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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 엄윤 서울항외과 원장
“의사들을 ‘공공재’취급… 필수의료 위기 부르죠”
붕괴 직전 ‘필수의료계’ 쓴소리 앞장선 외과전문의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4-09 00:05:24
 
▲저수가, CCTV법, 의료소송 등 갈수록 열악해져가는 의료 환경에 대해 직언직필한 글을 페이스북에 연재하며 주목을 받은 엄윤 서울항외과원장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서 ‘하지마라 외과의사1·2’를 발간했다. [사진=이종원 대기자] ©스카이데일리
 
 
“예산 100조원을 가지고 ‘필수의료 살리자’면서 의료계에 더 주자고 하면 ‘차라리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나눠줘라’면서 시위할 사람이 많아요. 필수의료계 붕괴 문제는 예정된 수순이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죠. 국민이 ‘의사는 부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보험료 내고 치료비 내는 데 인색하고 의료계 편에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면,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는 필수의료과는 현재의 벼랑 끝에서 조만간 진짜 벼랑 아래로 떨어질 거예요.”
 
개원의 의료계의 현실을 담아 회의적인 제목의 책 ‘하지마라 외과의사 1·2’를 발간한 외과 전문의 엄윤 서울항외과의 원장은 의료 현장을 지키는 당사자의 눈으로 의료계 현실을 직시해왔다. SNS에서 소문난 논객으로 정평이 난 엄 원장을 인천 송도에 위치한 서울항외과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 원장은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외과를 수료한 후 공중보건의와 서울의 한 종합병원 외과 과장을 거쳐 현재는 외과개원의로 항문외과·복강경외과·내시경전문의로 활동하며 20년 넘게 외과전문의로 활약 중이다. 칼에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이 외과의라는 소명감으로 살아왔다는 그가 “제발, 제발 하지 마라. 외과의사”를 외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의료 분야에서 내건 모토는 ‘필수의료 위기극복’에 방점이 찍혔다. 코로나19 유행에 수면 위로 드러난 국내 필수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에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도입을 약속하며 공공정책 수가 별도 신설을 공약했다.
 
엄 원장은 윤석열 새 정부에서도 필수의료계에 이렇다 할 ‘변혁’은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파이 자체를 늘려야 현재의 의료계 사정이 개선될 수 있는데, 의료 재정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지금 기조에서 한 말은 전부 지킬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필수의료 개혁’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파이를 늘리려면 돈을 더 걷어 의료보험수가를 올리는 게 해답이죠.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표’가 되지 않으니 공약은 하되 이행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 왔어요. 좌·우파 가릴 것이 똑같아요.”
 
“예컨대 당장 월급에서 10만~20만원 나가던 의료보험비를 필수의료 살리자면서 30만~40만원으로 올리는 정권이 있다면 총선·대선에서 필패하겠죠. 다른 곳 예산을 빼서 의료보험 수가를 올린다는 것도 환상이에요. 억대연봉자든 기초생활비수급자든 모두 1인 1표거든요. 일례로 100조원을 다른 복지에 안 쓰고 의사에게 돈을 더 주기 위해 쓴다고 하는 순간 여론이 악화할 거예요. 결국 국민의 컨센서스가 모든 걸 결정해요.”
  
‘의사는 부자, 나쁜 놈’ 인식이 ‘저수가 필수의료 기피 현상’ 낳아
  
▲엄윤 원장은 외과의사 전문의에서 외과 개원의로 서울 은평구와 인천 송도에서 두 번의 개원을 하며 느낀 고충과 감상을 책에 실었다. 국민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실제 의사의 현실간의 괴리 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스카이데일리
  
엄 원장은 필수의료 붕괴와 위기는 의료계 내부의 문제가 아닌 ‘의사는 공공재’라 여기는 국민의 인식과 이를 ‘공공재’처럼 활용하려는 정부의 입김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상황이 정상화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의 저서는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 등 의료행정의 불합리함을 현직 의사의 시각에서 정리해 전달하고 있다. 엄 원장은 건강보험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의사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의사결정구조 시스템을 고집함으로써 의료계의 진짜 목소리가 담기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의사들을 잘 먹고 잘 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세금 인상해서 보험 수가 올려달라’고 하면 먹혀들까요. 의사들이 그야말로 ‘나쁜 놈’이 되는 거예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13만 의사의 목소리를 누르면 5000만 국민에게서 표를 얻는 구조지요. 의료계는 필수의료의 부당함을 수십 년 전부터 언급해 왔으나 결국 국민이 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해결이 어려울 거예요. 지극히 정치적인 표 싸움인 거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침해하지 못해요. 수정헌법만 봐도 누구도 국민의 이득을 침해하지 못한다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적정 의료에 적정 수가를 받을 수 있죠.”
 
