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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손꼽는 여성은 단연코 소서노(召西奴)이다. 시조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는 실질적으로 백제를 창업한 여걸이다. 그런데 소서노 못지않게 백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여성이 있다.
대방국(황해도) 왕녀 출신 보과(宝果/寶菓)부인이다. 보과는 백제와 대방국이 왕실 간 혼인 동맹을 체결하며 백제 왕실과 인연을 맺는 고이왕(8대, 234~286)은 대방국왕(공손소)의 딸 보과를 며느리로 맞이한다. 이후 고이왕의 아들 책계왕(9대, 286~298)이 즉위하면서 보과는 왕비가 되며 왕실 권력의 중심에 선다.
그런데 보과의 남편 책계왕은 ‘구생지국(舅甥之國-장인의 나라)’ 대방국을 지원하다 적병에게 해를 입어 사망한다. 이어 즉위한 보과의 아들 분서왕(10대, 298~304) 역시 ‘모후지국(母后之國-어머니의 나라)’ 대방국을 지원하다 낙랑국의 사주를 받은 계림(신라)사람 황창랑(黃昌郞)에게 살해당한다.
보과는 자신의 모국(母國)을 지키려다 남편 책계왕과 아들 분서왕을 잃는다. 그런데 분서왕 사후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보과는 손자(분서왕의 아들) 계(契)를 제쳐두고 비류왕(11대, 304~344)을 옹립한다.
<삼국사기>는 계(契)가 어려서 신하들이 비류왕을 추대한 것으로 나오나 <고구려사략>(남당필사본)은 보과가 총애(嬖-사랑)하던 비류를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한다.(宝果立其所嬖比流爲王) 비류왕은 보과의 정부(情夫)이다.
참고로 비류왕은 고이왕계열이 아닌 시조 비류왕계열로 구수왕(7대)의 서자이다. 비류왕은 40년간을 재위하고 사망한다. 그런데 비류왕 사후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보과의 손자(분서왕의 아들) 계왕(12대, 344~346)이 재위 3년 만에 갑자기 사망한다.
당시 계왕의 나이는 40대 중반이어서 직계 아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계왕의 뒤를 이은 왕은 계왕의 아들이 아니라 비류왕의 둘째 아들 근초고왕(13대, 346~375)이다. <신라사초>(남당필사본)는 계왕이 갑자기 죽어 보과가 자신의 아들 근초고를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한다.(夫餘君契暴殂比流二子近肖古宝果生也宝果立之)
보과는 비류왕과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혈육인 근초고왕을 옹립한다. 이후 보과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다만 근초고왕이 즉위할 때 보과의 나이는 대략 80세 전후로 추정되어 근초고왕 재위 시기에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방국 왕녀 출신 보과는 고이왕으로부터 근초고왕까지 무려 6명의 왕과 함께한다. 그녀는 백제와 인연을 맺은 이후 줄곧 왕실 권력의 중심에 서서 왕통을 좌지우지한다.
특히 고이왕 계열을 마감시키고 시조 비류왕 계열을 부활시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고하여, <삼국사기>는 삼국의 왕비기록에 대해 매우 편향적이다.
신라는 왕비의 이름과 출신을 꼬박꼬박 기록하는 반면, 고구려는 왕비 이름이 아예 없으며, 백제는 보과를 비롯하여 아이(阿尒), 팔수(八須) 등 3명만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들 3명은 모두 외부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과는 대방국 왕녀 출신이며, 아이는 신라 귀족 출신이고, 팔수는 왜(야마토) 왕녀 출신이다. 보과부인은 <삼국사기>가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또 한 분의 위대한 여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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