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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06>

왜 지나는 역성혁명이 반복된 나라인가

지나(支那) 역사는 왕조일족의 독점이 문제였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05 19:00:01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해서 72년인데 생각하면 대륙에서는 3000년 전에 은왕조(殷王朝)가 혁명에 의해 멸망한 후 많은 왕조가 교체 되어 왔다. 은(殷)의 뒤에 주(周), 진(秦), 전한(前漢), 후한(後漢), 수(隨),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등 많은 왕조가 세워져 계속해서 대륙을 지배하고 붕괴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지나(支那) 역사는 결국 왕조 교대의 반복이라고 하고 있다.
 
어느 왕조도 말기가 되면 정치가 부패하고 왕조에 의한 착취가 심해져 불만이 높아진다. 여기에 가뭄과 역병 등의 재난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생활이 파괴되어 불평불만이 폭발해 민중반란이 일어난 것이 지나 역사이다.
 
이때 천하를 넘보는 호족(豪族)이나 군벌세력이 민의에 편승해서 민중의 힘을 결집해서 본격적인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무너뜨리고, 전 왕조를 괴멸시켜서 새 왕조를 세워간다는 것이 공식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신왕조(新王朝)는 내란이 잠잠해지고 얼마동안 천하태평이 시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는 부패해서 왕조의 착취가 더 심해져 백성의 불평불만은 높아져, 반란이 발생하고 군벌세력이 일어나 본격적인 내전이 발발(勃發)이라는 참으로 이전 왕조의 말기와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 결과 현왕조의 붕괴와 신왕조의 수립이 된다. 이같이 지나 역사를 보면 계속 왕조교대(交代)가 반복해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지나 대륙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왕조의 지배 하에서 특히 왕조 말기가 되면 민중은 심히 착취와 압정에 허덕이게 되어 그 고통이 심하게 되면 그때마다 왕조가 바뀌어 졌다. 오늘은 거의가 역성혁명으로 나라가 바뀐 지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낳은 지나의 비극
 
특히 역성혁명이 일어나서 천하대란이 일어나면 아비규환의 전란 속에서 가옥이 불타고 목숨들을 잃는 것은 언제나 민중들이었다. 예컨대 대난세(大亂世)의 지나(支那) 삼국시대 100년에 걸친 전란 속에서 당시 인구는 대란이전의 5분의 1로까지 격감했다. 예컨대 전한(前漢) 서기2년에 5959만4978명이었던 인구가 삼국시대(서기242년)의 인구는 763만이다.
 
이것은 얼마나 민중들이 한번의 역성혁명에서 목숨을 잃었는가를 잘 알 수가 있다. 목숨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축적해온 우리에게서 전수받은 문화와 문명도 파괴했기 때문에 역성혁명은 지나에 있어서 백해무익한 비극이었다.
 
문제는 왜 지나는 이런 비참한 역성혁명을 반복하는가 이다. 지나의 역사를 보면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이념이 없고 ‘일족중심주의(一族中心主義)’가 문제였다.
 
그들은 고대부터 일족(一族)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공(公)의 이익을 차선에 두었기에 문제가 야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의 왕조는 거의가 일족의 전속물같이 보았기에 민중의 연대의식 결여를 낳았다.
 
예컨대 한왕조(漢王朝)는 유방(劉邦)의 일족이었고, 수(隨)와 당왕조(唐王朝)는 유씨(劉氏)일족과 이씨 일족에 있어서 왕조는 자기들 것으로 봤다. 즉, 천하 모든 것이 자기들의 소유물로서 자기들 일족을 위해서 천하 만민이 있다는데서 착취는 당연한 것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왕조의 지배가 오래 계속되면 왕족일족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서 민중에 대한 착취도 더 심해져 갔다. 이것이 민중의 불평불만이 높아지는 원인이 되어서 역성혁명을 유발한 것이 지나 왕조 패망의 패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좋지 않은 일은 왕조지배의 일족이 천하국가의 일을 공적(公的)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천하의 만민도 왕조와 국가를 공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어느 왕조 때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민초들의 의식이고 사고(思考)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왕조와 국가는 겨우 일족의 사유물로서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왕조의 착취로 어렵게 되어, 먹고 살기가 어려워질 때 누구나 일족의 사물(私物)인 왕조(王朝)에 반기(反旗)를 들게 되어 전국 각지로부터 일족을 대신해서 천하국가를 손에 넣으려는 호족(豪族)이 나왔던 것을 볼 수 있다.
 
