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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강 하류 강의 북쪽으로는 용산·마포, 남쪽으로는 노량진 일대에 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넓게 형성됐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나면 안 보였다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면 다시 보이는 모래톱이었다. 이 때문에 정확한 넓이를 재는 게 불가능했다. 1880년 일본 육군측량부가 측량한 지도로 추측해 볼 때 당시 백사장 넓이는 8.3~9.9㎢(약 250만~300만평) 규모였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는 두 개의 섬이 있었다. 바로 서강 쪽 밤섬(栗島)과 영등포 쪽 여의도(汝矣島)였다.
여의도는 과거 한강 한가운데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섬이다. 지금은 ‘한국의 월스트리트’이며 국회의사당이 있는 정치1번지다. 세상 일이 크게 변한 상황을 일컬어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됐다는 의미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여의도는 ‘창상’(滄桑·상전벽해의 줄임말)의 대표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개발의 서막은 윤중제 공사다. 박정희 정권 당시 ‘불도저 시장’으로 알려진 김현욱 서울시장이 여의도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윤중제 공사는 1968년 서울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여의도 주위에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도로를 낸 것이다. 윤중제는 높이 16m, 둘레 7.6㎞, 폭 35~50m의 제방이다. 윤중제가 완공되면서 여의도는 홍수로부터 해방된다. 더불어 택지와 상업용지 개발로 여의도시범아파트와 국회의사당 등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개발이 본격화된다.
한낮 모래톱 여의도 윤중제 공사로 대변신 시작
김 시장은 1966년부터 만 4년간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세종로·명동 지하도 건설, 청계고가도로·남산터널 건설, 서울시내 빈민 주거지 철거 및 외곽 이주 등 박정희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개발사업을 주도한 선봉장이었다. ‘불도저를 과속으로 몰던’ 김 시장은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결국 물러났다. 1968년 윤중제 낙성식에는 박 전 대통령 부부가 함께 참석했을 정도로 통치권자의 관심사항이었다.
윤중제 위에 심겨진 벚나무는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심어 놓은 것을 복원공사를 하면서 일부 이식한 것이다. 봄이면 많은 인파가 몰리는 윤중로 벚꽃놀이 이면에는 뼈아픈 우리 역사가 숨어 있단 점을 한번쯤 상기하면 좋겠다.
한편 윤중제 개발 이면에는 서울시 재정 문제가 숨어 있었다. 김 시장은 여의도 개발을 통해 시 재정을 충당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중도 하차로 인해 개발계획은 수정이 가해지고 시범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우선 들어서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적 목적으로 여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5.16광장(현 여의도공원)을 만들었다.
일제 때 비행장·해방 후 공군기지·전후 국제공항
여의도는 이미 일제 때부터 비행장으로 사용됐다. 1916년 일제는 민간항로 개설이란 명분으로 중국 침략 교두보와 유사시 비행장이 필요했기 때문에 불모지 여의도를 택했다. 해방 후 공군기지가 들어섰고 한국전쟁 직후 잠시 국제공항으로 이용됐다. 1958년 공항 기능이 김포로 이전되자 군 전용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 폐쇄됐다.
그 터에 자리 잡은 것 중 하나가 한국거래소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의 안정적 거래를 위해 설립된 자본시장의 중추기관이다. 1979년 한국거래소가 명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자 증권사들도 대거 쫓아오면서 ‘한국의 월스트리트’가 만들어 졌다.
국회의사당은 원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용됐으나 한국전쟁 때 경남도청 무덕전으로 옮겨갔다가 전후에는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본관)을 이용했다. 이승만 정권 때는 남산 백범광장 근처에 국회의사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설계 공모를 했다. 이때 건축가 김수근이 당선작을 냈다.
하지만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공사도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터를 여의도로 옮겨 1975년 현재 국회의사당이 완공됐다. 당초 설계안은 지붕 위 둥그런 돔 없이 직사각형 건물이었지만 위정자들 목소리가 개입되면서 대폭 수정됐다.
여의도 상징 국회의사당·자본시장 상징 한국거래소
여의도에 증권사들과 금융사, 방송사, 국회의사당이 들어서면서 먹거리 문화가 발달했다. 접대문화와 유흥문화가 발달하기 좋은 직업군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빌딩이 들어서면서 지하는 대부분 식당가로 개발됐다. 전망이나 야경 등 분위기를 추구하는 곳은 빌딩 높은 층에도 자리를 잡았다. 그 중 하나가 이자카야 <히또비또>다.
