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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01>

지나와 일본에 전수한 우리 민족의 공헌철기와 기마전술 문자

천하를 호령한 예맥조선과 평화의 낙랑조선 되살려야 한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5-01 10:10:01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 민족이 선진민족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다 드러나고 있다. 세계가 석기시대에 우리는 신석기시대로 우리나라 학자보다도 세계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컬럼비아대학의 부라운교수는 1만8000년 전 이미 신석기시대로 우리의 역사를 매김하고 있다.  
 
한자(漢字)도 우리가 발명해 고대부터 제사, 사회, 정치, 경제 등에서 해명되고 있다. 한자(漢字)는 이후 계속 증가해 송(宋)시대(990~1053)에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편집한 자수는 5만3525자에 달하고 지금은 10만 가까이 되고 있다.
 
한편 지나(支那)는 우리 예맥조선도 숨기고 있으나 예맥은 고대의 동주시대부터 1000년간 중원(中原)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마민족이 서기전770년~서기전403년에는 철제농구사용에 의해 농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기마전술도 대륙에 전수시켰는데 이 전술은 진(秦) 때는 확대되어 진왕(秦王;政)은 기마전술을 이용해서 포위작전으로 포위하는 섬멸전을 전개해 6국, 즉 초(楚), 연(燕), 전제(田齊), 한(韓), 위(魏), 조(趙)를 통합을 했고, 한(漢)시대에는 3000Km 때로는 4000Km 까지 원정(遠征)을 시도해 판도확대(版圖擴大)에 공헌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나에서 철기(鐵器)사용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서기전770년~서기전40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한(漢)시대에는 지나도 철기와 기마군단(騎馬軍團)을 갖게 되어 예맥과의 숙명적인 대결을 하게 됐던 것이다. 
 
예맥조선의 모돈단우(冒頓單于)가 동호(東胡), 월씨(月氏), 정령(丁零), 견곤(堅昆),등을 계속해서 격파해, 한(漢)의 경내에 들어오자 한고조(漢高祖)는 32만 대군을 화북(華北)에 집결, 운강(雲岡) 석굴 가까운 평성(平城 ; 산서성 대동현)까지 진군했으나 그때 돌연 예맥의 모돈단우(冒頓單于)가 이끄는 40만 기마군단에 포위돼 격파되고 만다. 
 
예맥조선에 여지없이 큰 참패를 인정한 한고조는 일족의 왕녀를 예맥조선에 시집보내고 많은 선물을 보냄과 동시에 형제의 약속을 맺는 화의(和議)를 하게 된다. 이 화의는 무제(武帝)가 취임하는 서기전141년까지 60년간이나 계속됐다. 오늘은 우리가 선진민족으로 지나에 문물제도, 철기문명을 안겨준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나 최고기록문헌에 나오는 흉노는 예맥조선임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지나에 문물을 전수한 것을 말하려면 지나가 말하는 흉노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지나의 최고기록문헌인 서전(書傳)은 요전(堯傳)에서 이(夷)를 내세울 뿐 융(戎), 적(狄), 호(胡)는 나타내지 않았으며 이러한 명칭은 춘추시대 서기전770~서기전403년) 이후의 것이라고 보며, 특히 호(胡)라는 말은 강희자전(康熙字典)에 전하는 호족(胡族)에게 심히 시달린 제(齊), 진(秦), 진(晋)시대 소산(所産)이라고 보는 것이다. 
 
서전(書傳), 요전(堯傳)에서 말하는 [극명준덕 이친구족(克明俊德 以親九族)의 구족(九族)을, 무이채침(武夷蔡沈)은 고조(高祖)~현손(玄孫)까지라 하는 등 역사사실에 어긋나는 해석을 해놓았으며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는 민족별적인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요시대(堯時代)의 구족(九族)이라 함은 그 당시 부족별을 지칭한 것이요,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흉노전(匈奴傳)이 호(胡)에 동(東)을 더해 동호(東胡)라 칭하게 된 것은 동북방의 호족(胡族)이라는 뜻에서 기인 것이다.   
 
고대 지나의 문헌에 흉노(匈奴)라는 두자(二字)가 나타난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흉노전이 처음이고, 사기(史記)의 흉노전은 기마민족인 예맥조선을 흉노라 하며 35종류를 들고 있다. 
 
흉노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은, 사기(史記) 흉노전과 한서(漢書) 흉노전이 있는데 이 두 사서는 한무제의 연대까지 그 내용이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여기서 흉노라는 말을 그 글자(字) 그대로 풀이하면 [떠들썩한 오랑캐 놈]이라는 뜻으로서 지나 한인(漢人)들은 북과 동북방의 이민족들을 흉노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흉노전에 재록(載錄)되어 있는 흉노들을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몽골 북방에 살았던 선비족(鮮卑族)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사기(史記), 한서(漢書) 흉노전의 내용을 연구검토를 하지 않은 우리나라 일부 식자들은 흉노의 정의(定義)를 [하나같이 북적(北狄)의 몽골족, 또는 선비족 등이 분파라 함]이라 했고 동세출판사(東世出版社)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본, 일부 식자(識者)들은 흉노족이 따로 있는 것 같이 착각해 흉노족 운운하고 있다.  
당대(唐代) 사가(史家)인 사마정(司馬貞)은 흉노 35종류의 하나인 동호(東胡)를 그릇되게 취급해 사기(史記) 색은(索隱)에서 [흉노의 동방에 살았기 때문에 동호라고 붙이게 된 것]이라고 했다.(以上은 文定昌, 古朝鮮硏究 444面 以下 參照 引用하다.) 
 
