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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의 파이내셜타임스(FT)가 발표한 2010년대 세계를 움직인 50인의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은 한 명도 없다. 중국은 마윈·시진핑·조슈아 윙(홍콩 우신혁명을 이끈 청년 지도자) 등 3명이, 일본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1명이 선정되어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될 일은 아니지만 조금은 서운하고 여운이 남는다.
한편 모 일간지가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한·중·일 3국 국민의 심리 조사 발표를 보면 일본인은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중국인은 자기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율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주체성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 중에는 주변 사람과의 일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관계주의’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주체성’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이 긍정적일 수 있고, 반대로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부정적인 경우다. 이는 우리 국민의 심리가 긍정적으로 작동되면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쏠릴 경우 의외의 낭패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나친 자아로 인해 남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무시 내지 적대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기만 잘났다는 편협성과, 관계에 집착해 비생산적이면서 부도덕한 그물망을 만들어 배를 채우려는 천민 이기주의로 빠질 수 있다.
또한 자기 논리에 따라 ‘자기 편’과 ‘남의 편’으로 구분해 상대는 무조건 나쁘다는 극단주의에 치우칠 수 있는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이는 당연히 상대의 분노를 자극한다. 현재 아스팔트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영 간의 힘겨루기도 여기에 기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개인이나 자기네 편이 힘의 우위에 있기라도 하면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심지어 올가미를 씌워 재기가 불가능하도록 난도질까지 하고 있다. 반목과 불신으로 도배된 삐뚤어진 주체성이 생산해내고 있는 최악의 일면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하에서는 절대로 영웅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나올 수 없다. 한국에서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 어떻게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겠는가. 한 사회나 국가가 지속가능하고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엄격한 도덕과 절제가 몸에 배인 자율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고 특정 개인을 숭배하거나 미화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당시의 상황이나 제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 공(功)과 과(過)를 구분하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과가 지나쳐 법의 잣대로 위반이 되면 당연히 벌을 받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없는 허물까지 들추어내거나 지나치게 과에 치우친 나머지 이에 함몰되는 것은 역사의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부정은 또 다른 부정을 양산하는 어리석음이 반복된다. 선진 국가에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면서도 집단에 대해서는 균형적인 접근을 하려는 노력들이 돋보인다. 잘못된 역사는 엎질러진 물과 같아 후세들이 이를 있는 그대로 교훈으로 삼되 이를 가지고 피아를 구분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일말의 기대 있다면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기희생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출현
한국 경제의 산업화도 벌써 60년이 가까워지면서 1세대 창업자들이 차례차례 세상을 등지고 있다. 2세 혹은 3세에 경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기업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재벌 세습 경영이라고 해서 이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다. 심지어 이들을 무조건 나쁜 부류로 분류해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무리들도 있다. 행여 이들의 비위 사실이나 경거망동이 불거져 나오기라도 하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한다.
반면에 중국은 우리와 다르다.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시진핑이 아니라 마윈과 같은 1세대 경영자들이 더 칭송을 받는다. 이들과 같이 되기 위해 절차탁마를 하고, 불세출의 기업가가 되겠다고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득실하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중국판 ‘중국몽(中國夢)’이다. 일본은 국민 심리 그 자체를 반영하듯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집단선(集團善, Collective Goods)'이라고 인정이 되면 몸을 낮추고 심지어 희생까지 감수한다. 섬나라 사람들의 오랜 관습에서 비롯되고 있는 위기 대응 방식이다.
외골수로 빠진 우리의 주체성을 본래의 위치로 돌려놓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밝지 않다. 시대에 뒤떨어진 개인 혹은 집단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메스가 가해져야 한다. 힘 있는 자가 새롭게 생겨나면 거기에 줄을 대어 기생하려는 무리들로 인해 국가의 힘은 갈수록 약해진다. 일례로 평생 공무원을 하려고 그 길로 들어섰으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정치에 대항하거나 핏대를 올리기도 해야 한다. 그들마저 정치 논리에 휩싸여 역사를 거꾸로 돌리면 국민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다.
결국 국민이라고 하지만 국익에 기여하기보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최근 국부가 국내보다 해외로 더 많이 유출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른 나라가 우리를 깔보고 낮추어보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여기서 기인한다. 국가와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글로벌 경쟁에 덤벼들어도 승산이 만만치 않을 정도로 냉엄하다. 그런데도 국민이 딴 생각을 하고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바쁘다면 이미 패배를 자인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 내부를 다독여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인 하드웨어가 바르게 장착된 상태에서 국민 심리에 내재되어 있는 주체성이 발현될 수 있다면 긍정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 혹은 존경하는 문화가 잉태되어야 한다. 자칭 혹은 타칭으로 지도자급으로 분류되는 엘리트들의 분골쇄신이 요구된다. 그들의 자성과 희생이 없으면 전환의 물꼬가 트이지 않는다.
한 때 정치적 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현안을 놓고 국민과의 밤샘 토론, 연금개혁에 반대하고 있는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연금 반납을 천명하고 나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많은 곡절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절반 이상 성공하고 있고, 프랑스 경제도 유럽의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변신 중이다. 지금 한국에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들이 일시에 해결될 수 있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일말의 기대가 있다면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진솔하고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리더의 출현이다. 새해를 앞두고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또 다른 막연한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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