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백제본기>를 보면 백제 멸망을 앞두고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진다. 소위 망조(亡兆) 현상이 집중해서 나타난다. 주로 멸망직전인 659년과 660년 두 해에 걸쳐 발생하며 백제 멸망을 기정사실화한다.
『삼국사기』에 실린 백제 망조현상 14가지
내용은 이렇다. ① 여우 떼가 궁궐에 들어오다.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올라앉다. ② 태자궁에서 암탉이 참새와 교미하다. ③ 큰 물고기가 죽어 사비하에 떠오르는데 길이가 3장(丈)이다. ④ 여자의 시체가 생초진에 떠내려 오는데 길이가 18척이다. ⑤ 대궐 뜰에서 홰나무가 울다. ⑥ 궁궐 남쪽 길에서 귀신이 곡을 하다. ⑦ 도성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⑧ 서쪽 바닷가에서 작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다. ⑨ 사비하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⑩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꼭대기에 모이다. ⑪ 도성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까닭 없이 놀라 달아나다 죽다. ⑫ 폭풍우가 몰아쳐 천왕사와 도양사 두 탑에 벼락이 치다. ⑬ 백석사 강당에 벼락이 치다. ⑭ 검은 구름이 동쪽과 서쪽 동궁에서 서로 싸우다. 모두 14가지이다.
이는 『구약성경』<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하나님이 행한 10대 재앙사건과 흡사하다.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며 수만 마리 두꺼비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이유 없이 놀라 달아나다 넘어져 죽는다. 모두 섬뜩한 장면이다.
세계역사를 고찰해보면 한 나라가 망하면서 이처럼 많은 망조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사례는 없다. 또한 이를 기록한 역사도 없다. 망조현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일부는 자연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상당수는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더구나 일정한 시차를 두고 계속해서 나타나며 공포의 강도가 점점 커진다.
『삼국사기』는 모두를 기록한다. 그저 한두 개 망조현상이 나타났으니 백제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면 그만인데도 모두를 기록한다. 마치 없는 것도 만들어 추가한 것처럼 온통 망조현상으로 기록을 도배한다. 『삼국사기』는 의자왕의 향락과 망조현상을 한 세트로 묶어 백제 멸망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완벽한 각본이다.
김유신 사주 받은 조미압의 작품
특히 백제 멸망을 한 달 앞둔 시점인 660년 6월의 사비궁궐 구덩이에서 출현한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글자는 망조현상의 끝장판이다. ‘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 의자왕은 두 명의 무당에게 이를 해석하게 한다. 그리고 ‘달이 둥글다는 것은 가득 찼다는 것이니 이제 곧 기울 때가 되었다는 뜻이고 초승달은 아직 차지 않았으니 머지않아 보름달이 된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 즉 ‘백제가 망한다’고 해석한 무당을 죽여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한다.
백제 망조현상의 상당부분은 조작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국사기』<열전> 김유신 편에 백제에 잡입해 활동한 조미압(租未押)이 나온다. 원래 부산현령인 조미압은 백제에 포로로 끌려가 좌평 임자(壬子)의 종이 되어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이후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며 백제의 내부정보를 김유신에게 속속들이 제공하며 백제에서 직접 공작활동도 벌인다. 망조현상 상당부분은 김유신의 사주를 받은 조미압의 작품이다.
백제 망조현상은 김유신이 기획한 고도의 심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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