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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팔순 회고전을 앞둔 최구자 작가 이야기
문중의 종부로서 인고의 세월 후 만년에 나선 화가의 길
환갑 이후 20여년 불꽃 같은 창작혼으로 일군 회화의 세계
오랜 세월 일상에서 터득한 ‘공존’의 깨달음을 화폭에 펼쳐
이재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30 10:04:44
 
▲ 이재언 미술평론가
종종 예술의 열정과 에너지는 무병(巫病)과 동질의 것이라 한다.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하는 가공할 내면의 에너지로서, 그로 인한 예술을 현실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이해하려는 시각들이 많다. 30년 넘는 세월, 마음속에서만 캔버스를 펼치며 그리기를 해야만 했던 화가가 있다. 한 문중의 종부(宗婦)로 분주히 살다 보니 어언 이순(耳順).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시점에서 심각한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병과도 같은 내면을 다스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종가의 맏며느리라 하면 미디어에서 정형화한 이미지가 있다. 연중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온갖 제사며 행사 등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부덕(婦德)의 여인이라는 이미지이다. 그러한 미디어상의 종부 이미지와 엘리트 예술가 이미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제로 종부 역할을 하면서 화가로서 빛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서양화가 최구자(80)이다.
 
▲ 사기동 풍경 90.0x72.7cm Oil on canvas 1986
 
환갑을 앞두고 결단을 내린 화가의 길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 2막의 시작이라지만, 그렇다고 종부의 역할이 면제된 것도 아니고 짐을 하나 더 짊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맹렬하게 달려온 지 20년이 되었다. 20년 동안 15번의 개인전을 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설명해 준다. 우리 사회의 압축성장처럼 그도 남들의 세월 두 배를 압축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항상 약했던 몸이 그림을 그리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 한다. 줄기찬 작업을 통해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부단히 얻었으며,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오랜 공백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한다. 무병과도 같은 응어리가 그리기를 통해 풀리며, 또한 자신의 내면에서 내연(內燃)시킬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부단히 분출하는 것에 작가 스스로도 놀랐다 한다. 
 
▲ 공존 2001 162.2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01
 
살면서 항상 머릿속에서만 불타오르는 열망에 이끌려 가상 캔버스를 펼쳐 갈고 닦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오랜 세월 남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내가 했다면 이러이러하지 않았을까’라며 마음속으로 덧칠했다가 지워 나간 그리기가 또 얼마였을까. 오랫동안 마음속 캔버스에 그렸던 것들을 현실 속에서 다시금 펼치려 할 때 보통은 조급해지기 십상이다. 
 
다행히 작가는 그림이 그렇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고, 침착하게 내공을 쌓는 것이 중요함을 각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세상의 이치는 일상이든 그림이든 크게 다르지 않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을 되새기곤 했던 것. 그래서 작가는 데생과 재현을 중시하였으며, 지금도 크로키를 손 놓지 않고 계속한다. 묘사력도 묘사력이지만 대상을 향한 직관을 더욱 숙성시키고, 손과 손목의 감각을 활성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 Peaceful-Coexistence (평화-공존) 72.7x116.7cm Mixed media on canvas 2006
 
작가의 본격적인 화업이 시작된 90년대 말이나 현재나,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공존’이다. 초기의 화면은 주로 생명으로 가득한 대지, 생명의 조화로운 섭리에서 오는 감동을 담는 데 주력했다.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생명의 대지와 교감하고, 또한 자연의 오묘한 표정과 음성에 공명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발품을 들여 사생에 몰입하면서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갔다. 
 
사실 시작 단계에서부터 작가는 재현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역시 상대적이며 다른 요소들에 의해 더 큰 힘을 가진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이치는 음과 양이 공존하며 상생하는 데 있음을 말이다.  
 
▲ Nature-Coexistence (자연-공존) 60.6x72.7cm Mixed media on canvas 2016
 
물 흐르듯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작가의 작업은 2000년을 전후해서 평면적이고 절충적인 반추상적인 양식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명암의 대비가 더욱 강해지며 색채나 필치 역시 거세지고 화면의 군더더기들을 주관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표현에 보다 강세를 둔 화면에서 보듯 재현의 시기처럼 실험을 동시적으로 병행했던 것이다. 
 
사실적인 형태들은 일종의 기호나 패턴으로 바뀌고, 아련한 여운의 꿈결이나 따스한 서정의 무드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공간의 분할들이 많은데, 마치 하루하루가 새롭고 경이로운 나날인 것처럼 진부한 일상이지만 작가에게는 감동적이지 않은 날이 없음을 고백하듯 구성된 것이다. 작가의 ‘공존’ 연작은 ‘평화로운 공존’과 ‘자연-공존’으로 나뉜다. 
 
2005년에 있었던 다섯 번째 개인전에서 자신의 그림이 구상이든 추상이든 일관된 주제, 하나의 공통적 세계관을 담고 있음을 명확하게 천명하게 된다. 바로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주제다. 어차피 세계는 이질적인 혹은 대립적인 것들이 혼재돼 있기 마련이다. 이질적인 것들끼리의 섞임은 성장이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공존’이란 균형과 조화·질서의 기반 위에 선 상생이다.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점철된 20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시기의 화두이기도 했다. 특히 작가에게 ‘평화’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염원하는 가치로서, 자신의 종교에서 추구하는 가치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인으로서 염원하고 간구하는 기도의 연장으로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Nature-Coexistence (자연-공존) 53.0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Nature-Coexistence (자연-공존) 91x116.8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2010년부터의 작업이 ‘자연-공존’은 수렴된다. 다분히 이질적인 조형요소들 간의 긴장이 해소되고 무언가 유동적인 흐름이 많고, 여러 층의 안료 중색으로 인한 차분하고 몽환적인 화면질서를 보이는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어떤 면에서는 덧칠이라기보다는 두터운 지층을 발굴하듯 먼지떨이 브러싱을 한 것 같은 화면들인 것이다. 마치 화석 같은 이미지들이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이마저 최근으로 오면서 형태가 소멸돼 가고, 직관이 풍부한 아우라의 화면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어쩌면 모든 것이 신속 정확하고 on/off가 명료한 오늘의 디지털 패러다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건 지도 모른다. 아날로그 혹은 자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장황하게 혹은 딱딱하게 설명하기보다는 화두를 직관 속에 용해시키고 있음이 감지된다. 낮과 밤의 반복적 교차 속에 충만한 섭리의 영감들이 오늘의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이렇게 내공이 느껴지는 화면을 보면 30년이라는 공백기는 자신을 단련시키고 미의식을 연마시키는 충전의 세월이었던 것 같다. 하긴 역동적이고 치열한 삶의 현장만한 연단의 장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 전시장에서의 최구자 작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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