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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18>

숙신씨(肅愼氏) 예맥조선 낙랑조선역사 숨겼다

지나(支那)와 일본이 왜곡한 역사 우리들이 바로 세워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11 12:45:28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현재 우리나라가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종잡을 수 없으리만큼 우리 사서나 지나(支那)의 25사에 나오는 동이(東夷)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지나의 고서(古書)중에 가장 많이 읽는 사서(史書)로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25사를 말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연구는 미흡한 것이 솔직한 우리 학계의 실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 연구하는 학자를 일본과 비교해 봐도 우리는 몇 십 명의 두 자리 수인데 비해 일본은 수십 만 명이다. 우리나라 학계는 수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연구는 뒷전으로 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동서양의 외국학자들도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우리보다 더 연구해서 발표하고 있는데 비해 정작 우리학계는 우리 역사와 동양 3국의 역사도 제대로 연구한 학자는 소수로서 깊이 연구를 하는 학자는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상고사는 물론 고대사 체계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민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기록한 지나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등 지나 18사와 25사 내용도 깊이 연구한 학자가 많지 않다.
 
예컨데, 삼국지(三國志)는 동이유숙신(東夷有肅愼)이라 기록하고 있다. 즉 숙신씨를 동이족이라 기록했다(三國志 卷三十 東夷). 또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숙신래헌노고시(肅愼來獻石砮楛矢)라 했다. 이렇게 숙신씨를 동이라 기록했음에도 우리 역사체계에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또한 진서(晋書)에도 숙신씨를 동이전(東夷傳)에 기록했다(晋書 卷九十七, 列傳, 第六十七 四夷). 이상의 기록을 보면 숙신씨는 분명히 동이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는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오늘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에 나온 고대국가(古代國家)들 중 숙신(肅愼)과 예맥(銳麥;濊貊), 낙랑국(樂浪國)과 광개토태왕 때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와 왜(倭)가 대륙에 있었음을 지나의 여러 사서(史書)와 우리나라 사서(史書) 삼국(三國史)에 나온 것을 근거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고대 우리나라 국가들의 면모는 어떠했나
 
진서각주(晋書斠注)에 보면 동이가 백여국으로 분립했다고 하고 있다.(晋書 卷九十七, 列傳, 第六十七, 四夷), 이는 우리 민족이 여러 부족으로 분파, 분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이족중(東夷族中) 4300년 전에 지나 문헌에 나타난 것은 오직 숙신씨뿐이다.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에 [근세 인류학자가 동북민족은 다 숙신(肅愼)에서나왔다]고 했다.(渤海國志長編 卷十六 族俗考 第三).
 
이는 동이족의 시조가 숙신씨라고 가리킨 것이라고 고(故) 최인(崔仁)선생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숙신씨에서 분파된 동이족 중, 숙신씨의 정통을 계승한 자가 바로 한민족(韓民族)이라 하고 있다.
 
흑룡강지고(黑龍江志稿)에 [尙書傳 貊海東夷(肅愼之命, 傳原文作貌 釋文作貊)]이라 했다.(黑龍江志稿 卷一 地理志) 즉, 예맥은 동이의 해상에 있다. 숙신지명(肅愼之命)의 원문(原文)에 모(貌)로 기록했는데 전문(篆文) 초문(草文)에 해석하는 석문(釋文)에 맥(貊)이라 풀이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숙신을 맥(貊)이라 풀이했다는 뜻이다. 즉 숙신이 예맥이요 예맥이 숙신이라 가리키는 것이다. 또 서전(書傳) 여오장(旅獒章) 주(注)에 주무왕(周武王) 당시에 숙신씨 화살을 수입했다고 하고, 동서(同書) 무성편(武成篇)에 주무왕(周武王) 당시 예맥(銳麥;濊貊)이 한족(漢族)과 병칭(竝稱)되어 있다.
 
숙신씨는 동이족의 시조(始祖)요, 예맥은 동이족의 주체로서 동이족의 시조와 동이족의 주체가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은 숙신(肅愼)이 예맥(銳麥;濊貊)이요 예맥이 숙신이라는 사실을 더욱 긍정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숙신씨와 그 지류(支流)가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에 합병되어 완전히 한민족(韓民族)으로 성장했다. 후한서 동이전에 숙신씨의 분파인 읍루(挹婁)가 한(漢)나라가 흥(興)한 후 부여(夫餘)에 합병됐다.
 
진서각주에 고구려가 더욱 강성해 숙신(肅愼), 읍루를 합병했다고 하고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 할 때에 그 이십사군(二十四軍) 우익(右翼)에 숙신도(肅愼道)가 있는 것을 보면 숙신이 고구려에 합병 된지 오래다 하고, 송서(宋書)에 고구려가 숙신씨의 고시(고(楛矢), 석족(石鏃)을 지나에 수출했다고 하고 있는데 앞뒤가 안 맞는 점은 유의할 점이다.
 