엄 원장은 ‘의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국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의료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대한민국의 진료비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수준이며, 원가도 보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아무리 알려도 의료비 증가 부담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외국과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다른 나라와 한국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면 한국은 지나치게 ‘피해자’ 중심이라는 점이죠. 의사의 ‘수술’보다 환자의 ‘회복’에 더 관심을 갖는 거예요. 치료받은 환자가 주목을 받지 의사는 밑그림으로 묻히죠. 의사·소방관·군인 등은 외국에서 정말 존경받는 직업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에 의해 보호받는 시민의 이익이 우선이고 시민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 최우선이에요. 결국, 환자 보호를 위해 의료행위에 공공재적인 성격을 띤 반자율적 의료보험제도가 도입 및 존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래서 미국과 똑같은 재료를 쓰면서도 청구가격은 10분의 1밖에 못 받는 청구대행제가 가능한 것이죠.”
 
원가보전도 안 되는 저수가 배경엔 ‘당연지정제와 청구대행제’ 있어
  
▲엄 원장은 외과 수련기간이 4년에서 3년으로 줄고 전공의법이 시행되면서 제대로 된 양질의 외과 수련이 불가능해지고 관련한 전문의 양성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의료계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스카이데일리
 
엄 원장은 한국 필수의료계의 발목을 잡는 두 개의 옥상옥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청구대행제’와 ‘당연지정제’가 그것이다. 의료보험 수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가 인상 협상은 번번이 결렬되고 그렇게 되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수가가 책정되는데, 이렇게 결정된 보험수가를 환자들 대신 의사가 대리해 청구하는 제도가 ‘청구대행제’다. 엄 원장은 개원까지 1원 한 푼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적이 없는데, 개원을 하자마자 ‘당연지정제’에 강제로 가입되면서 진찰료 책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값싼 의료비를 지급하는 환자들은 불만이 없어요. 의료보험에 가입되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면, 치료비는 국가에서 받게 돼요. 민간보험은 환자가 돈을 내고 회사에서 돈을 돌려받는 건데, 국가 의료보험의 경우 의사가 청구해야 하는 구조예요. 소수자인 의사가 청구를 하므로 가격 조정이 쉬워요. 막말로 하자면 소수를 대상으로 하니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에선 이걸 할 수가 없어서 의료계의 힘이 센 거죠. 당연지정제와 청구대행제를 없애면 의사에게 불합리한 지점이 해소될 거예요. 정부가 의사와 만날 일이 없어요. 그러면 정부는 환자와 치료비를 두고 조정관계에 들어가는 거죠.”
 
끝으로 엄 원장은 향후 필수의료과의 의사 양성 전망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특히 ‘전공의법’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수련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주당 최대 수련시간은 80시간, 연속근무시간이 36시간이다. 전공의들의 과로로 인한 업무상 사망이 이어지자 법적 제도를 만들어 과로 예방을 강제한 것인데, 이것이 의료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공의 80시간 제한법이야말로 정말 큰 문제예요. 요즘 오후 6시만 되면 레지던트들이 전부 퇴근해 버려요. 예전엔 꿈도 못 꾸는 일이었어요. 가르쳐주고 싶어도 제대로 가르쳐줄 수 없는 구조예요. 게다가 다빈치 로봇수술이 유행하면서 요즘은 기계 안에 들어가서 혼자 수술을 해요. 레지던트들이 교수 옆에서 수술을 직접 배울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죠. 결국 수술을 배울 수도 없지만, 배운 수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는 각박한 현실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의료인력 양성 문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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