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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청주 한씨의 고향 상당(上黨)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상당은 산서성 동남부에 위치…한반도 서남부 지명비정은 오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09 17:11:22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기자의 41대손으로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기준(箕準)이 반란을 일으킨 위만에게 패한 이후의 행적에 대해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열전에 “좌우 궁인 수천 명을 거느리고 해로 들어가(走入海) 마한을 공격해 깨고 한지(韓地)에 살며 스스로 한왕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海와 韓地, 즉 한의 땅은 어디였을까.
 
한지에 대해서는 “문헌으로 보거나 현지조사를 실시해보거나 또 고고학의 유물분포로 보아 익산·금마 일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주석이 붙어있다. 즉 기준 왕이 기자조선의 도읍지인 평양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통해 한반도 남부에 있던 삼한 땅으로 내려가 살았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삼국지』위서 동이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海를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接境)하니, 면적이 사방 4000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첫째가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세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은 옛 진국(辰國)이다.”
 
‘한은 왜와 접경하고 사방 4천리’ 기록을 한지에 붙어있는 위 주석에 대입하면 뭔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다. 한반도의 서남부 익산·금마 일대는 왜와 육지로 경계를 접하지 않으며 크기가 사방 4000리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사학계의 지명비정이 잘못인 것일까.
 
청주 한씨의 원래 고향은 어디인가
 
인구 약 80만명의 청주 한씨는 대한민국에서 본관별 성씨로 약 10~11번째의 큰 성씨로 충북 청주시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 한씨의 본관도 여러 곳이 있으나 한씨의 거의 대다수가 청주 한씨다.
 
▲ 식민사학과 왕검성만 다르게 잘못 설정된 재야사학의 기준 도주로. [사진=필자 제공]
 
한씨의 실제 시조는 기자로부터 시작되나 학계에서 기자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데다가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다는 이유로 족보상으로는 고려의 개국공신이었던 한란(韓蘭)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마한의 9대 말왕 원왕(元王)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태원 선우(鮮于)씨와 행주 기(奇)씨와 상당 한씨로 나뉘게 된다. 셋째아들 우양(友諒)이 상당 한씨로 바꾸었고 그의 32대손이 한란이라고 한다.
 
한란이 활동하던 지역명이 백제 때 상당(上黨)이라 불렸기에 원래는 상당 한씨였다가 나중에 지명이 청주로 바뀌는 바람에 청주 한씨가 됐다는 것이다.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란의 주역 한명회(韓明澮)의 군호가 상당군(上黨君)이었던 이유는 상당이 한씨를 상징하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상당은 한란이 최초로 살던 곳이 아니라 위만에게 패해 한지(韓地)로 가서 마한을 깨고 한을 세운 기준 왕이 도망가서 정착한 곳이 바로 상당(上黨)이었던 것이다.
 
『한서』지리지에서 병주(并州)에 속하는 상당군의 치소는 장자현이다. 설명 문구에 청장(清漳)수와 탁장(濁漳)수와 심(沁)수가 나오는 곳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산서성 동남부에 있는 지금의 장치시 부근이다.
 
上黨郡(상당군),秦置,屬并州(병주)。有上黨關、壺口關、石研關、天井關。戶七萬三千七百九十八,口三十三萬七千七百六十六。縣十四:長子(장자),周史辛甲所封。鹿谷山,濁漳(탁장)水所出,東至鄴入清漳。屯留(둔유),桑欽言「絳水出西南,東入海」。余吾,銅鞮,有上虒亭,下虒聚。沾,大黽谷,清漳(청장)水所出,東北至邑成入大河,過郡五,行千六百八十里,兾州川。應劭曰:「沾水出壺關。」 涅氏,涅水也。師古曰:「涅水出焉,故以名縣也。」 襄垣。壺關,有羊腸版。沾水東至朝歌入淇。應劭曰:「黎侯國也,今黎亭是。」 泫氏,楊谷,絕水所出,南至野王入沁。應劭曰:「山海經泫水所出者也。」 高都,莞谷,丹水所出,東南入泫水。有天井關。潞(로),故潞子國。陭氏。陽阿,穀遠。羊頭山丗靡谷,沁(심)水所出,東南至滎陽入河,過郡三,行九百七十里。師古曰:「今沁水至懷州武陟縣界入河。此云至滎陽,疑傳寫錯誤。」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전국시기에 한지였는데 하늘과 닿을 정도로 매우 높아 상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시대 별로 치소가 달라졌지만 대부분 산서성 장치현 부근이었다가 송나라 때 폐지됐다고 한다.
 
▲ 기준의 도주로를 잘못 해석하면 삼한 땅이 한반도로 이동된다. [사진=필자 제공]
 
上党郡(상당군) 战国韩地(전국시기 한의 땅),秦并天下,置上党郡,其地有今山西之东南部,以其地极高,与天为党,故名。汉治长子,在今山西长子县西,后汉末董卓作乱,治壶关城。在今山西长治县东南,晋治潞。在今山西长治县东南,晋治潞。在今山西潞城县东北,燕慕容备移治安民城。在今山西襄坦县东北,后迁壶关城,卽汉末旧治也,后魏治安民,复迁壶关,北周于郡置潞州,隋置上党县为郡治,卽今山西长治县治,宋时郡废。(이하생략)
 
즉 기준 왕이 기자조선의 도읍지인 평양 또는 난하 부근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통해 한반도 남부로 내려가 살았다는 강단·재야사학계의 해석은 삼한 땅이 한반도로 이동되는 반도사관에 입각해 잘못 해석된 것이다. 원래 상당은 바로 산서성 동남부에 있는 지금의 장치시 장자현이었던 셈이다.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이 태조 왕건을 상당에서 도와 개국공신이 됐다고 한다. 아마도 그 상당은 한반도가 아니라 산서성 동남부일 것이다. 한란의 후손 중 누군가가 한반도(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지역)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그 땅을 한씨의 상징인 상당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한씨 집성촌이 형성되고 자손이 번창한 것으로 해석돼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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