숙신씨(肅愼氏)에 대한 왜곡도 바로 해야 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태조8년12월조(條)에 대조영(大祚榮)이 발해를 건설하고 숙신을 합병했다고 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함경도가 서기680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 제후국인 낙랑국의 영지(領地)이었다.
 
그런데 함남(咸南) 북청군 토성리(土城里)에 숙신씨의 고도(古都)라는 기념관이 있는데 그 명칭이 청해관(靑海館)이오 고려말기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숙신유민(肅愼遺民), 차일방(此一方)이라는 시(詩)가 게시(揭示)되어 있다.
 
즉 정몽주가 이곳은 숙신씨의 살던 곳이라는 시(詩)를 읊은 것 같이 했다. 이 기념관은 오늘도 되어있는데 숙신씨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는 기록을 입증한다고 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역사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진서각주(晋書斠注)에 숙신씨(肅愼氏)의 일명(一名)이 읍루(挹婁)요, 백두산(白頭山)에 거주한다고 했는데 이는 모두가 허구로 조작인 것이다.
 
숙신씨는 소위 지나의 하(夏), 은(殷), 주(周) 삼대(三代) 이전에 지나와 동떨어진 동북지대에 대국(大國)을 건설해 지금 길림성(吉林省) 동쪽 모든 지방을 전부 차지한 강대한 대국이었던 것이다.
 
한(漢)나라 시대에 읍루가 옛날 숙신씨의 영토에 진출(進出)했으나 읍루의 본부는 숙신씨의 서쪽에 있다. 고구려가 망한 후에 대조영(大祚榮)이 읍루의 동모산(東牟山), 옥루하(玉婁河)를 점거한 후, 옥루하(玉婁河)가 읍루로 전음(轉音)됐다.
 
즉 읍루라는 명칭은 옥루하(玉婁河)라는 명칭의 변화이다. 그런데 이를 숙신씨의 일명(一名)이 읍루라 함은 그릇된 조작인 것이다. 숙신씨는 순(舜), 하후씨(夏后氏)시대부터 저명한 국가이었던 것이다.
 
읍루의 명칭은 후한서에 처음 보이고 있는데 문화가 발달되지 못해 군주(君主)의 제도가 없고 부락마다 추장(酋長)있었다. 읍루는 숙신씨 영역에 속한 한 부족으로 국가 제도를 갖추지 못한 부족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읍루 인구가 번식해 각지에 분포되고 숙신씨는 점차 쇠퇴해 읍루를 견제치 못하자 읍루가 숙신씨의 영토에 진출했다. 이같은 유래를 모르고 숙신씨의 일명(一名)이 읍루라 함은 큰 오류이다. (숙신씨, 하후씨의 씨(氏)는 임금을 뜻한다.)
 
글을 맺으며
 
위에서 보듯 진서(晋書)에 숙신씨의 일명(一名)이 읍루라 기록한 것은 조작으로 잘못된 것이다. 숙신씨는 4300여 년 전에 저명한 문화대국이나 읍루는 후한시대에 비로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문화가 발달되지 못한 미개한 민족인 것으로 숙신과 대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동이계에는 문화계와 야만계가 있다. 숙신씨, 고죽국, 부여(夫餘), 고구려가 문화계로 회남자(淮南子)에 숙신씨는 존경할 민족이며, 특이한 민족이라 했다. 이는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숙신씨는 4300여 년 전에 이미 지나에 궁시(弓矢)를 수출하는 강대한 대국이었고 문화대국을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맥조선 또한 3000년 전에 강대한 예맥조선을 건설하고 동주시대부터 1000년 간, 대륙을 정벌 정복해 지배한 강국이었다. 그런데 이 예맥조선을 역사에서 빼놓고 있다.
 
또한 3000년 전에 있는 나라는 고죽국(孤竹國) 역시 문화가 고도로 발전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같은 군자(君子)가 출생했다. 수서(隨書)에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이라 했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숙신씨의 문화를 계승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부여 역시 2000여 년 전에 문화국을 건설했는데 이 또한 부여가 고죽국의 문화를 계승했다고 하고 있다. 삼국지 부여전에 부여는 조두(俎豆)를 사용하고 배작(拜爵), 세작(洗爵), 읍양(揖讓)의 예의가 있다고 했다. (晋書斠注 卷九十七 列傳六十七 四夷)
 
이는 문화가 고도로 발전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고죽국, 부여, 고구려가 숙신씨 정통을 계승한 것이었는데 야만계(野蠻系)는 읍루를 비롯해서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 등으로 이들은 숙신씨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타민족을 침략하고 추월(秋月)에 독약(毒藥), 전시(傳矢)를 만들어 짐승을 학살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오줌으로 얼굴을 씻는 추악한 생활을 했다고 하고 있다. (以上은 崔仁 韓國學講義 32面~41面 參照, 本文引用했음)
 
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역사는 예맥조선(銳貊;濊貊)조선과, 낙랑국(樂浪國)이 배제(排除)되어 있는데 이는 지나와 일본만을 탓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재정립해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를 앎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와 변질된 가치관을 되찾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好太王碑の謎’.」, 井上 淸,‘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의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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