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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가 진정한 영웅인 까닭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10 09:11:24

 
▲박병헌 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올림픽 마라톤 최초의 2연패 신화
/목동 출신으로 풀코스 맨발로 완주
/사고로 두다리 잃었지만 좌절 안해
/장애인 올림픽 양궁에서도 금메달
/6‧25 참전용사로 한국과 인연 각별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게다. 그러나 50대 중반 이상에게는 잘 알려진 이름이다. 무수한 마라톤 선수 가운데 위대한 선수 단 한 명만을 꼽는다면 단연 비킬라 아베베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맨발의 아베베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발은 쓸쓸함과 슬픔의 표시다. 헐벗은 맨발은 곧 가난과 굶주림을 뜻한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인 아베베 역시 분명 헐벗고 쓸쓸했다.
 
맨발로 마라톤 결승선 통과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 15분 16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가 맨발로 결승 테이프를 끊는 장면은 영원한 이미지로 올림픽 역사에 남아 있다. 올림픽 금메달보다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맨발로 뛰어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의 성 비킬라보다는 이름인 아베베가 더 쉽게 와 닿아 '맨발의 아베베'로 불리게 됐다.
 
근래 들어 올림픽과 육상 세계선수권 대회 마라톤은 아프리카 선수들의 전유물이 되었지만 그 효시는 아베베였다. 이전까지는 마라톤 월계관의 주인공은 백인들의 차지였다.
 
마라톤 풀코스는 단순히 육상의 한 종목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종목이며, 마라톤을 뛰다 숨진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마라톤은 근대 올림픽이 부활한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줄곧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온 종목으로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 1만 명과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전투를 벌인 결과 아테네군은 격전 끝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도착해 수많은 시민들에게 "기뻐하라, 우리가 정복했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고,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거리가 42.195km라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 거리로 정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반면 당시 패전국이었던 페르시아, 오늘날의 이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하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에티오피아의 황제 친위대 하사관으로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한 아베베는 4년 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우승해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마라톤 2연패를 이룩하는 금자탑을 쌓은 주인공이 됐다. 에티오피아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특히 아베베는 도쿄올림픽 한 달 전에 맹장 수술을 받아 출전을 못할 상황에서도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출전을 강행해 금메달을 목에 걸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아베베의 우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에티오피아의 국가(國歌) 조차 준비하지 못해 대신 일본 국가를 연주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출퇴근하느라 매일 걸어서 80km
 
아베베는 올림픽 2연패를 했지만 제대로 마라톤을 배운 적이 없고, 제대로 된 코치를 만난 적도 없다. 목동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양과 낙타 등 가축을 기르면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20세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군인이 되어 황실 친위대에 근무했다. 집에서 근무지까지 약 40km를 매일 걷거나 조깅하는 차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이때 다져진 체력과 하체의 힘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성공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6‧25전쟁 때 에티오피아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등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 예정이었던 선수가 축구경기를 하다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대체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게 아베베였다. 로마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였을 때 하나뿐이었던 운동화가 낡아 신을 수 없게 되었고 스폰서였던 아디다스 측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아 운동화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자 아예 맨발로 달렸다. 100리길을 맨발로 달렸으니 고통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맨발이라는 악조건에서도 우승함으로써 '맨발의 왕자'라 불리며 일약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황제는 그를 3계급 특진시켰고, 황제를 상징하는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아베베는 도전의 화신이었다
 
아베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림픽 3연패를 위해 1968년 멕시코올림픽 마라톤에도 출전했으나 경기 도중 다리가 골절돼 17km지점에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한마디로 도전의 화신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동료였던 마모 웰데가 우승했다. 비록 아베베의 올림픽 3연패는 무산됐지만 에티오피아의 3연패가 이뤄진 셈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부와 명예를 이루게 된 아베베는 1969년 3월 자신의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몰던 중에 길을 건너가는 학생들을 피하려다 배수로에 빠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가 부러지고 척추뼈가 탈골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영국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에서 더 이상은 혼자서 걸을 수도 없는 장애자라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정작 맨발의 아베베를 스포츠 영웅으로 만든 것은 올림픽 2연패가 아니다. 오로지 마라톤 밖에 몰랐고, 마라톤이 인생의 전부이자 영예였던 그에게 두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았다. 아베베의 불운한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애통해 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베베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베베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아직 건강한 두 팔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두 다리를 못 써도 좌절하지 않고 눈물어린 재활을 거쳐 휠체어에 앉아 두 팔로 할 수 있는 양궁, 탁구, 눈썰매에 매달렸다. 그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장애인 양궁대회에 출전해 9위에 오르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났다. 1970년엔 노르웨이에서 열린 25㎞ 휠체어 눈썰매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그는 노르웨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양궁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두 곳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지금까지 아베베가 유일하다.
 
전 세계가 진한 감동을 받고 환호
 
세계가 그에게 진정한 영웅의 칭호를 부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전 세계는 아베베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았고, 그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 '올림픽 영웅'으로 초대되었던 아베베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더는 극복하지 못하고 1973년 9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들의 삶은 지난 1년 반 동안 코로나19의 병마에 시달리고 지쳐있다. 그렇지만 희망과 용기를 버려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게 아베베의 신념이었다. 그의 신념이 더욱 의미 있게 와 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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