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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51>

한(漢)은 예맥조선(銳麥朝鮮=濊貊) 속국이었다

동양 패자(覇者)인 진(秦), 수(隨), 당(唐)도 이긴 우리 민족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4-30 11:47:58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대륙을 천년이나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해온 예맥조선은 지나인(支那人)들이 흉노(匈奴)라는 동이족으로서 기자조선 위만조선보다도 먼저 예맥조선을 건설하고 대륙을 천 년 이상 지배한 구국(舊國)으로 한(漢) 건국 2년 만에 한 나라를 속국(屬國)으로 했다.
 
그런데도 마치 한이 우리 민족을 지배한 것 같이 역사가 조작돼 있으나 이는 허구다. 도리어 한족(漢族)과의 일승일패의 쟁패전(爭覇戰)을 전개하고 그 쟁패전에서 승패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승리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족의 지배를 받은 것 같이 문서역사에 기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나의 4000여년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시대가 진(秦), 수(隨), 당(唐)시대인데, 진(秦)은 한(韓), 위(魏), 연(燕), 제(齊), 초(楚), 조(趙) 6국을 통합함으로 크게 국위(國威)를 떨쳐 지나라는 명칭이 나오게 된 대제국(大帝國)이다.
 
그리고 수는 강대한 오호(五胡)가 지나에 침입하여 300년 동안이나 남북조(南北朝)로 분열시켰는데 이 남북조를 재통일한 나라가 수 나라이다. 이는 지나의 역사상 특기할 강국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은 수보다 더 강대했다. 지나의 역대제왕(歷代帝王)중 제1인자라 칭하는 당태종이 북으로 돌궐(突厥), 고창(高昌), 토곡혼(吐谷渾), 설연타(薛延陀)를 정복하고 철륵(鐵勒), 회흘(回紇)을 예속시켰다.
 
지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시대가 진, 수, 당 시대이다. 그런데 이미 살펴본 대로 예맥이 진을 타도하고 고구려가 수를 격멸했다. 당이 고구려를 침범하자 안시성 양만춘(楊萬春) 장군이 당태종을 격파한 것은 세상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양만춘 장군은 지나 사서에 기록이 없다.
 
또한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에 패하자 그에 대한 기록도 찾기가 힘들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쓸 때부터 위중국휘치필법(爲中國諱恥筆法)으로 지나가 패한 것을 승리한 것으로 거꾸로 문서역사(文書歷史)에 기록했다. 이는 대륙사(大陸史)를 깊이 연구한 학자에 의해 모두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를 지배했다는 한 나라도 도리어 우리의 속국이었음과 지나가 강하다는 진, 수, 당도 우리가 물리친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강대한 지나의 진, 수, 당을 물리친 우리다
 
지나의 문서역사는 진왕(秦王)이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고 하였다는데 이도 허구임을 여러 번이나 밝힌 바 있다.
 
황제라는 통상의 의미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겸한 칭호라 해석하는 자도 있는데 진 나라가 건국 이전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천제(天帝), 천민(天民)으로 황제제도(皇帝制度)를 써 온 것은 세계학자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진왕(秦王)은 자신이 처음 황제라고 말을 한 적이 없었고, 지나의 사서(史書)에서도 생전에 황제라 말한 기록은 없다. 이는 위조(僞造)인 것이다.
 
춘추시대에 지나를 정벌(征伐)한 민족은 흉노(匈奴)가 아니라 예맥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한서(後漢書) 등 지나 사서에서도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지나의 4000년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시대가 진, 수, 당 시대인데 진은 지나 역사상 가장 강대하고 지나를 대표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수는 오호(五胡)가 분열시킨 남북조를 재통일한 강국으로 지나 역사상 특기할 강국이고, 당도 특기할 강국이요 세계사상 기록할 강국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밝힌 바 있으나 다시 쓰게 된다.
 
이 강국들이 우리 한민족인 예맥과 고구려에 패배한 것을 숨길 수 없다. 진은 예맥에게 타도되고, 또 수와 당은 고구려에 침입하였다가 고구려에게 격멸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이 지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진, 수, 당을 제압하였으니 한족과의 쟁패전에서 우리가 승리한 것이다. 이 동양의 패자(覇者)들을 이긴 우리 민족은 대륙의 쟁패자(爭覇者)라 할 수 있는 것임에도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재는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었음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진의 멸망에 대해서도 지나와 일본학자 중에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등장으로 서기전 206년 진이 멸망하였다 하고 있다.
 
