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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내 삶의 창조자가 되고 싶은가

‘명칭붙이기’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5-07 12:02:37

 
▲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벌컥벌컥 화를 잘 내는 어르신이 이해될 때가 있다. 모르긴 해도 본인의 의식에 ‘나잇살’이 튼튼히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리라. 특히, 누가봐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뭔가 부탁해야 할 때, 입으로는 존대를 하긴 하지만 서열 중심으로 살아온 방식이 전복된 상황이다보니, 낯선 조건 속에 풍덩 던져진 느낌이지 않을까. 그러니 상대의 태도나 언행에 따라 여름날 두부처럼 쉽게 자존심 상한다.
  
이런 벌컥증처럼, 내 생각⋅감정 혹은 몸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찻길을 달리던 중 갑자기 운전대가 내 마음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이 느낌 안다. 운전대를 아무리 굳세게 잡아돌려도 정작 바퀴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차체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비틀리거나 돌아가는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식은땀 난다.
  
당신의 동작이나 생각⋅감정은 어떤가. 밥을 먹으면서 자신이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입안에 숟가락째 넣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으로 국을 뜬 후 입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기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경우나 상황에 따라서 기계화된 몸과 마음의 반응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 ‘인지 장애’라는 용어는 이런 심리적 엇박자 상황을 표현하는 대표적 용어다. 자신이 슬픈지 기쁜지 노여운지 씁쓸한지 즐거운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증세. 하지만, ‘자신의 감정 상태나 언행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스스로 알지 못하면, 스스로 불신한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심신이 기계처럼 자동화된 순간이 자주 있을 수 있다니,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다. 나는 기계가 아니잖은가. 자신의 내면에서 ‘나 이거 싫거든!’하는 중얼거림이 있는데 정작 그 자신이 ‘나는 싫거든!’ 하는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서 어른거리는 ‘나는 싫거든!’이 타인에게 들킬까봐 과장되게 소리를 높이거나 행동을 거칠게 하는 경우가 잦다. 이처럼 심리적 부조화가 습관이 되면 그는 자신의 내적 욕구나 생각을 스스로 불신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감정이나 오감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타인의 생각⋅감정은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이러한 증세는 필연적으로 까닭모를 우울감, 조울, 불안감, 짜증, 분노 따위를 불러일으킨다. 내 몸과 마음 안에 가득 찬 가스를 틀어막아놓은 것과 같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극복을 위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정좌를 하거나 혼자 있는 곳을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명상은 그런 고요함이나 정숙한 처소가 반드시 필요한 심신 치료요법이 아니다. 당신이 만약 몸을 움직이면서 그 움직임에 대해 알아차릴 수 있거나, 그 움직임의 명칭을 붙일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명상이라고 할 만한 행위를 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이 순간 오른팔을 들어올리면 ‘올림, 올림, 올림’ 이라고 명칭을 붙인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당신 자신을 제3자처럼 객관화시킬 수 있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내 삶의 모든 국면에서 ‘명칭 붙이기’ 작업은 명상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자신의 행위나 태도⋅감정⋅생각을 주시하면서 그것의 명칭을 붙여보라. 이를테면 아침에 차를 몰고가다 뜻하지 않게 앞뒤 혹은 옆차와 시비가 붙는 경우가 있다. 내 차가 차선 바꾸기를 하려고 깜박이를 켜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뒷차가 속도를 높이며 달려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옆 차선에 들어섰으므로 눈치껏 차선 안쪽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순간, 뒷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나의 운전석 쪽 본닛 앞에 10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선 것이다. 그 즉시, 상대방 조수석 쪽 차창이 열리더니, “야! 어쩌구 저쩌구” 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내 의식이 상대의 악다구니나 분노의 표정에 달라붙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나는 동물적 반응을 하게 될 터이다. 창졸간에 공격당하는 생명이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대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일단은 적개심이나 분노, 두려움, 떨림 따위, 날카로운 감정이 정수리를 뚫는 기분이다. 하지만, 명칭 붙이기는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반전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당신이 만약 마음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서 명칭을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그 순간, 몸의 떨림과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당신의 전존재는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다. 입에서는 거친 말들이 터지려고 하는데, 이때 당신은 공격자를 주시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한 단어를 찾는다면 무엇일까. 
 
‘분노’.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당신은 ‘김 아무개’나 ‘누구 아들’이 아니라, 그냥 백 퍼센트 ‘분노’ 다. 그 외, 당신이라는 존재를 규정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당신은 자명하게 자신의 상태를 호칭할 수 있다. ‘분노, 분노, 분노.’
 
상대를 향해 당연히 쏴붙여야 할 감정이 스스로의 의식 안에서 이렇게 ‘호명’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신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분노, 분노, 분노’ 이렇게 제3자처럼 바라본 당신의 감정은 그 자리에서 영원히 박제될 것인가. 아니다. 그 동안에도 그 감정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강물이 그렇듯,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그것은 마치 클레이 사격장에서 날아오르는 표적을 적중시키면 새 표적이 허공을 가르는 현상과 같다.
 
새 표적은 그냥 날아든 사건이 아니다. 새 표적이라는 ‘새로운 감정, 새로운 생각’이 날아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몸 감각, 신념, 냄새, 소리, 맛 등을 알아차리는 순간, 당신은 그 모든 새로운 반응의 주인공이 된다. 그 모든 생각⋅감정⋅감각들에 대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창조 행위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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