<히또비또>는 여의도 동쪽 KBS 별관과 마주보는 아일렉스 빌딩 14층에 위치해 있다. 아일렉스빌딩은 70년대 지어진 초기 여의도 빌딩이다. 낡은 이미지를 벗기 위해 기존 리모델링을 하면서 10층서 15층으로 증축한 곳이다. <히또비또>는 처음에 와인바로 시작해서 4년간은 위스키 바, 5년 전 종목을 살짝 바꿔 지금에 이른다. 박미경 사장은 한 자리에서 12년을 지킨 나름 내공을 가진 외식인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다찌가 보이고 정면과 우측 두 개 면을 따라 룸으로 나뉘어져 있다. 룸에서는 밖이 시원스레 보이도록 투명 유리로 마감했다. 특히 서쪽 두 개 룸은 해넘이를 볼 수 있다. 날 좋은 날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은 분위기를 돋우는 덤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KBS 별관 옥상 녹색 방수 우레탄이 깨끗하게 반긴다. 박 사장은 눈이 오는 날엔 아무도 밟지 않은 옥상 설경도 일품이라고 자랑했다. 별관 앞에는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1995년 개관한 앙카라하우스다.
앙카라하우스가 있는 곳은 앙카라공원으로 1971년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터키 수도 앙카라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앙카라에는 서울공원이 있다. 강남 테헤란로 역시 이란에 서울로를 만들어 자매도시의 우호를 상징하고 있다. 앙카라하우스에는 터키 민속품, 농기구 등 348종 809점이 전시돼 있는 작은 생활사박물관이라고 보면 된다.
짧은 겨울 햇살이 서쪽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고 사라져 갔다. 여의대방로는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빨간 미등이 점점 늘어나면서 ‘딸기밭’으로 변했다. 14층의 덤인 창밖 풍경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이내 음식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해넘이 구경이 좋은 14층에 위치한 퓨전일식 요리주점
이번 식사는 구성을 코스요리처럼 즐겼다. 그래서 먼저 샐러드 중에서 토마토모찌리도후를 택했다. 토마토를 삶은 후 껍질을 까서 와인소스에 이틀 정도 절인 후 슬라이스를 치고 리코타치즈, 채소를 곁들여 풍성한 샐러드로 격을 올렸다. 모찌리도후, 리코타치즈 모두 직접 만든 수제다. 토마토와 리코타치즈, 발사믹소스 구성만 보면 카프레제다. 이 요리는 모찌리도후와 카프레제를 적절하게 융합시킨 창의성이 읽힌다.
요리에 대해 설명을 해준 김일남 헤드셰프는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일식 경력만 15년의 베테랑이다. 중식, 양식 조리사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히또비또>에서는 2년차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좋은 셰프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요리 또한 샐러드 종류 하나로 광어웜카르파치오다. 둥근 접시에 광어회를 돌려 담고 파채를 곱게 썰어 가운데 모았다. 카르파치오는 원래 얇게 썬 소고기 위에 소스를 뿌려 먹는 음식인데 요즘은 양고기, 생선, 채소, 과일 등에도 모두 사용한다.
웜(warm)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뜨겁게 데운 올리브오일 오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일을 파채에 뿌려 숨을 죽이는 동시에 파향을 품은 오일이 광어를 적시면서 자연스런 가미와 살짝 익히는 효과를 준다. 맛도 맛이지만 이번 요리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미각을 끌어 올리는 재미를 준다. 뜨거운 오일이 파채에 닿았을 때 나오은 절규를 한번 들어 보시라.
일식 15년차 셰프의 변화무쌍한 요리 솜씨
이 집의 요리 콘셉트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가니쉬로 쓰이는 래디쉬와 방울토마토, 서양란의 화려한 색조다. 이들은 기존 음식과 양념의 색과 어울려 비주얼을 최고로 끌어 올린다. 무순과 와사비의 녹색, 레몬의 노란색 역시 색조 연출에 큰 몫을 한다.
즉석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올려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SNS의 발달은 셰프에게 음식 솜씨 뿐 아니라 섬세한 플레이팅까지 요구하고 있다. 음식을 먹기 전에 플레이팅을 감상하는 것도 미각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다음 요리는 시로미고노와다가 나왔다. 흰살 생선과 해삼내장으로 만든 젓갈을 함께 플레이팅한 요리다. <히또비또>는 수족관이 있어 활 광어를 잡는다. 그래서 쫄깃한 식감의 광어를 고노와다에 푹 찍어 먹으면 바다가 입안에서 출렁거린다. 고노와다를 들이 붓고 회와 섞어서 먹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마치 탕수육의 ‘찍먹’과 ‘부먹’처럼. 우리의 젓갈문화가 일본에 비해 발달해선지 고노와다를 ‘애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노와다는 해삼 특유의 향과 바다냄새가 어우러져 일본 3대 진미로 이름을 올린 ‘귀한 몸’이다.
