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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세모(歲暮)다. 돌이켜보니 올 한 해가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정치가 경제의 숨통을 터주기보다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들을 화나게 한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흥청거리는 연말 경기로 모두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때도 있었다.
새해 설계를 하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가 언젠가 할 정도로 기억 속에 아련하다. 대부분이 우울하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그렇다 보니 연일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가 터지면 흉흉한 세상 민심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요즘 그나마 기분을 돌려주는 건 해외에서 가끔 들려오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반짝 활약 소식뿐이라는 푸념까지 가지가지이다. 사방이 온통 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마치 그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벽을 허물어내지 못하면 숨통이 트일 수 없고, 활력이 살아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면서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이다.
우선 세상이 왜 이렇게 각박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선은 글로벌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기적 현상을 목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글로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적 자유를 기치로 내건 신(新)자유주의와 이에 편승한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Capital)’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이는 지역 경제의 글로벌화와 양적 성장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지만 국가·기업·개인 등 경제 주체들의 부익부·빈익빈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보호무역이 성행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무차별적이면서 비생산적인 복지 남발이라는 포퓰리즘 정치 유혹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이나 5G 등과 같은 엔진을 가동시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이러한 글로벌 현상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국내적으로도 이러한 글로벌 분위기에 편승되고 있음이 여지없이 확인된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기득권과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 간의 치열한 다툼이 진행 중이다. 후자들의 분노로 생겨난 정권이 일시적으로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해 보이나 이러한 행태가 국가의 백년대계나 경제의 질적 성장에 플러스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기업이나 가진 자를 자본주의 폐해의 산물이자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힘을 빼고 기(氣)를 죽이면서 자기 진영의 무리들을 만족시키려고만 한다. 갖은 규제로 경제의 활력을 저지하고 소득 갭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퍼주기 식의 재정 남발에는 억척을 부린다. 진영 혹은 흑백 논리와 표 얻기에 사로잡혀 경제 현장은 더 얼어붙고 좀처럼 냉기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쪽 편을 들고 다른 쪽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분위기에서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풍선 효과만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으로 우리가 당장 잃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공급 사이드의 활력 없이 수요 사이드에 온기가 돌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
그러나 눈을 바깥으로 돌려보면 상황은 현저히 다르다. 소위 잘 나가는 나라일수록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한다. 특히 현명한 국민이 정부로 하여금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있다. 무엇이 국가에 독(毒)이 되고, 이익이 되는 지에 대해 분간을 할 줄 안다. 국민이 냉정해지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대중영합적인 정치 포퓰리스트들의 좌충우돌을 막을 방도가 없다. 인위적으로 진영을 갈라놓고 얄팍한 꼼수로 일관하는 이들의 노림수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결국은 모두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같이 살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한다. 원래 경제란 공급과 수요의 밸런스에서 출발하며, 균형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 원인은 공급 사이드에 녹이 잔뜩 끼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국내에 돌지 않고 해외로만 빠져 나간다. 해외로 나간 돈이 국내에 들어온 돈의 무려 세배다. 돈이 되는 곳에 돈이 움직인다고 보면 국내에 머무를 이유가 별로 없다. 이 흐름을 돌려놓지 않고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 발상이나 발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것은 위축된 공급 사이드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시동 장치가 있느냐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확장적인 재정 정책은 필요하다.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규제 완화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라는 충분조건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내년도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도 분분하다. 정부나 일부 진영에서는 애써 낙관론을 펴고 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기업은 아예 정부 쪽을 쳐다보지 않고 위기 경영을 위해 나름대로 각본을 써가고 있는 듯하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크게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있다. 경제의 현상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있어 그만큼 온도 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은 절박하고 숨이 차는데 정부는 막연한 기대와 요행수만 쳐다본다.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물과 기름같이 겉돌아서는 터닝 포인트가 만들어질 수 없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각종 경제 지표가 말해주듯 우리 경제 앞에 놓인 중차대한 이슈들이 그냥 묻히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경제에 온기를 불어 넣고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해법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창출한다. 단순히 돈을 푼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날 것 같으면 어설픈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제가 선순환을 하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에 걸맞은 조치들이 동반되어져야 한다. 그 근본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물 흐르듯 움직이는 경제의 기본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부가 장밋빛 청사진이나 경제 대책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알맹이는 다 빠지고 껍데기만 가지고서는 난국을 풀지 못한다. 단지 반도체 수요만 회복되면 수출이 잘 되고, 재정만 풀면 민간 투자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섣부른 접근으로 시장의 반응이 호의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국가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은 대동소이하지만 대처 방법은 각기 다르다. 분명한 점은 공급 사이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쪽이 수요 사이드에 방점을 두고 있는 쪽보다 경제적 성취도가 높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구분해 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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