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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광개토왕의 신라구원 사건 속으로 (I)

부여백제(왜잔국)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 준비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04 09:42:27

 
▲ 정재수 역사작가
고구려 광개토왕은 대규모 군사를 파견해 왜(倭)의 범탈로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원했다.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영락10년(서기 400년) 신라 구원’ 사건이다. 이는 ‘영락6년(396년) 왜잔국 정벌’에 버금가는 광개토왕의 주요 정복사업이다. 이 결과 한반도 남부 전체가 광개토왕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게 됐다. 특히 고구려사략’ <영락대제기>는 이로써 ‘남방이 모두 평정됐다(南方悉平)’고 적는다. 참으로 위대한 선언이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영락 10년 신라 구원’ 사건의 속살을 하나하나 헤집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사건의 배경인 광개토왕이 신라에 군사를 파견하게 된 이유를 살펴본다.
 
삼한백성의 신라 국경 범탈
 
광개토왕릉비 기록이다. ‘9년(399년) 기해, 백잔(백제)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했다. 왕이 평양으로 행차해 내려오니 신라가 사신을 보내 아뢰길 “왜인이 국경에 가득 차서 성과 못을 파괴하니 노객(신라)은 백성으로서 왕명을 내려달라”고 했다. 태왕은 인자해 그 충성심을 칭찬하고 신라 사신을 돌려보내며 밀계(密計)를 내렸다(九年 己亥 百殘爲誓與倭和通 王巡下平壤而新羅遣 使白王云倭人滿其國境潰破城池以奴客爲民歸王請命 太王恩慈矜其忠誠特遣使還告以密計).’
 
시기는 ‘영락 10년 신라 구원’ 사건 발생 한 해 전인 399년이다. 전쟁 명분은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한 부분이다. 이는 ‘영락6년 왜잔국 정벌’의 결과물이다. 당시 부여백제(왜잔국)는 광개토왕에게 일방적으로 패했다(396년 3월). 일부 지배층은 한반도를 떠나(396년 7월) 일본열도로 망명해 야마토(大倭)를 건국했다(397년 1월). 이때 백제 아신왕은 전지태자를 야마토에 볼모로 보내며(397년 5월), 부여백제(왜잔국)의 옛 서남부 땅 전체를 인수(引受)한다. 바로 백제가 왜와 화통한 부분이다.
 
광개토왕의 군사 파견은 신라 내물왕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사유는 ‘왜인이 신라 국경에 가득 차서 성과 못을 파괴하기(倭人滿其國境潰破城池)’ 때문이다. 이의 실체가 일본서기’ <응신기>에 나온다. ‘14년(399년) 이 해에 궁월군이 백제로부터 내귀해 고하길 “신이 120현의 인부(백성)를 이끌고 귀화하려 하는데 신라인이 방해를 하여 모두 가라에 머물고 있습니다”고 했다. 이에 갈성습진언을 보내 가라에 있는 궁월군의 인부를 불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습진언은 돌아오지 않았다(應神天皇十四年 是歲 弓月君自百濟來歸 因以奏之曰 臣領己國之人夫百廿縣而歸化 然因新羅人之拒 皆留加羅國爰遣葛城襲津彦 而召弓月之人夫於加羅 然經三年而襲津彦 不來焉).’
 
▲ 6·25 당시 남으로 피난하는 피난민 행렬.
 
여기엔 궁월군(弓月君)과 120현민이 등장한다. 광개토왕릉비가 왜인(倭人)으로 표기한 실제 주인공들이다. 120현민은 삼한백성을 지칭하며 궁월군은 이들 삼한백성을 이끈 지도자이다. 궁월군은 일본인이 성군으로 떠받드는 인덕왕으로 훗날 송서가 왜왕 찬(贊·부여찬)으로 기록한 이다. 삼한백성은 주로 옛 한반도 부여백제(왜잔국)의 유민들이며 일부는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도 포함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이때 ‘상당수 백제인이 신라로 빠져나가 호구수가 줄었다(多奔新羅 戶口衰滅減)’고 기록한다.
 
아무튼 대략 수십만을 헤아리는 대규모 삼한백성이 가라(임나)를 중심으로 경남 남해안에 집결했다. 이는 마치 6·25 전쟁 시 부산에 모여든 피란민과 흡사하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차고 넘치니 자연스레 신라 국경에 이르게 됐고, 신라의 성과 못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신라 내물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히 광개토왕에게 SOS를 보낸다.
 
부여백제 유민의 엑소더스 준비
 
삼한백성이 가라에 집결한 이유는 일본열도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궁월군과 삼한백성은 일종의 엑소더스(Exodus·대량탈출)를 준비한다. 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가 히브리백성을 이끌고 애굽(이집트)을 탈출하기위해 홍해 해변에 집결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엑소더스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396년 일본열도로 망명한 옛 부여백제(왜잔국)왕인 야마토 응신(應神)왕을 뒤따르기 위해서다. 응신왕(부여백제 여휘왕)은 광개토왕의 ‘영락6년 왜잔국 정벌’에서 일방으로 패해 일부 지배층만 데리고 급히 한반도를 탈출했다.
 
일본서기’ <신무기>에 ‘신무왕(神武王·일본 건국시조)의 동정기(東征記·동쪽 정벌 기록)’에 당시 사정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응신왕은 처음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 도착하나 군사력이 없어 이곳 선주(先住)세력을 제압하지 못하고 동쪽으로 수천리 떨어진 기내(畿內-오사카 일대)지역으로 이동해 나라(奈良)현에 야마토(大倭)를 건국한다. 다시 말해 부여백제(왜잔국)의 삼한백성은 뒤늦게 응신왕의 야마토 건국 소식을 듣고 이에 합류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일본열도 엑소더스를 준비한다.
 
▲ 광개토왕릉비 비문 기록과 진행 과정. [사진=필자 제공]
  
‘영락10년 신라 구원’ 사건의 배경은 옛 부여백제(왜잔국) 삼한백성이 일본열도로 엑소더스하기 위해 경남 남해안에 집결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응신왕과 일부 지배층이 선발대라면 궁월군과 삼한백성은 응신왕을 뒤따른 본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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