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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일상과 놀이로 빚어낸 주옥같은 화면들

물감·붓 대신 천과 바늘로 그림 그리는 이명주 작가

전통적 규방예술의 장점과 우리 동시대의 감성 결합

미학·절제·기운생동 효과 강조로 미학적 완성도 높여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6-24 10:30:32

 
▲ 이재언 미술평론가
 우리 민족의 DNA 가운데 섬세하고 빠른 손의 감각은 지금 다방면에서 커다란 성취들의 근간이 되고 있다. 쇠젓가락의 사용에서 비롯된 손 감각의 진화 덕이라고도 말들 하지만, 근본적인 미의식과 감각이 아니면 오늘의 문화적 위상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박물관에 소장된 회화나 조각, 도자 및 규방공예품 등 어디에서도 절묘한 손재주와 감각들 너머의 완성도 높은 미학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놀이’의 미학이 아닐까.
 
우리가 오늘의 경제적 도약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인 근면성과 부단한 에너지라는 것도 바로 ‘흥’이 넘치는 놀이에서 분출되는 것이다. 호이징아가 ‘호모루덴스’에서 ‘놀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 본 내용 그대로다. 우리 문화의 자산은 잔기술이나 잔기교가 아니다. 활동을 지배하는 자유정신과 생동하는 기운이 진정한 우리 문화의 특징이 아닐까.
 
“자유롭다. 그리고 즐겁다. 작업실에서 천과 가위, 바늘과 실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놀이는 추억으로의 시간여행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것들이 옛것이 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돌고 도는 이치처럼. 그냥 즐겁게 논다.” 이명주 작가의 작업노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 본질이 놀이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어려서 천 조각들을 가지고 놀았던 행복했던 기억들이 지금까지 남아 작가가 되어서도 행복한 놀이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이다. ‘무용한 것들’이라는 주제 역시 어려서 놀이를 하다 들었던 핀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다. 쓸모를 초월한 ‘무용’의 개념도 음미할 만하다.
 
▲ 맨해튼, 69 x39cm, 천에 바느질, 2019.  [사진 제공=필자]
 
이명주는 패치워크, 즉 물감 대신 천으로, 붓 대신 바늘로 그림을 만들어 내는 작가다. 섬유공예로서, 그리고 대안적인 회화로서 감각적이고 완성도 높은 화면의 패치워크 회화작업은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나, 무의식 속에 품어 온 감정들이 커서도 중요한 동기나 생의 좌표로 작용한다. 
 
작가도 자신이 천 조각들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희열감을 희구하며 보다 큰 회화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우리 전통 규방예술의 장점과 우리 동시대의 감성을 결합시킴으로써 따뜻하고도 친근하며 참신하고도 서사가 풍부한 회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패치워크 예술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작업노트의 글처럼 작가의 작업은 유희적으로 작업에 임한 결과물들이다.
 
▲무용한 것들, 82x72cm, 천에 바느질, 2019.
  
작가에게 놀이란 일상을 유쾌하고 밝게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일상은 예술의 영감을 퍼 올릴 수 있는 샘과도 같은 것이다. 일상이 평온하고 반복적인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생명의 숨결과 박동이 확연하며 아울러 활기찬 에너지가 무한하게 펼쳐지는 무대이다. 삶을 역동적으로 영위하는 시간 속에는 과거 추억과 미래에 대한 꿈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추억의 과거 장면들을 소환하여 삽화적으로 혹은 문인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삽화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그리기도 하고, 문인화의 기명절지화나 화조화와 유사한 양식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단순 명료함 속에서 디테일들이 재치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작가만의 개성적인 대목이다.
 
▲무용한 것들, 57x75cm, 천에 바느질, 2022.
 
3년 전 작가가 패치워크로 맨해튼 풍경 연작을 발표했을 때 상당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국적인 도시 풍경이라면 다 그렇고 그런 풍경이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풍경은 좀 다른 데가 있다. 음영이 뚜렷한 톤으로 대비를 강조하여 도시의 명과 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한 느낌의 작업이다. 기존의 패치워크와는 달리 깊이가 있고 진지한 표현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강렬한 대비 외에도 여러 가지 표현적 요소들, 특히 예리한 선묘들을 실로 표현하고, 아울러 문자들이 박힌 천으로 건물들을 표현함으로써 이국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 무용한 것들, 65x95cm, 천에 바느질, 2022.
 
3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 작가는 이전과는 다른 일상, 특히 기억 속 향수를 끄집어내서 화면에 구성해 내고 있다. 전과 다른 밝고 산뜻한 행보다. 곤충이나 동물·가구·기물··꽃 등의 이미지들이 등장하여 작가 개인의 기억은 물론 집단적인 정서와 추억들에 도달하여 동시대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전과 다른 점은 보다 산뜻해졌다는 점도 있지만, 패치 조각들을 상당히 절제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 오브제의 사용을 일정 부분 자제하고 대신 회화적 표현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인화에서 추구하는 여백의 미학과 절제, 기운생동의 효과들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 무용한 것들, 107x63cm, 천에 바느질, 2019.
 
패치워크의 묘미는 무엇일까. 물론 천 특유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물성으로 함으로써 친근감을 주고, 또한 거리감 같은 장애 요소를 제거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천은 특유의 패턴이나 색상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러한 레디메이드 요소들이 작가의 선택에 따라 예측 불허의 조합으로 조성되게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과도 같은 효과들, 즉 예기치 못한 컨텍스트 효과가 살아난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표현까지 복합적으로 결합시켜 조합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작가의 화면은 우리 전통 민화나 문인화·화조화 같은 장르들을 자유롭게 변형시키는 데다, 거기에 다양한 패턴의 패치들이 결합됨으로써 감각의 참신성을 살려내고 있다.
 
확실히 우리가 손재주 많은 민족이라는 점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놀이를 한층 높은 가치로 승화시킬 줄 아는 민족이라는 점이다. 놀면서 공부도 잘하고, 놀면서 생산도 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일 아닌가. 놀이를 잘하면서 그림으로서도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각예술에서 모두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 바느질 중인 이명주 작가 모습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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