그러나 진의 멸망은 진승(陳勝)과 항우, 유방의 등장에 앞서서 무리한 토목공사와 진이 예맥과 남월(南越)등 외정(外征)의 전란(戰亂) 때문으로 본다. 표면상으로는 진승과 항우, 유방의 선전이라 하나 내면을 보면 진을 타도한 자는 예맥과 남월(南越)이라 하고 있다.
 
한(漢)은 우리를 지배한 적 없고 예맥조선의 속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왜곡역사만을 배워 와서 우리역사가 반도사가 아니라 대륙사인 것도 모르고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의 역사만을 익혀서 1만년이 넘는 역사를 5천년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를 가르친 대학교수까지도 5000년 역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기가 찬다. 연구를 덜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한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 것도 역사무지로서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한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 없다. 지나는 예맥을 흉노라고 말을 하나 이미 밝힌 대로 흉노족은 35개나 되는데 지나가 말하는 흉노는 예맥조선(銳麥朝鮮)(濊貊)을 일컫는 것이다.
 
지나의 임해상(林惠詳) 박사도 상고시대는 지구의 40%가 유라시아인데 이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동이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지나는 아주 작은 영역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역사가 보편화 되어 있지가 않아서 모든 국민이 역사무지가 되고 있다.
 
예맥조선은 동주시대부터 대륙정벌과 정복(征服)을 해 왔기에 전한(前漢)의 고조(高祖)는 한의 건국 2년 후인 서기전 200년에 32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산서성(山西省)의 대동현(大同縣 平城)까지 진군했으나 그때 돌연, 모돈선우(冒頓單于)가 이끄는 40만의 기마군단(騎馬軍團)에 포위되어 격파되고 만다.
 
이로 인하여 한은 초기 때부터 예맥조선에 속국(屬國)이 되고, 예맥조선에 패한 한고조(漢高祖)는 일족(一族)의 처녀를 선우에게 시집보내고 많은 예물을 보내어 예맥조선과 화의(和議)의 조약을 체결하여 한 나라를 유지시킨 것이다. 지나와 일본의 학자들도 이를 문서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미 밝혔으나 다시 살펴 보면 1)양국이 서로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것, 2)한족의 여자를 선우에게 시집보낼 것, 3)교역장(交易場)인 관시(關市)를 둘 것, 4)한이 예맥조선에 화폐(貨幣;贈物)를 보낼 것 등이다. 이 화의는 무제(武帝)가 즉위하는 서기전 141년까지 60년간 계속됐다.
 
이후 한이 노관(盧綰)과 위만(衛滿)이 예맥조선을 배경으로 한고조(漢高祖) 4년에 반란을 시도하다가 한고조가 예맥조선에 도움을 청하자 예맥은 용맹한 기병(騎兵)을 보내어 한을 도와주었던 것은 이를 증명한다.
 
글을 맺으며 - 역사를 알아야 자부심과 긍지로 웅비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 너무나 우리역사를 모르고 있다. 왜곡역사에만 익숙해져서 필자가 말하는 것에 의문을 갖는 자도 있는데 필자 역시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가서도 왜곡한 역사만을 배워서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역사사극도 일제가 조작한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는 사극만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고 여겼다. 그런데 역사연구를 상고사로부터 고대사와 현대사까지 심층적으로 살펴보니 우리역사가 뒤엎어진 것을 알게 됐다.
 
사극(史劇)의 한 예로 주몽(朱蒙)에 대한 사극을 재방송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주몽이 부여(夫餘)때 한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치고 한사군(漢四郡)을 세웠다 하는데 이때는 예맥이 대륙을 주름잡던 시대로 부여가 아니라 예맥이 맞다.
 
한무제가 사군(四郡)을 설치한 후 26년 만에 예맥이 진번(眞番), 임둔(臨屯) 2군을 탈취하고 현토군(玄菟郡)도 대부분 탈취하였는데 예맥이 동주시대부터 대륙을 1000년간 정벌하고 전복하여 지배한 사실을 덮고 있다.
 
이것은 지나와 일본이 예맥조선을 다 지우고 숨긴 결과에서 비롯된 것인데 우리는 이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지나의 사서에 예맥이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1000여년 동안 지나를 정벌, 정복, 지배한 사실이 명기(明記)되어 있다. 이에 관해 필자가 여러 번 글을 올렸으나 여전히 모르고 있는 국민이 많아 안타깝다.
 
이제는 온 국민이 예맥조선과 낙랑국의 역사도 복원하여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바로 세워 왜곡되고 조작한 허구(虛構)의 역사를 바로 잡아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찾아야만 우리가 세계에 우뚝 선 세계지도국가로 서게 되며 국가와 국민도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비상(飛翔)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參考文獻>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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