예맥조선이 주변 민족들에 기여한 공헌은 무엇이었는가 
 
우리 기마민족이 지나 민족사회에 기여한 공헌은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원의 역대왕조가 경직화된 것을 우리 민족이 신체제를 성립시키고 선진문물을 전수(傳授)시켜 줬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황제제도를 비롯해서 거의가 우리가 전수했다.
 
즉, 우리 민족은 원시시대에 이미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최초로 대궁(大弓)을 발견했다. 인간을 발견치 못한 신학시대(神學時代)에 인간을 발견한 민족으로 우리 민족은 인류사상 최초로 문화민족으로 발전하고 인류 사상 최초에 강대족(强大族)으로 등장해 이민족(異民族)들에게 선진문물을 전수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그 공헌은 주변민족에게 베푼 공헌은 특히 유목민족인 예맥조선이 기마전술을 한족(漢族)에게 갖게 한 것이다. 지나에서는 춘추시대부터 철제농구의 사용에 의해서 농업이 크게 진보하고 농경민족으로서 기초가 확립되게 한 것은 예맥의 공헌도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지나군대는 전차를 따라가는 보병중심의 부대가 전장을 메우고 있었다.   
 
여기에 예맥조선의 기마전술이 지나사회에 보급된 것이다. 지금까지 예맥조선 기마전술에 속수무책이었던 전국시대의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은 예맥조선의 호복기사전술(胡服騎射戰術)을 수입해 국방을 강화해 군사력의 강한 조(趙)나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기마전술은 점차 전국시대에도 확대되어 전차전술을 무용화시켜 진왕(秦王;政)은 기마전술을 써서 포위섬멸전을 행해 위에서 밝힌대로 6국, 초(楚), 연(燕), 전제(田齊), 한(韓), 위(魏), 조(趙)를 통합한 원동력이 되어 한족사회를 통합했던 것이었다.
 
이같이 철제의 화살과 무기의 발전으로 철제무기와 농기구의 생산을 촉진시킨 것은 예맥 등 우리 기마민족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철 생산을 하기 위해 막대한 나무가 필요하게 되어 화북일대(華北一帶) 산과 산은 민둥산이 되기까지 벌채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래서 화북지방의 산들은 벌채로 산림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곳은 건조한 대지이기 때문에 한번 벌채가 되면 재생은 불가능 하게 돼, 오늘날 지나의 산은 거의가 민둥산이 되어 산림이 15%에 불과한 원인이 된 것이다. 
 
원래, 지나는 산의 85%가 산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산이 민둥산이 되고 산림은 15% 밖에 아니 된 것은 지나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철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목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에서 나무를 무분별하게 벌채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한편 예맥의 기마군단은 내분으로 분열돼 그 중 북의 예맥은 중앙아시아로 가서 힘을 비축한 후, 유럽으로 들어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하게 됐다. 
 
위에서 보듯 우리 민족의 주철(鑄鐵)기술은 배달국 제14대 황제인 치우천황의 투구와 갑옷에서 보듯, 우리는 고조선 이전부터 말안장에 발을 디디는 등자(鐙子) 등의 무기 외에 농경기구도 전수시켜 농업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 인구도 6000만명 가까이 까지 증가시켜서 중원(中原)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게 한 것을 숨길수가 없다.  
글을 맺으며 
 
지나와 일본은 우리 예맥조선과 낙랑국의 역사를 숨기고 덮어버렸으나 지나 역사에서 흉노라고 나오는 것을 살펴보면 흉노가 단순한 한 족속이 아니라 예맥조선이라는 실체임을 알게 된다. 이 예맥조선은 창여지방(昌黎地方)에 있었다.
 
즉, 산해관(山海關) 이서(以西)~천진구(天津口)까지에는 백하(白河), 난하(灤河)를 비롯한 18조(條)의 크고 작은 강하(江河)가 흘러내려 발해(渤海)로 들어가는 등 이 지대도 관녕평야((廣寧平野) 못지않게 물이 많고 산색이 아름다운 대평야지대이다. 
 
이 무녕지방(撫寧地方)에 위치한 조선을 예맥조선,낙랑조선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나와 일본은 이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을 지워 없앴다. 그래서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이 있지 않은 듯이 만들었다. 이 두 조선은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이 조선을 복원해야 우리 역사가 바로 체계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계와 정부가 이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몽골북방에 살았던 선비족 등 모든 부족의 주체는 예맥조선이라 했고, 서전(書傳), 무성편(武成篇)에 화하만맥(華夏蠻貊)이라 했다.
 
즉, 안으로 지나, 밖으로 예맥이라 기록한 것이다. 이 예맥조선은 지극히 강대해 지나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했다고 표시한 것이다. 지나사서 무성편은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예맥은 극히 강대해 지나와 병칭(竝稱)된 것이다. 이 예맥은 동주(東周)시대부터 한무제(漢武帝)시대까지 1000여년 동안 지나를 정벌, 정복해 지배한 사실이 지나 역사에 명기되어 있는 것(漢書99, 史記129등)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기(史記),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재록(載錄)되어 있는 흉노는 예맥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춘추시대에 지나를 정벌한 민족은 흉노가 아니고 예맥조선인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東夷傳)과 준남자(准南子)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낙랑조선도 서기전1237년~서기32년까지 남만주와 한반도에 존속한 사실이 한서(漢書)권28과 사기조선열전(史記朝鮮列傳) 주(注)에 분명하게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사서에서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엄연한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이 누락된 것은 말이 아니 된다. 이 예맥조선, 낙랑조선을 원래대로 복원하고 지나와 일본이 숨겨 덮어버린 역사를 되살려내야 역사가 바로 서는 것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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