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이자 작가 장 폴 사르트르와 샹송 가수 겸 배우 이브 몽탕,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는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공통점이 있다. 셋 다 공산주의자들이다. 이브 몽탕은 부자(父子) 공산당원으로 유명하고, 사르트르는 6·25 전쟁을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의 북침’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 인물이다.
6·25 전쟁에 대한 시각차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마저 거리를 둔 사르트르를 한국의 지성계가 추종하는 건 아이러니다. 더 큰 문제는 1944년 10월 프랑스 공산당 입당 이후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한 피카소에 대한 무지와 오도된 추종이다. 스페인 출신인 그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피카소는 공산당 기관지와 인터뷰에서 “공산당 입당은 나의 논리적 귀결이다. 나는 진정한 혁명가로서 그림을 위해 항상 투쟁해 왔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산당을 찾았다.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내 그림은 공산주의 그림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은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한 게 아니다.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의 전쟁 도구다”라는 발언은 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피카소는 공산당에 거액을 기부했고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필요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1949년 1월 공산당이 파리세계평화회의 포스터를 의뢰하자 ‘비둘기’ 그림을 선뜻 내줬다. 그 후 비둘기는 공산주의자들의 평화공세에 악용되었다. 6·25 정전 회담장에도 북한 공산군이 그의 비둘기 그림을 가지고 나와 유엔군 사령관이 회담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소련은 그에게 1950년 스탈린평화상을, 1962년 레닌평화상을 수여했고 1971년엔 90살 기념우표까지 헌증했다. 미국은 그의 입국을 불허했다.
1969년 6월 피카소 크레파스·피카소 포스터칼라 등 미술용품 제조업체 사장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일이 있다. 상표 이름에 ‘피카소’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TV 쇼 프로그램에선 ‘피카소’를 칭찬한 코미디언과 제작자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피카소가 6·25 전쟁을 왜곡하고, 북한과 함께 공동 전범국인 소련·중국에 굴종과 협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1950년 연말 한국전에 참전한다. 물론 총을 든 것은 아니다. 붓과 물감으로 북한과 국제공산당 편에서 한반도 공산화를 막기 위해 참전한 미군을 공격했다. 북한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의 부탁을 받은 국제공산당이 그에게 ‘반미(反美) 선전용 작품’을 주문했고,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이듬해 1월 완성한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0년 10월 13일부터 52일 간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량 학살을 모티프로 삼았다. 북한은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와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383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피카소는 북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통해 북한과 국제공산당은 신천사건을 미군이 저질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건 물론이다. 지금도 유럽의 미술관 큐레이터와 가이드들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1958년 3월 김일성 지시로 ‘미제신천양민학살박물관’을 지어 반미운동의 메카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친북 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81년 6·25 남침 유도설을 담은 ‘한국전쟁의 기원’을 펴내며 이 그림을 표지에 넣었다. 이어 북측 설명만 듣고 와 1998년 ‘월간 말’에 ‘신천박물관참관기’를 쓴 원광대 이재봉 교수와 김일성 생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썼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에 의해 국내에 왜곡돼 소개됐다.
하지만 북한의 주장은 100% 거짓이다. 국군과 유엔군이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자 퇴각하던 인민군이 민족계열 인사 수백명을 살해하자 13일 공산 치하에 숨어 살던 반공청년들이 의거를 일으켰다. 그 후 국군의 북진과 중공군 참전으로 1.4 후퇴 등 밀고 밀리는 공방전 끝에 5번이나 점령자가 바뀌면서 벌어진 좌우익 주민들 간의 쌍방 살육전이 신천사건이다. 미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결국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허위사실에 바탕 한 공산당의 전형적인 선전·선동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예술의전당에 수개월간 버젓이 전시하며 ‘작품 발표 7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기념비적인 작품’ ‘피카소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과 인류애를 엿볼 수 있는 반전 그림의 대표작’이라는 감상평이 나돌고 있다. 앞서 2011년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우리를 적이라고 칭하며 전쟁 도구로 그렸다는 피카소의 이 그림이 게재됐다. 이게 공산국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6·25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종전선언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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