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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왕검성 포위했던 한나라에 성문 열어준 번조선의 대신들

한나라, 전쟁 역전 후 번조선 도성 포위…대신들이 나라 넘겨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7-28 17:30:29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좌장군 순체가 지휘하는 육군과 누선장군 양복의 수군이 모두 연전연패해 전세가 불리해지자 한 무제는 사신 위산을 우거에게 보내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그런데 상황은 되레 더 악화됐고 한 무제는 위산에게 상황을 잘못 판단해 처리했다는 죄를 물어 죽였다.
 
시중(侍中) 출신으로 한 무제의 총애를 받는 좌장군 순체는 첫 전투에서 대패하고 패수서군(浿水西軍)과의 전투에서도 패했다. 위산의 외교작전이 실패하자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격파하고 왕검성의 서북쪽을 포위했다. 비록 부분전투였지만 한나라가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이긴 전투였다.
 
좌장군 휘하 군사들은 연(燕)과 대(代) 지방 출신들이라 무척 용감했는데 승세를 타자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당시 연(燕)나라가 지금의 북경 일대며 대군(代郡)은 산서성 대동시 일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이다.
 
패수서군과 패수상군은 같은 군대를 말하는 것이다. 패수의 상류에 있던 군대를 서군이라 명명해 적은 이유는 패수가 서쪽(상류)에서 동쪽(하류)으로 흐르는 물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민강단사학계가 비정한 패수는 물의 방향이 『사기』 조선열전과 정반대인 동쪽에서 서류하는 청천강이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좌장군이 진격해 왕검성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하자 누선장군의 수군이 합세해 왕검성의 남쪽에 주둔했다. 그러나 포위된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지나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대치상태가 몇 달 걸렸으므로 9개월 만에 끝난 일명 한사군 전쟁에서 사신 위산의 장안→패수→장안 루트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 전쟁의 전체 스토리가 성립될 수가 없다. 즉 패수는 재야사학의 난하나 강단사학의 청천강처럼 장안에서 멀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제(齊) 출신 병사들을 이끌고 해(海)로 출병했던 누선장군 양복은 이미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해 군사들을 많이 잃었다. 앞선 전투에서도 패해 치욕을 맞본 군사들 모두가 우거를 두려워했으며 선장군은 수치스러운 마음에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평화를 유지했다.”
 
즉 운이 좋아 왕검성을 포위하긴 했지만 우거군의 역공이 두려운 나머지 대치상태에선 더 이상 전투를 하지 않고 휴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좌장군의 군사들은 첫 승리에 교만해졌고 누선장군의 군사들이 상대를 두려워했다는 문구는 이 전쟁에서 한나라가 이기지 못한 핑계를 표현한 것이다.
 
▲ 번조선의 왕검성으로 추정되는 중국 하남성 제원시의 모습. [사진=필자 제공]
 
“좌장군이 맹렬하게 왕검성을 공격하니 번조선의 대신들은 누선장군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사적으로 항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좌장군은 누선장군에게 여러 차례 합동작전의 시기를 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누선은 번조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에 응하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번조선이 항복해오기를 탐문했지만 번조선은 좌장군보다 누선장군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두 장군은 서로를 반목(反目)하게 됐다. 좌장군은 마음속으로 ‘누선은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데도 지금은 조선과 사사로이 잘 지내고 있으며 조선 또한 항복하지 않고 있으니 무슨 반계(反計)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의심했지만 함부로 발설하지는 못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쟁은 허망하게 끝났다. 도성이 한나라군에게 장기간 포위당하자 나라가 망할 걸로 판단한 일부 대신들은 제 살길을 위해 항복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역사기록상 최초의 ‘매국노’라 할 법한 번조선의 대신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들의 나라를 넘기게 됐을까.
 
왕검성을 포위하고 있던 한나라 역시 육군과 수군의 두 지휘관 사이에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반목은 결국 자중지난(自中之亂)을 일으키게 되는데 어떤 사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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