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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한사군전쟁에서 참패를 시인한 한무제·사마천·반고
한무제, 한사군전쟁 지휘했던 최고지휘관에게 극형 내려
낙랑·현토·임둔·진번 식민지 한사군 설치는 왜곡된 역사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9-08 11:18:17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일명 한사군전쟁을 총지휘했던 육군사령관 좌장군(순체)은 도성(장안)으로 돌아가자마자 저잣거리에서 공개 참수된 후 시신이 전시되는 기시(棄市)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부호였던 수군사령관 누선장군(양복)은 재물을 내고 목숨을 건졌지만 서인(庶人)으로 강등됐다.
 
한무제가 참전했던 두 최고지휘관에게 극형을 내렸다는 의미는 전쟁에서 한나라가 참패했음을 시인한 것과 다름없다. 아래 『사기』조선열전의 마지막 찬자평 역시 한나라가 졌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한서』 기록처럼 낙랑·현토·임둔·진번의 식민지 한사군이 설치될 수 있었을까.
 
“태사공(太史公=사마천)은 말한다. 우거는 험고함을 믿다가 나라의 사직을 잃었다. 섭하는 공적을 속이다가 전쟁의 발단을 만들었다. 누선은 장수의 그릇이 좁아 수난을 당하고 (죽을)죄에 걸렸으며 번우에서의 실패를 후회하다가 도리어 의심을 받았다. 순체는 공을 세우려다가 공손수와 함께 주살됐다. 결국 양군이 함께 치욕을 당하고 장수로서 제후가 된 자가 없었다.(兩軍俱辱, 將率莫侯矣.)”
 
함께 치욕을 당한 양군은 바로 좌장군이 지휘했던 육군과 누선장군의 수군을 말하며 그 의미인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직접적인 문구보다는 ‘장수로서 제후로 봉해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완곡한 표현을 썼다. 전쟁 후 장수가 논공행상도 없이 바로 처형됐다는 것은 참패를 의미한다.
 
이처럼 『사기』조선열전은 전쟁에서 참패했음을 솔직히 시인했지만 『한서』의 찬자평은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고사를 인용해 우거에게는 전쟁보다는 예(禮)로 대해야 했고 덕(德)으로 회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아쉬워했다.
 
▲ [표=필자 제공]
 
“(생략) 세 지방의 개척은 모두 일 좋아하는 신하로부터 시작됐는데 조선은 섭하(涉何)에 의해 시작됐다. 전성기를 만나 출동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나 너무나 수고스러웠다. 태종이 위타(尉佗)를 진무(鎭撫)한 옛 일을 보면 옛 사람의 이른바 ‘예로써 초치(招致)하며 덕으로써 먼 곳의 사람을 회유(懷柔)함’이 아니겠는가.”
 
위 반고의 찬자평은 뭘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세력이 강한 우거를 억지로 무력으로 무너뜨리려다보니 한나라도 피해가 큰데다가 이후 번조선 백성들 대부분이 민족의 새 영웅으로 떠오른 의병장 고두막한에게 합류하는 바람에 결국은 중국인이 통치하던 번조선 땅만 잃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즉 북부여에게 적대적이었던 우거 정권을 없애기보다는 한나라 편이 되도록 회유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그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결국 이 말 역시 전쟁에서 한나라가 졌다는 말로 해석된다. 낙랑·현토·임둔·진번의 식민지 한사군 설치는 어불성설인 셈이다.
 
아울러 400년 한반도 한사군은 식민사학의 역사왜곡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셈이기도 하다. 『사기』와 『한서』에도 5명의 조선대신을 제후로 봉한 지명은 홰청·추저·평주·기·온양이지 낙랑·현토·임둔·진번이 아니다. 또 지리지 어디에도 임둔군과 진번군은 없다. 당시 낙랑·현토군 역시 없었던 지명들이다.
 
 
훗날 홰청·추저·평주·기·온양 지명이 후한 때 『한서』지리지가 출간되면서 낙랑·현토로 바뀌었을 개연성은 있지만 한나라에게 항복한 5명 조선인 제후들조차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기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 패수는 하내군(북부 하남성)과 무척 가깝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도표. [표=필자 제공]
 
그 이유는 소수의 의병으로 시작한 고두막한이 22년 만인 B.C 86년에 북부여의 5세 단군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단시간에 그만한 세력이 됐다는 것은 번조선의 유민들이 모두 합세해 한구(漢寇)들에게 연전연승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또 이때는 『한서』지리지가 출간되기 전이라 낙랑·현토라는 지명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설사 한사군이 설치돼 존재했다 치더라도 그 위치는 산서성 남부 또는 북부 하남성 일대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주 무대인 패수는 하남성 제원(濟源)시를 지나는 물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패수는 『한서』지리지에서 유주(幽州)의 낙랑(樂浪)군에 속하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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