구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부루왕이 아기 금와를 얻는 해가「가섭원부여기」에는 동부여로 옮겨간 후 10년이 지난 갑진년(B.C 77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삼국사기」에는 부여왕 해부루가 금와 아기를 얻고 난 후, 동쪽 가섭원으로 옮겨갔다고 반대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20년 늦춰진 고구려 시조 주몽의 출생년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이어지는 「삼국사기」기록은 다음과 같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하루는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발견하고 내력을 물으니 ‘저는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라고 합니다. 동생들과 함께 나가 놀고 있었는데, 마침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자칭하는 한 사내가 저를 웅신산 아래 압록강가에 있는 집으로 유인해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는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 부모는 중신도 없이 남자를 쫓아갔다고 저를 꾸짖고는 가두었습니다’”
“금와가 그녀를 데려와 방에 두었는데 그녀가 피해도 햇빛이 따라와서 계속 비추었다. 이로 인해 임신되어 다섯 되 크기의 알을 낳았는데,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고, 길 가운데 버렸으나 소나 말이 밟지 않게 피하고, 들에 버렸으나 새가 날개로 그것을 덮어주었다. 쪼개려고 했으나 깨뜨릴 수가 없어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것을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먼저 「가섭원부여기」는 음력 5월 5일 단오가 고주몽의 탄신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백과사전에 소개되어있는 단오의 기원은 초나라 회왕의 신하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함이 있자 자신의 지조를 내보이기 위해 멱라수에 투신자살했는데 그날을 기리는 제삿날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단오가 굴원의 기일이라면 하루를 조용하고 숙연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단오는 말의 간지가 겹치는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큰 명절로 여겨 여러 즐거운 축제행사가 민속에서 행해졌다.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그려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비녀 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활쏘기 등 여러 민속놀이가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로 행해진 것으로 보아 원래 단오는 고주몽의 탄신을 기리는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금와왕의 7명 아들 중 가장 큰 아들인 대소는 의동생 주몽을 해하려 했다. 「삼국사기」에 주몽은 B.C 59년생이므로, 대소의 출생은 그 이전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소가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과 전투하다 진흙수렁에 빠져 괴유에게 죽는 해가 22년이다. 이는 대소가 80살이 넘어서도 말을 타고 직접 전투를 했다는 말인데, 일반상식으로는 얼른 이해되기가 어렵다. 따라서 대소의 부왕 금와와 주몽이 비슷한 연배라고 기록한「가섭원부여기」가 옳을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주몽의 출생년도를 약 20년가량 늦추는 등 각색한 이유는 조선왕조에서는 주몽과 북부여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 동부여는 제대로 언급하면서도 북부여라는 이름은 나타나지 않도록 희석시킨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흔적은 여기저기 도처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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