즉 역성혁명의 발생은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성혁명을 통해서 천하를 얻은 신왕조의 일족도 역시 전 왕조의 일족과 같이 천하국가를 사물화(私物化) 하기 때문에 역성혁명은 영원히 끝남이 없다. 지나는 지금도 혁명과 그에 따른 전란, 파괴의 역사를 반복해가는 나라라고 말하고들 있다.
 
지나는 왕조교체기마다 왜 수천만 인구격감 했나
 
필자 역시 지나의 역사를 연구하며 어찌해서 왕조교체기마다 수천만인구가 격감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면을 풀기위해 사서(史書)와 통계자료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로 전란의 혼란 때마다 정부군과 반란군과의 항쟁에 의해서 농업노동의 주역인 남자인구의 차출로 인해서 농토가 황폐해버려 대기근에 빠지게 된 것이 원인이었고, 그 위에 메뚜기 등의 곤충이 대거로 이동하면서 작물을 먹어 수확을 하지 못하자 식량 부족이 문제였다.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인한 장기간에 걸친 비가 내려 하천이 범람해 대홍수가 있게 되든가, 가뭄으로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로서 재해대책도 없기 때문에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인구가 기아와 재해로 사망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전란에 의해서 생명을 잃은 자의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규모로 확대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제강점기에서도 보듯 ‘대의사상(大義思想)’에 의해 신하로서 군주에 충성하는 것은 군신의 대의 앞에 자신은 없는 것으로 해서 군신의 명분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사상이 문제였다.
 
즉, ‘군주를 위해서 죽는 것도 미학(美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왕조교대기에는 궁정의 관료나 일반역원과 군대 병사에 이르기 까지 신왕조에 최후까지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지 않은 자는 철저하게 살육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예로 지나의 성(城)들은 거의가 성곽도시이기 때문에 침공군이 도시전체를 포위해서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해서 성곽 내에 돌입하면 구왕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서 일반시민도 살육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진왕(秦王)때도 조(趙) 나라의 군이 항복하자 그 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하는 살육은 오늘날까지도 비인간적인 사실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일은 세계역사 중 유독 지나에서 벌어진 살육으로 다른데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예컨대 유럽에서도 성곽도시 안에서 왕조의 흥망이 있었으나 유럽제국에서는 로마시대로 부터 20세기까지 왕조교체가 있어도 동일민족이던 타민족이던 지나와 같이 대량살육을 벌이지  않았다. 유럽역사에서도 민족이 다른 경우에 학살이 없는바 아니나 대개는 종교, 이데올로기가 다른 경우에 학살이 있었다.
 
글을 맺으며
 
세계 역사는 지나와 같이 고대부터 20세기와 오늘날까지도 비인도적인 음참(陰慘)한 역사가 반복된 것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모택동이 권력을 잡기위해 문화혁명 때나, 천안문사태 때, 일반시민을 살육한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들은 대의사상(大義思想)을 내세워 민중을 학살했는데 이는 공자(孔子)의 ‘춘추(春秋)’유교사상에 유래해 송(宋)시대에 주희(朱熹)에 의해서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서 완성한 것인데 이를 원용하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江戶時代)의 무가정치(武家政治)에 받아들여진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이 <대의명분론(大義名分論)>으로 수많은 인명을 죽게 한 것은 1919년 삼일운동(三一運動) 때나, 관동대지진때, 일본이 우리 동포를 대학살한 것을 직접 체험해서 그 잔인성을 직접보고 알고들 있다.
 
이러한 인간의 잔인성도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에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고 시대가 달라졌는데 지금도 이를 외면하는 나라들은 어떠한 나라인가 보면 거의가 19세기 이데올로기에 굳어져 있는 사회주의국가들이다.
 
이들은 한물간 이데올로기의 종이 되어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며 갖은 악행을 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19세기가 아닌 것을 제대로 보고 바로 잡아야하는데 아직도 이데올리기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가 모르고 있다. 이는 비극이다.
 
전후세계는 1945년 10월24일 창설된 세계적인 평화기구로서 국제연합(UN)이 창설 후 그 목적의 하나로서 국제협력을 들어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존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는 나라는 문명국이라 할 수 없는 야만국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인권이 국제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21세기이다.
 
그런데 지나는 아직도 국제질서를 무시하며 고대 역성혁명을 방불하게 하는 행태와 국제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의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은 음참(陰慘)한 시대와 같은 것으로 시대착오임을 알아야 한다. 방향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지나의 역사는 95%가 우리 역사임과 지나의 선조도 우리와 같은 선조로 우리와 형제임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지금 지나 역사는 허구역사이다. 조작하고 왜곡한다고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므로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以上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Hanada 잡지 2021, 4월호에 쓰고 있다. 月刊 Hanada 雜誌 2021, 4月號 p20~21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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