왕새우튀김은 어른 손바닥 길이보다 긴 새우를 빵가루를 입혀 바싹 튀겨냈다. 통으로 들고 나와 손님 앞에서 잘라준다. 그러니 자르기 전에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 얼마 전 연포탕 집에 갔을 때 홀 서버가 아무 소리 없이 산낙지를 냄비에 집어넣고 가위로 토막을 내는 바람에 사진도 못 찍고 당황한 적이 있다. 손님한테 한번 쯤 사진 찍을 건지 물어보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게 식당 홍보의 첫걸음이다.
日 3대 진미 고노와다에 광어회 ‘찍먹’
김 셰프가 레시피를 개발 중인 요리라며 메뉴판에 없는 멜란자네를 들고 왔다. 멜란자네는 가로로 넓적하게 저민 가지를 버터에 볶아 모차렐라치즈에 둥글게 감싼 뒤 토마토소스와 섞어 그라탕 한 요리다. 가지는 중식과 이탈리아음식에 많이 쓰이는 식재료다. 물론 한식에서도 가지를 많이 쓴다. 멜란자네는 이탈리아 가정식 가지요리 중 하나다. 이를 이자카야에 맞게 제법을 살짝 손봐서 맛을 냈다고 한다. 부드러운 가지와 모짜렐라, 토마토소스의 어우러짐이 사케와 제법 궁합이 맞는다.
요리를 얼추 먹고 식사메뉴로 마제소바와 국물요리 중 요세나베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면 메뉴 옆에 별과 시계모양 심볼이 있다. 별은 추천메뉴고 시계는 시간이 좀 걸리니 감안해서 일찍 주문하란 의미다. 마제소바에는 아무 표시가 없지만 요세나베에는 두 가지가 모두 표시돼 있다.
마제소바는 고기를 갈아 양념을 해서 볶은 민찌와 각종 채소를 곱게 썰고 날치알 등과 함께 비벼 먹는 비빔면이다. 소바면을 쓰지 않고 우동면을 쓰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비빔우동이다.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집게로 뒤적이며 비비면 마무리 식사로 괜찮다. 박 사장은 “1인1그릇을 하고 집에 갈 때 포장도 해 갈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했다.
요세나베와 마제소바로 마무리…다찌서 2차 생맥주
커다랗고 두툼한 도기 탕그릇에 담겨 나온 요세나베는 해산물, 고기, 대구살, 버섯과 채소를 넣어 맑게 끓여 낸 탕이다. 해산물로는 전복, 가리비, 중새우, 대게, 전복, 초록잎홍합 등이 들어있다. 식재료만으로도 시원하고 묵직한 맛을 상상할 수 있는 조합이다. 이날 음식과 함께 합을 맞춘 주류는 사케인 온나나카세(おんな泣かせ)와 비잔(美山) 소주였다.
온나나카세는 ‘여자를 울림’ 또는 ‘여자를 울릴 사람’ 정도로 해석된다. 목 넘김이 좋고 우아하고 섬세한 맛으로 생선회와 잘 어울린다. 양조장이 있는 지역(시즈오카) 여성 애주가들로부터 “조금 더 달달한 술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개발했다는 후문이다. 1832년 설립된 오무라야주조(大村屋酒造場)에서 만든 준마이 다이긴죠(純米 大吟釀) 등급의 알코올 17.5% 사케다. 최근 잦아졌지만 얼마 전까지 일제 불매운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와인을 찾는 손님도 많이 늘었다. 이 집의 요리가 퓨전 일식이기 때문에 와인하고 궁합이 잘 맞는 것도 한 이유다.
인디언 서머 같은 따뜻한 겨울 날씨 속에 주말 저녁 풍요로운 식사.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안락함은 미각을 극대화시킨다. 점포를 빠져나오려는데 들어 올 때 가장 먼저 반겼던 다찌가 눈에 들어온다. 나가서 2차를 하느니 다찌에 앉아 생맥주 한잔을 더 했다. 민물새우를 바싹 튀겨낸 새우깡과 먹태, 그리고 서비스로 내준 생선완자튀김이 맥주를 마냥 불렀다. 물론 나가서 꼬치집에서 3차를 했지만 말이다. 식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히또비또>는 일본어로 한자로 쓰면 사람인(人)자 두 개를 붙여 ‘사람들’이란 뜻이다. 회사가 쉬는 주말이면 여의도가 한적하다. 한적함을 틈타 사람들과 함께 여의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발길을 세운 곳. 이번 맛동산(‘맛’있는 ‘동’네 ‘산’책)은 해넘이가 아름다운 이자카야 <히또비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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