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비류왕 기록의 은유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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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흥세력 출현의 예고편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19-12-22 18:16:21

역사기록의 은유적 표현은 사건의 실체성을 우회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용이 출현했다’의 표현은 쿠데타적 사건 발생을 말한다. 그런데 백제 왕 중에 유독 은유적 표현을 집중해서 기록한 왕이 있다. 4세기 전반기를 이끈 11대 비류(比流)왕이다.

재위 기간은 304년~344년까지 41년간으로 비교적 긴 편이다. 비류왕의 왕명은 시조 비류(沸流)와 음이 같다. <백제왕기>(남당필사본)는 ‘비류(比流)와 비류(沸流)는 뜻이 같다[比流與沸流同義也]’고 설명한다. 비류왕은 시조 비류(沸流)의 계승자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왕명에 시조 이름을 직접 쓸 정도인가는 다소 의문이다. 피치 못할 역사적 사정이 존재한다.

비류왕의 출신 의문과 보과부인 옹립

<삼국사기>는 비류왕을 구수왕(6대)의 ‘둘째 아들(二子)’로 설정한다. 그러나 구수왕은 234년에 사망하고 비류왕은 304년에 즉위한다. 70년의 시간 격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비류왕이 구수왕의 생물학적 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또한 <고구려사략>은 비류왕을 구수왕의 ‘서자(庶子)’로 설명한다. 이 역시 생물학적 나이를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삼국사기>는 비류왕이 ‘신민(臣民)의 추대로 즉위하였다[臣民推戴卽位]’고 기록한다. 통상적으로 <삼국사기>는 후임왕의 승계가 특별할 경우 ‘국인(國人) 추대’의 표현을 쓴다. 국인은 일반 백성이 아닌 지배층을 가리킨다. 국인 추대는 왕통 승계가 다소 비정상적인 경우이다. 신민은 지배층뿐 아니라 일반 백성도 포함한다. 신민 추대는 국인 추대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경우로 비류왕이 유일하다. 다만 <삼국사기>는 ‘오랫동안 백성과 함께 살면서 칭찬이 널리 퍼졌다[久在民間令譽流聞]’하고, <고구려사략>은 ‘고이(古爾) 시절 민간에 숨어 지내 민정(民情)을 잘 알았다[古爾之時避于民間熟知民情]’고 기록한다. 비류왕은 즉위 전에 이미 일반 백성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중앙 정치세력이 아닌 재야 정치 세력의 거물급 인사이다.

참고하여 <신라사초>(남당필사본)에 비류왕의 어머니 여음(餘音)이 나온다. 여음은 비류왕을 낳은 이후 구수왕의 정실 왕비 소내(素嬭)에 의해 왕실에서 쫓겨난다.

비류왕을 옹립한 사람은 보과부인이다. 대방국 왕녀출신인 보과부인은 고이왕→책계왕→분서왕으로 이어지는 고이 계열과 함께 한 왕실권력의 중심인물이다.<고구려사략>은 ‘보과가 총애하던 비류를 왕으로 세웠다[宝果立其所嬖比流爲王]’고 기록한다. ‘폐(嬖)’는 단순한 총애가 아니다. 비류는 보과부인의 정부(情夫)이다. 보과부인과 특별한 관계는 비류왕 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비류왕은 보과부인 뿐 아니라 지배층과 일반 백성의 탄탄한 지지를 확보한다. 그래서 <삼국사기>는 ‘분서왕이 죽고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으로 세울 수 없기에 신민의 추대로 즉위하였다[及汾西之終雖有子皆幼不得立是以爲臣民推戴卽位]’고 기록한다. 비류왕은 고이 계열로 넘어간 왕통을 다시금 비류 계열로 회복시킨 왕이다. 그래서 과감히 시조 비류와 뜻이 같은 왕명을 차용한다.

은유적 표현기록의 재해석

<삼국사기> 비류왕 기록의 은유적 표현은 크게 3개이다. ①13년(316년) 봄, 큰 별이 서쪽으로 떨어졌다. 4월, 왕도의 우물물이 넘치더니 흑룡이 그 속에서 나타났다. ②22년(325년) 10월, 하늘에서 소리가 났는데 풍랑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았다. 11월, 왕이 구원(狗原) 북쪽에서 사냥하다가 손수 사슴을 잡았다. ③24년(327년) 7월, 붉은 까마귀처럼 생긴 구름이 해를 감쌌다. 9월,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성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이 군사를 보내 토벌하였다 등이다. 비록 발생 월에서 다소 시간 차이가 조금씩 나지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특히 마지막 ③은 실체가 명확하다. 비류왕의 이복동생 우복이 북한성에 의거 반란을 일으킨 전조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붉은 까마귀 구름은 우복을 가리킨다. 그러나 ①과 ②는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먼저 ①이다. 316년이다. 큰 별(大星)이 서쪽으로 떨어진다. 원인이다. 서쪽에 큰 별이 출현한다. 백제 서쪽 지방에 큰 별 집단이 도착한다. 이어 왕도의 우물이 넘치고 흑룡이 나온다. 결과다. 큰 별 집단의 출현으로 백제가 혼란에 빠진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큰 별은 바로 흑룡을 가리킨다. 백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다. 다음은 ②이다. 325년이다. 큰 별 집단이 서쪽에 출현한 지 9년째가 되는 해이다. 하늘에서 풍랑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원인이다. 이어 비류왕은 구원(구사파의-경기김포)에 가서 사냥을 하며 손수 사슴을 잡는다. 결과다. 전자는 큰 별과 비류왕이 격하게 대립한 것을, 후자는 비류왕이 구원을 찾아가 큰 별과 손을 잡은 것을 의미한다.

비류왕의 은유적 표현은 큰 별 집단의 한반도 출현 기록이다. 또한 한반도 백제가 큰 별 집단의 출현으로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을 예고한다. <삼국사기>는 큰 별 집단의 실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비류왕 시기의 은유적 표현 기록을 남긴다. 한반도에 출현한 큰 별 집단은 어떤 세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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