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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예술과 인생
해방 76년 분단 76년 우리가 할일은 무엇인가
우리 손으로 우리를 만들어 보자
김수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8-18 18:35:14
▲ 김수영 서양화가·수필가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그 흐름을 우리가 만들어야지 외세에 의해 만들어 지고 외세에 의해 폭침이 되는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자.
 
1592년 선조는 왜군이 부산 동래성에 도착하여 불과 며칠 만에 한양이 위태로워지자 가난하고 순박한 백성들과 찬란한 경복궁을 버리고 평안도 의주도 도망을 가고 말았다. 일국의 왕으로 하지 못할 치욕스러움과 수모를 당한 것이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의 ‘홍타이지’ 앞에서 그 치욕스러운 삼배구고두례(三排九叩頭禮)를 하고 조선 500년 역사에 최대의 굴욕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외침은 무려 1천번의 엄청난 수난이 있었지만, 주변 강대국의 틈새에 끼어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의 피를 이어 온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고 의지와 끈기의 한민족이 아닐 수 없다.
 
구한말 고종은 어떠했는가? 일찍이 서구 문물을 받아 침략의 칼날을 갈면서 서구제국들의 침략전술과 점령지 확산에 눈이 어두운 것을 일본이 “나도 하자” 라는 생각에 조선을 집어 삼키려 찍어 누를 때, 대한제국의 고종은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해 보고 만국 평화회의에 비밀 특사를 보내고 몸부림 쳤지만, 조선의 국왕 소위 대한제국이란 거창한 이름답지 않게 조선민족 2000만을 일본의 손아귀에 너무도 무력하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35년 동안 이 땅을 “게다짝”으로 짓밟아 버리게 하며 자신의 아들을 적국의 군대로 만들었으며, 원치 않게 적국의 여자를 며느리로 삼았고, 백성들을 조상대대로 이어 오던 족보와 호적을 버리게 하며 강제로 일본이름으로 개명을 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심지어 조선의 여인들을 일본의 성 노리개로 전락시킨 조선민족 굴욕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었다.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무섭고 놀라운 원폭이 투하되어 일본 왕 ‘히로히토’가 2차 대전의 종전을 선언하면서 미국에 항복을 했다.
 
1945년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선언에 의해, 이것도 미국, 중국, 소련과 같은 대국들이 만들어서 일본의 패망과 한국 독립을 결정한 것이 이 나라 대한민국의 탄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3.8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장악하여 일본군 25만 조선주둔군을 내쫒고 무장해제 시키면서 3년간 나라를 대신 장악하고 그 뒤 한국인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조건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독립군이 충칭에서 마지막 훈련을 할 때 겨우 640명이 결성되었었는데 주한 일본군은 무려 25만명이 중무장 한 채 삼천리금수강산에 게다짝을 끌고 기모노를 휘날리며 주둔하여 우리 민족의 목에 무기를 대고 있었으니 기가 막힌다.
 
힘이 없고, 능력도 없고, 발언권도 없으며 “대동아공영권”에 허수아비 박수를 치면서 그저 바라만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우리민족은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공산군의 침략으로 모든 조선 땅이 불바다가 되었다. 이 또한 소련의 북한 지원으로 이루어졌고 중공인민군의 침공으로 통일을 눈앞에 두고 다시 1.4 후퇴를 하는 대하드라마 같은 비극에다 피눈물 나는 민족의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제 해방 76년, 분단 76년의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다시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이란 남쪽과 우리가 인정하지는 않지만 북의 “조선 인민민주주의”가 76년 동안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티격태격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천하가 놀라는 성공을 했다. 국민소득 65달러에서 35000달러로 아프리카 보다 못 살던 나라에서 세계 8대강국으로 도약했으며, 유엔에서 “선진국”이란 과도한 호칭을 불러 주는 감동의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거기에 이 나라를 침략하여 일제 강압기 35년 동안 조선을 개방시켜주었다는 악어의 눈물을 보이는 일본을 추월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 제조업 경쟁력이 현재 일본보다 앞서는 세계 3위이며 일본은 5위,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한국은 44.621달러이며 일본은 42.748달러로 일본을 추월했다. 세계 가전시장 한국 상위권, K-POP 세계 최상위, 아카데미상 수상, 세계 문화강국 등 눈으로 확인할수록 놀랍고 대단한 대한민국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북쪽은 어떠한가? 같은 세월 76년 동안 살아 왔는데 그들의 국민소득은 아직도 “이 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싶어”하지만 아직도 굶고 사는 사람이 넘치고 “고난의 행군”에는 300만명이 아사하는 비극을 이어가는 수모와 굴욕의 땅으로 변해 있다.
 
그들은 아직도 스텔스기 반대를 외치게 2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간첩을 양성하며 남북전화선을 잇는 척하더니 불과 보름 만에 끊어 버리고 남북한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무례함과 악독함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항상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행동을 보이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무엇이 캥겨서인지 그들의 한마디에 벌벌 떨면서 그들의 말이 옳다면서 76명의 여당국회의원이 북한의 지령에 박수를 보내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국가의 존립은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국가 운영이 기본 일 텐데 북의 위정자들은 아직도 국민들의 배를 불리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살며 오직 최고지도자와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며 옥죄어 가는지 우리는 이해가 안 된다.
 
우리의 옛 선조들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을 살펴보자, 왕건이 나라를 난폭하게 다스린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고려는 신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후백제와는 잦은 싸움을 벌였다. 935년 왕위 계승 문제로 맏아들 신검에게 쫓겨난 ‘견훤’이 고려에 투항하였고, 신라 경순왕도 스스로 항복하였다. 고려는 936년 일리 천(오늘날의 구미) 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에 승리하며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리고 포용정책을 펼치며 민족 단합에 매진하였으며 그는 무려 27명의 아내를 두었다. 그 아내들은 모두가 점령한 나라 백제와 신라의 왕손 공주나 왕족이었으니 이 또한 포용과 융합을 위한 혼약이었다.
 
오늘날 북의 지도자가 백제의 견휜과 신라의 경순왕처럼 어느 날 아름다운 항복을 선언하고 자유민주주의로 흡수 통일을 하면 우리민족의 무한한 영광이며 가장 큰 역사의 획이겠지만 이 또한 불가능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는 그리 절망으로 종지부를 찍어서는 안 되고 줄기찬 백의민족 한민족의 거대한 족적을 일순간 원자폭탄으로 종말을 가져서도 안 된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우리 조상님들은 그런 종말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며 그런 종말을 하고 나라가 사라진다면 5000년 이 땅에서 살다 가신 모든 조상님들에게 영원히 검은 눈물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끼리라도 작게, 그리고 은근하게, 평화롭게 서로 만져주고 끌어안고 포용하며 서로 다가서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북의 철통같은 통치라 하더라도 어느 날 빈틈이 보이며, 어느 날 그 옛날 ‘서희’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 함께 손잡고 같이 춤을 추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해, 그 순간을 위해 우리 모두 인내하며 노력하며 기도합시다. 세계 8대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여, 이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내는 위대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 꼭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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